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론이 아니라면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 관찰, 즉 경험에 의거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결코 인과관계를 직접 관찰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원인과 결과의 시간적 양상에 의해 원인이 존재할 때는 결과가 없고, 결과가 존재할 때는 원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과관계를 두 사건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추론에 의해서도 관찰에 의해서도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은 인과관계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흄의 결론은 귀납논증의 경우처럼 습관에 의해서라는 것이다. 즉 특정한 사건에 이어서 또 다른 특정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반복되면, 우리의 마음은 습관적으로 이 두 사건의 유형으로부터 받는 인상들과 이에 상응하는 관념들을 결합하여(associate), 즉 투사(projection)하여 인과관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흄의 비판이 있기 전까지는 인과관계는 필연적 연결(necessary connection)로 간주되었지만 이제 인과관계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한편 인과관계의 필연성을 확보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인과관계를 개별사건(event token) 간의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다. 인과관계를 추정하기 위한 조건은 비슷한 사건들의 반복을 의미하는 규칙성이지만, 이 경우 인과관계의 필연성은 논리적으로 확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인과관계가 단순히 반복에 의한 규칙성과 다르다는 점에서, 즉 원인이란 인과력(causal power)을 갖는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런 경우는 어떤 비판이 가능할까?
개별사건간의 인과관계란 오로지 사후에만 판단된다는 점에서 두 사건이란 실은 하나의 사건을 분할한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피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때 확보된 필연성은 두 사건이 다시는 반복될 수 없다는 점에서 독립성의 상실에 기인한다. 파르메니데스적 일자(一者, the Oneness)가 돌아온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전체의 분할에서 생기는 상호의존적, 필연적 관계를 ‘내재적(internal)’ 관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