반응형
두번째입니다. 상당히 무섭습니다(틀릴까봐..). 1도 수정할 것이 산더미 만큼 많은데 수정하기가 겁나네요... 이미지 배치가 제일 걱정입니다.

부제:virtu에 대하여.

2. ‘virtu‘

군주론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며(헌정사를 제외해 총 2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국가의 종류(특히 군주국에 대해)와 획득 방법에 대해서 말하고, 이후 군주론이라는 이름답게 ‘새로운’ 국가에서 ‘새로운’ 군주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무력과 설득(력)으로 나누어서 이야기한다. 즉, 군주론의 정수는 무력과 설득(력)이라는 'virtu'(역량 혹은 덕)를 모두 겸비한 군주는 역사적 국면에서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먼저 군주론에 있어 자주 등장하고 중요한 용어인 'virtu‘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virtu’ 혹은 ’virtuoso’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역량이나 덕에서부터 능력이나 기술, 화력, 결단력, 힘, 기백, 용기, 용감함, 용맹, 무훈, 기백, 뛰어난 성품, 위대한 정신 심지어 활의 위력(virtu)를 나타내는 물리적 대상에 까지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는 이 용어는 통상적으로 역량이나 덕의 의미를 지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항상 선한 뜻을 지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마키아벨리는 이 용어를 선과 악의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으며, 간혹 ‘무자비함‘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흔히 마키아벨리를 보고 잔혹하다느니 피도 눈물도 없다느니 하는 비판을 자주 하는데 아마 목적을 위해서라면 악행도 괜찮다는 이 용어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 우리는 이러한 'virtu'를 악으로써 남용한 나치를 알고 있는데, 이들도 결국은 파멸했다. 즉, 군주는 이러한 ’virtu‘를 적절히 겸비해야만 하며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결국 실패하고 만다.

마키아벨리는 'vritu‘중에서도 특히 무력과 설득(력)을 겸비한 군주는 어떠한 시련도 극복할 수 있으며, 시련을 극복한 군주는 새로운 국가를 잘 유지해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군주는 무력과 설득 중 어떤 역량을 먼저 겸비해야 하는가?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물음에 무력이 먼저라고 주장한다. 마키아벨리는 인민을 믿지 못하며, 과거 설득(력)만을 겸비한 군주는 모두 실패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무력은 자신의 실질적인 힘인데 반해, 설득은 다른 사람에게 비전(Vision)을 제시하는 힘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마키아벨리에게는 군주 ’자신’의 힘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군대에 대한 입장에서도 마키아벨리의 생각은 잘 나는데, 무력이 자신의 실질적인 힘이라면 군주는 자신의 군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가 이렇게 분열된 이유 중 주된 이유는 용병의 사용이며, 이들을 이용하는 군주는 무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새로운 군주는 자신의 군대를 만들어야 하며, 그것을 계속 유지시키고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무력은 물리적인 힘만이 아닌 제도적인 법(질서)도 의미하는데, Well-odered law(좋은 법)은 합법적으로 인민을 통치하고 군주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군주의 무기인 것이다.

‘모든 국가의 토대는 좋은 법과 좋은 군대이며, 좋은 군대가 없으면 좋은 법을 가지기란 불가능하고, 좋은 군대가 있는 곳에는 항상 좋은 법이 있다.’ - 마키아벨리 

__

반응형
Posted by 스탠스
반응형

부제 :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

※먼저 이 글은 제가 (고등)학교에 제출할 용도로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한글 문서로 먼저 작성하고 후에 올렸기 때문에 보기 안좋습니다. 배경에 관한 설명이기 때문에 역사 밸리에 올려봅니다. 세계사에 대해서 무지하다가 이번 기회에 이야기 세계사를 통해 배운거라 내용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떠한 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고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이 쓰여 진 배경과 이유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고전의 숨겨진 배경과 지은이의 집필 의도를 파악해야 고전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고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떠한 ‘text’(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context‘(배경)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대한 감상을 쓰기 전에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시대와 그 집필 의도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가 살았던 15세기는 중세 유럽의 질서가 붕괴되고 새롭게 근대가 성장해 가는 시대라 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근대(Modern)를 자본주의의 발달로 중세의 자급자족 원시 농업에서 근대적인 교환경제로 발전한 시대라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설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패러다임(사유의 틀)의 변화는 전체적인 관점과 역사의 인과관계 속에서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먼저 중세 유럽의 질서가 붕괴되기 시작한 배경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먼저 중세를 종식시켰던 두 가지 큰 사건 중 하나는 흑사병이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보통 중앙아시아나 인도에서 시작되어 유럽으로 확산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상인의 옷이나 물건, 배의 쥐 등 해상 무역이 활발한 지중해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된 흑사병은 유럽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잦은 왕래와 마을이나 도시의 비위생으로 피해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는 1340년대 말 프랑스와 영국을 휩쓸었고, 50년대에는 북유럽에까지 확산되어 러시아까지 도달하였다. 특히 영국의 경우 백년 전쟁,장미 전쟁과 맞물려 대 기근이 발생하여 피해가 심각하였다. 흑사병은 14세기 당시 유럽 인구의 약 절반 이상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이러한 죽음들은 유럽 사회기강을 무너트리고 유럽인들에게 공포를 가져와 중세 붕괴를 가속시켰다. 한편 유럽 인구의 감소는 농업의 쇠퇴와 임금의 증가를 가져왔고, 이로 인해 농업 생산력 증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두 번째 사건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백년 전쟁이다.(백년 전쟁의 전개 과정에 대해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먼저 중세는 봉건적 질서로 영주(귀족)가 자신의 지역을 다스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농노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농노들에게는 왕보다는 영주가 자신을 다스리는 존재였다. 하지만 프랑스 왕위 상속권 문제로 시작한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 전쟁은 최후의 봉건적인 전쟁으로써 이 전쟁으로 왕권이 강화되어 절대왕정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제3의 신분인 부르주아 계급은 왕권 강화에 기여하면서 국가 경제를 좌지우지하게 되었고, 이는 곧 자급자족 원시 농업체제에서 근대적인 교환경제체제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였다. 또 유럽은 전쟁으로 인한 민족감정 고조로 본격적으로 민족국가(국민국가)가 건설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등의 중앙집권적 국민국가 건설이나 자본주의의 발달 등 근대를 준비하는 국가들과는 달리 마키아벨리가 태어나고 자란 이탈리아 반도는 밀라노나 피렌체와 같은 상업도시의 귀족들과 상인들이 자치도시를 조직하였으나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였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들은 프랑스나 스페인과 같은 외세를 끌어들여 그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통치 역량과 무력을 겸비한 체사레 보르자에게 외세의 각축장이 된 조국 이탈리아의 독립과 통일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부분적으로 그를 모델 삼아 군주론을 쓴 것이다.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당시 피렌체의 통치자였던 메디치가의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하는데 그 헌정사에는 자신이 군주라면 이렇게 하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http://windtwt.egloos.com/4438333

 

반응형
Posted by 스탠스
내 서재속에는2012. 12. 4. 19:12
반응형

 

니콜로 마키아벨리-

이사람의 초상화를 보면 알 수 있듯 아주 영민하고 똘똘하게 생겼다.한편으로 냉정하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같다. 바로 그가 역사상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을 책의 작가인 군주론의 작가다.

니콜로 마키아 벨리는 1468년 29세 때에 피렌체 공화정이 붕괴되괴 메디치 가문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되었다. 그는 공직에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과거 정권을 지키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는 누명으로 투옥되었다. 여기서 그는 지옥같은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의 친척 두 사람이 체포되어 고문 끝에 공범자들을 불러줬는데 그 목록엔 마키아벨리의 이름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체포되자마자 그의 당시의 관례에 따라 고문을 받았다. 그 고문은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문속에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친구였던 줄리아노 메디치에게 사정을해ㅅㅂ는데 그의 동생이 다름 아닌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그 덕에 마키아벨리는 사면을 받고 감옥문을 나왔다.

그는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는 다시 권력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염원을 품었을 것이다. 그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산 카스키아노라는 시골 지역에 머물며 저술한 이책은 자신을 몰락시킨 바로 그 메디치 가문에 바치는 글을 올렸다.

-군주론-

이 책이 왜 지금까지 금기시 되고 있고, 비난을 가장 많이 받는 책일까...? 생각해보니, 아무리 나쁘고 악한 책이라고 해도, 효과나 효용이 없으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 책이 강한 힘이나 효과를 발휘 하면 그 책은 금서로 만들고 없애려 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군주론이 강한 효과가 있을까? 책이 쓰여진 시기는 중세 그리고 500년 전의 군주국 시대였다. 과거를 현재를 보고 현재에 서서 미래를 바라 보는 것 처럼 이 책은 과거의 실수와 성공이 들어 있다.

그중 가장 강하게 강조하는 부분은 17장 잔혹함과 인자함,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은지에 논의이다. 대게 우리는 관대함,인자함 을 중요시 하고 잔혹함을 기피하라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왜 군주는 특별히 잔혹하고 인자하더라도 잔혹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는지 진지하게 설명해준다. 마키아벨리는 그런 이유을 두가지를 말한다. 먼저 역설적이겠지만 군주와 귀족,백성은 서로 평등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자함을 보이면 보일 수록 귀족과 백성들은 군주의 그런 모습에 젖어 반란이나 음모를 꾸미고 전쟁시 군주의 청을 잘 들어주지 않는 다고 한다. 그러나 귀족이나 백성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면 위급한 상황에서의 지시나 명령에 복종할 것이다. 단 두려움의 존재가 되데 백성, 귀족의 재산을 갈취하거나 가혹한 세금 정책을 시행 하지 않고 그런 존재가 되어야 된 다는 점이다.

- 군주론 속의 군주론

몇몇 구절이 있는데 인상깊은 구절이다.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도 못 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려면 복수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도록 크게 입혀야 한다."

"새로운 은혜를 베품으로써 과거의 피해를 잊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기 기만에 빠지는 것이다. 가해 행위는 모두 한꺼번에 저질러야 한다. 그래야 맛을 덜 느끼기 때문에 반감과 분노를 작게 야기한다. 반면 시혜는 조금씩 베풀어야한다. 그래야 맛을 더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왜 금서가 되었는지 일단 읽어보자.

 

반응형

'내 서재속에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식시장을 이기는 작은 책  (0) 2012.12.04
이코노믹 씽킹  (0) 2012.12.04
협상의 법칙 II, 허브코헨  (0) 2012.12.04
Posted by 스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