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런숄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7.15 월가 장악한 수학천재들…그들은 왜 최악의 금융재앙을 남겼나
반응형
금융공학 기법…돈 쓸어담아
수학 법칙대로 시장 안 움직여…예기치 못한 대규모 충격 불러

퀀트|스캇 패터슨 지음|구본혁 옮김|다산북스|528쪽|2만5000원

《퀀트》의 저자 스캇 패터슨은 "초극단타매매펀드 등 금융시장을 위협하는 요인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한경 DB


파국에 파국이 이어졌다. 2008년 3월,월가의 5대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무너졌다. 한 해 전 불거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한 유동성 악화가 치명타였다. 주당 150달러에 육박했던 주식은 2달러란 헐값에 JP모건으로 넘어갔다.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자산이 6000억달러가 넘었던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 파산이었다.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로 넘어갔고,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도 아사 직전이었다. MIT 앤드루 로 교수가 들어보인 '종말을 가리키는 시계'가 자정을 향해 재깍거렸던 것이다. 로 교수는 '퀀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란 보고서에서 이렇게 적었다.

'만일 우리가 세계금융 시스템에 대한 헤지펀드 산업의 영향을 나타내는 종말의 날 시계를 개발한다면,그 눈금은 (롱텀캐피털이 붕괴된) 1998년 8월에는 자정까지 5분이 남아 있었고,1999년 1월에는 자정까지 15분이 남아 있었으며,헤지펀드 산업에 있어서의 체계적 위험 상태에 대한 우리의 현재 전망은 밤 11시51분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

과연 2008년의 월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세상을 뒤덮었던 엄청난 금융쓰나미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퀀트》는 2008년 월가에서 비롯된 금융시장 붕괴의 원인과 뒷얘기를 다룬 책이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인 저자의 시각이 독특하다. 그는 자본시장을 좌지우지했던 '퀀트'들에 초점을 맞춘다.

퀀트는 고도의 수학 · 통계 지식을 이용한 계량분석기법으로 투자법칙을 찾아내고 컴퓨터로 적합한 프로그램을 구축한 뒤 투자를 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마디로 수학과 컴퓨터 분야의 천재들이다. 모건스탠리의 내부 헤지펀드인 PDT의 피터 멀러,시카고의 헤지펀드 시타델 인스트루먼트 그룹의 켄 그리핀,400억달러 규모의 헤지펀드 AQR캐피털매니지먼트의 클리프 애스네스,도이치뱅크 내의 신용트레이딩펀드를 운영하는 보아즈 웨인스타인 등이다.

저자는 소설처럼 이 퀀트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어떻게 금융공학투자기법이 만들어졌고,그것이 어떻게 금융 재앙의 씨앗이 됐으며,2008년의 금융시장 붕괴는 어떻게 촉발됐는지 조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컴퓨터를 활용하는 퀀트들은 전통적인 투자 판단 요소인 '펀더멘털'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한 기업의 주가가 시장의 다른 주식들과 비교해 얼마나 낮은지,얼마나 빨리 상승하거나 하락했는지 또는 두 요인을 결합해 찾아낸 변수를 바탕으로 해당 기업의 주가변동을 예측하는 데만 집중한다.

저자는 1960년대 에드워드 오클리 소프를 퀀트의 대부로 꼽는다. UCLA에서 물리학 박사를 받은 뒤 MIT 교수로 재직하던 소프는 '주식시장 가격의 무작위적 특성'에 주목했다.

시장은 무작위적 걸음의 움직임,즉 '랜덤워크' 특성을 보인다. 그러나 관찰 횟수가 증가할수록 예측의 확실성이 증가한다는 '대수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루 앞이나 1주일 앞의 주가추이는 알 도리가 없지만 장기적으로 얼마나 오르내릴 가능성이 있는지 확률을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변동성을 평가하는 방법으로 가격추이를 예상할 수 있다면 베팅 기회가 생기는 게 당연하다. 주가가 저평가됐다면 매입하고,과평가됐으면 공매도해 차익을 챙길 수 있는 것.

한 시장에서 싼 자산을 매입하면서 동시에 다른 시장에서 비싸게 파는 순수차익거래도 생각할 수 있다. 시카고대의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즈 교수가 만들어 월가에 혁명을 불러온 '블랙-숄즈 옵션가격결정모형'도 랜덤워크 특성에 기초한 것이다.


퀀트들은 컴퓨터를 신뢰했다. 과거 자료분석을 토대로 한 프로그램에 맡기고 마우스를 클릭만 하면 거래가 성사돼 돈을 쓸어담았다. 1980년대 중반 '증권화' 비즈니스도 개발됐다. 은행들은 모기지대출을 사들여 유가증권으로 만들었고 그것을 여러 개로 쪼개 기관투자가들에게 팔았다. 위험을 분산하고 수수료는 챙기는 '신용부도스와프'도 나왔다. 다양한 부채들을 새로 포장해 만든 '부채담보부증권' 등 파생상품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시장은 수학법칙대로만 움직이지 않았다. 저자는 나심 탈레브가 《블랙스완》에서 지적했듯이 예기치 못한 가격 변동이 시장에 대규모 충격을 미쳤다고 말한다. 전 세계 금융시스템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어 파장이 더 커진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부채담보부증권 등 시장을 붕괴시켰던 많은 요인들이 퇴장됐지만 새 위험 요인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중 하나가 상장지수펀드다. 많은 상장지수펀드들이 공매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한꺼번에 자금을 투입하거나 인출하면 시장의 안정성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초극단타매매펀드들에 의한 거래량의 폭발적 증가 추세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반응형
Posted by 스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