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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장관의 그림자를 밟지 마라"..그 10년 후

스탠스 2014. 6. 1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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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장관의 그림자를 밟지 마라"..그 10년 후

 

 10년 전 쯤의 일이다.


2004년 9월14일. 이날 이헌재 경제부총리겸 재경부장관의 일정이 알려지면서 금융시장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이 장관이 '한국경제 현황과 전망'이란 주제의 토론에 참석하는 일정이 알려지면서 금리정책에 이권이 걸린 사람들이 비상한 관심을 표출했다.


이 장관은 취임 전부터 저금리론자로 알려져 있었다. 이러다보니 채권 등 이자율 시장의 강세론자들 사이에선 '장관의 그림자도 밟아선 안된다'는 얘기까지 회자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 장관의 전력도 있었다. 이헌재 장관은 금통위의 콜 금리 동결에 대해 아쉬움 표시해 채권시장 롱 플레이어들이 '그는 우리 편'이라는 생각을 공고히 하게 만들었다.


당시 이 장관 움직임은 채권 트레이더들에게 가장 큰 재료 중 하나였다. 일부 채권 매매자에겐 영웅 대접을 받았고 또 다른 일부 매매자들에겐 정상적인 매매를 방해하는 거슬리는 사람,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비판 받았다.


통화정책은 한국은행의 일이라고 하지만 금융시장은 늘 정부 쪽의 입장도 같이 고려한다. 통화당국의 역사가 '독자적' 금리 결정과 거리가 멀었던 점도 있지만 한국은행이 정부의 정책 등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합리적인 판단도 가미됐던 게 사실이다.


이런 분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 핵심 '친박'의 등장과 한은의 입지

 

지난주 중엔 새누리당의 최경환 의원이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내정됐다는 사실이 공식발표 전부터 미리 알려졌다.


친박 그룹의 실세이자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꼽히는 최 의원이 한국경제 수장으로 발탁된다는 사실이 또 다시 금융시장 일각의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 누가 되더라도 재정부 장관이 새로이 바뀔 때면 금리인하 기대감과 같은 경기부양 정책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가는 게 우리의 풍토다. 통화당국과 달리 정부는 단기적인 경기부양에 더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변치않는 속성도 작용한다.


최 의원의 경우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그의 행보에 좀더 무게가 실렸다. 정권의 실력자나 힘 있는 사람이 오면 아무래도 시장은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사실 박근혜 정권의 초대 재정부 장관인 현오석 부총리의 발탁은 '다소 의외'라는 평가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정권 쪽에선 힘 있고 믿을 수 있는 강한 인물을 경제 수장으로 배치했다. 정권 초기 무난한(?) 인사로 시동을 건 뒤 정권 중반기로 접어드는 초입에 본격적인 패를 내놓으면서 경제정책에 속도감을 더하려는 것이다.


지난주 금융시장에선 그동안 '사라졌던' 금리인하 기대감이 다시 생겼다. 한은의 경기전망 하향가능성이나 이주열 총재의 전략적 후퇴와 같은 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힘 있는 장관의 등장 역시 오롯이 무시하긴 어려운 변수였다.


한은은 정부와 의견차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번 강조한 바도 있다. 원론적이고도 당연한 발언이다. 하지만 시장에선 당연하거나 원론적인 발언들이 시대 상황에 따라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아무튼 한은이 보여준 경기회복 자신감 후퇴나 정책 자신감 퇴조(금리 방향에 대한 자신감 회수)는 때마침 등장한 신임 경제사령탑에 대한 관심을 더 높였다.

 

▲ 소통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한은 총재

 

이주열 한은 총재는 취임 이후 몇 차례 거론했던 '향후 금리 방향은 인상 쪽'이라는 발언이 성장률 등 경제지표를 전제한 발언이었다고 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원론적인 발언이 확대재생산되면서 기대가 형성되거나 사그라드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금융시장에선 많은 사람들이 드디어 이 총재를 낮추어 보기 시작했다는 말이 돌아다닌다. 총재의 발언, 즉 '지표가 좋아지면 금리는 인상 쪽'이라는 너무나 타당했던 발언을 문제 삼는 이들이 꽤나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방에서 더없는 신뢰를 줘야 하는 허니문 기간이 짧게 끝나고 마는 것일까.


사실 '전망대로 되면 금리를 올릴 수 있고 특정 시기를 가정한 것은 아니었다'는 발언은 무책임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입이 거친 사람들 중엔 이같은 '가정을 동원한' 궁색한(?) 발언은 통화정책을 후행적으로 만들 여지가 크다고 본다. 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들도 하면서 비판하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주 금요일 한국은행 출입기자단과 만찬을 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 자신의 의도대로 시장이 인식하지 않는다는 부분에 대해 부담을 드러낸 것이다.


정책결정의 큰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통화당국의 중요한 책무로 여기는 총재는 아마도 '자신이 큰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는데...'하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솔직히 시장의 기대치를 조율하는 게 마냥 쉽지도 않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선 많은 사람들이 '한은 역시 별다른 아이디어가 없다'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했다. 총재가 금통위에서 말한 '6월 경제지표' 등을 보면서 정책금리 방향을 논해보자는 식이다.

 


▲ 역대 경제수장과 정책금리 향방

 


이런 시점에서 등장한 정권 실세 재정부 장관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새로운 경제 수장이 DTI, LTV와 같은 부동산 대출 규제 장치를 어떻게 손을 댈지, 경기부양을 위해 추경편성이나 금리인하 카드같은 것을 활용할지 등 궁금증을 드러내고 있다.


이 지점에서 과거 새로운 수장의 등장이 어떻게 금리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보자.


우선 참여정부 시절 이헌재 장관(2004년2월10일~2005년3월7일) 시절엔 정책금리가 3.75%에서 3.25%로 50bp 내려갔다. 부동산 과열조짐을 우려해 금리를 내려선 안된다고 주장하는 시선이 있었지만 이 장관은 '저금리론자'로서의 평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부동산 급등기에 대한 우려로 통화정책에 대한 비난도 커지면서 2004년 말부터 시장금리는 오르기 시작한다. 결국 당시 정책금리였던 콜금리는 경제수장이 한덕수 장관(2005년3월14일~2006년7월18일)으로 바뀐 뒤인 2005년 5월에 인상된다.


그 때 한국경제 최대 이슈는 거품론에 휩쌓여 있던 부동산이었다. 통화당국은 '부동산에 금리로 대응하는게 옳으냐'를 놓고 고민했다. 하지만 이미 부동산 문제는 정권의 기반을 흔들 정도로 사람들의 갈등을 증폭시켜 놓은 상황이었다. 당시 금리와 부동산 관계를 따지는 게 통화당국에겐 어려운 문제였지만, 부동산 투기를 목도하던 많은 사람들의 눈엔 부동산과 금리의 높은 상관관계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사회적 현상이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한국에서 평범한 직장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집을 장만하는 게 아주 어려워져 버린다. 통화당국은 당시 글로벌 유동성, 저금리의 폐해로 부동산이 급등한 뒤 뒤늦게 금리도 올렸다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정책금리는 계속해서 인상되면서 2008년8월 5.25%, 즉 2000년대 들어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던 2000년말 수준까지 올라갔다. 부동산이 고점을 찍은 이후까지 금리를 후행적으로 올렸던 때다.


당시는 참여정부의 마지막 경제수장 권오규 장관(2006년7월18일~2008년2월29일)과 이명박 정권 초대장관인 강만수 장관(2008년2월29일~2009년2월9일)이 겹치던 시기였다.


이후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정책금리는 계속 인하돼 2009년 2월엔 2.00%까지 내려오게 된다. 강 장관 임기가 끝나던 시점, 윤증현 장관(2009년2월10일~2011년6월1일) 임기 시작 시점에 정책금리는 사상 최대수준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기준금리는 한동안 이 수준에서 머물다가 고환율에 따른 물가 급등으로 비난을 감내하기 어려워지면서 인상되기 시작했다. 정책금리는 2010년 7월부터 인상되기 시작해 2011년 6월 3.25%까지 정상화된다.


하지만 뒤늦게 올렸다는 평가를 들었던 정책금리는 유로존 위기 재발 등으로 글로벌 경기가 제대로 반등하지 못하면서 2012년 7월에 3%로 다시 인하됐다. 이후 2012년 10월 2.75%로, 지난해 5월 2.50%로 내려갔다.


윤증현 장관, 박재완 장관(2011년6월2일~2013년3월22일), 현오석 장관(2013년3월22일~현재)과 보조를 맞췄던 김중수 한은 총재(2010년4월1일~2014년3월31일)는 임기 막바지에 더 이상의 금리인하는 없다면서 매파로 변신했다.


김 총재는 임기 후반부 금리인하 효과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중기물가목표의 하단(2.5%)을 더 낮출 필요가 있었다는 아쉬움과 한국이 내릴 수 있는 금리의 하단이 어디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전 총재인 이성태 총재(2006년4월1일~2010년3월31일)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금리를 2%까지 내린 뒤 금리 정상화 과정에선 '베이비 스텝' 외의 방식으로 금리를 올릴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금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주변에선 그가 임기 만료 전까지 정책금리 수준을 3%까지 맞춰놓고 싶어했으나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면서 MB정부와의 갈등을 거론했다.


이후 김중수 총재는 금리를 125bp 올리면서 이성태 총재의 못다한 과업(?)을 뒤늦게나마 이뤄준다. 하지만 글로벌 상황이 여의치 않자 금리를 다시 내려야 했으며, 2012년부터는 점차 '금리 인하는 할 만큼 했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지난해 5월 '금통위원 표 대결'을 거쳐 정책금리는 한 차례 인하된 뒤 현재 수준에 이르고 있다. 캐스팅 보트를 쥐었던 임승태 전 금통위원은 금리 인상, 인하 논란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감안해 기준금리 인하 쪽에 힘을 실어줬다. 정치적인 힘이 작용했던 것이다.

 

▲ 다시 관심사가 된 금리정책과 정치권력의 역학

 

한국처럼 권력이 한 곳으로 모아진 대통령제 국가에선 어떤 분야든 권력자의 입김을 무시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수십년간 존속했던 기관이 한 순간에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금융시장 사람들도 '잘못된 인습'이라고 비판 받았던 옛날 버릇을 결코 버리지 못할 것이다. 대통령이나 대통령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이 금리인하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그 말에 무게를 실어줄 것이다. 정권 차원에서 금리인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적지 않다.


대통령은 이번에 개각을 하면서 새롭고 참신한 사람보다는 힘이 센 내 사람들로 진용을 꾸렸다. 그러다 보니 참신한 정책보다는 '실세들의 힘 때문에' 경제정책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기대가 커졌다.


때맞춰 전날엔 대통령과 친하다는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서강대 교수)이 '금리 어떻게 해야'하는 주제의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금리정책에 대해 신선한 아이디어는 제공하지 않은 채 한은이 잘못해 왔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아무튼 부동산 정책, 금리 정책, 추경 편성 여부 등이 모두 원점에서 '정부차원에서' 재검토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졌다. 그리고 금리정책도 정부 쪽에서 힌트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0년전 이자율시장엔 유명 저금리론자의 일거수일투족에 긴장하면서 '그의 그림자도 밟아선 안된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던 사람이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금리정책과 관련해 한은보다는 아직 장관에 취임하지도 않은 '내정자'의 의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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