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ay2015. 8. 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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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이상한 물가채 평가, 그리고 물가채의 비극과 희극 - 로이터


지난 달 24일경. 국고채전문유통시장(장내시장)에서 물가채 거래가 대거 늘어났다.


헌 채권을 새 채권으로 바꿔주는 국고채 교환 입찰 이후 올해 발행된 물가채 지표물 15-5호가 장내에서 600억원 가량 거래되는 일이 발생했다. 발행 잔량이 1천억원을 약간 넘는 수준임을 감안할 때 열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물가채는 그간 유동성 없어서 가격메리트만 보고 접근했던 '선구적' 투자자들에게 큰 고통을 안기곤 했다. 여기에 저물가 구조 장기화라는 환경 역시 물가채 투자의 적이었다.


지난달 말의 거래 급증은 기획재정부가 물가채 경과물을 교환해주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아울러 지금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전년비)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지금보다는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인식도 한몫했다.


향후 물가가 얼마나 오를지 모른다고 해도 '가치 평가' 측면에서 보면 물가채 메리트는 상당히 큰 듯했다.


사실 좋은 주식과 좋은 기업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듯이 앞으로 물가가 많이 오르지 않더라도 물가채권 가격이 싸보인다면 매수 욕구를 느끼는 게 당연한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07년 처음 발행된 물가채는 투자자들에게 트로이 목마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럴싸한 투자대상물로 보였지만, 유동성이 없어 '제대로 팔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과거에 대한 이런 트라우마는 물가채 메리트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매수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노력 등이 있었지만 아직도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 물가7-2호, "평가가 이상하다"


최근 누군가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물가 7-2호를 한번 보세요. 이 평가가 정당하다고 보세요?"


지난 2007년 3월에 발행한 '초기' 물가채의 금리는 20일 현재 1.422%였다. 이 물가채와 같은 시기에 발행된 10년 국고채 국고12-1호의 금리는 1.687%였다.


명목국채와 물가채의 스프레드, 즉 BEI는 26bp에 불과했다. 뭔가 크게 고려하지 않더라도 평가가 이상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BEI는 명목국채와 물가연동국채(물가채)의 금리차다. 이론적으로 BEI는 기대인플레이션을 반영한다.


명목국채 금리가 실질금리에 기대인플레이션을 더한 것이라면 물가채는 실질금리를 나타내는 셈이다. 즉 이론적인 BEI(Break-even inflation rate) 개념은 BEI와 실제 물가상승률이 같다면 명목채권에 투자하든 물가채권에 투자하든 수익이 동일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소비자물가지수 등과 비교해 물가채권의 저평가, 혹은 고평가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이다.


20일날 물가7-2호의 평가 대로라면 향후 대략 2년간(7-2호는 만기가 2017년3월이다) 평균 물가상승률 0.26%를 상정한다고 볼 수 있다.


물가7-2호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은 이런 현상을 '어이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이런 식의 평가는 물가7-2를 물가15-5에 연동해서 평가하기 때문에 발생해요. 향후 물가7-2호 금리가 명목채권인 국고12-1호 금리보다 높아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군요."


만약 디플레이션 상황이 온다면 물가채권 금리는 명목채권 금리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 이 사람의 얘기는 '평가'에 의해 거래가 안 되는 채권의 가격이 엉뚱하게 매겨질 수 있다 쪽에 맞춰졌다.


금융시장에서 증권의 가격은 '거래'가 최우선이다. 거래가 없을 때는 평가를 해야 한다. 하지만 엉뚱한 평가를 남발할 경우 시장은 활력을 잃어버리고 '영민한' 투자자들은 도태될 수 있다. 정상시장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지표채권이라고 부르는 최근에 발행된 채권은 유동성이 있기 때문에 거래가격 대로 평가하면 된다. 문제는 거래가 잘 안되는 채권이다.


과거엔 비지표채권(최근이 아닌 오래된 채권으로 유동성이 떨어진다)을 지표채권과 비슷하게 뭉뚱거려서 평가한 적도 있다. 역시 초기 시장의 문제점이었다. 아울러 비지표채권 가격을 단순하게 지표채 움직임에 따라 올리거나, 내리는 것 역시 모순된 행위다.


물가7-2호의 소외현상은 정상적인 시장을 위해선 가격평가도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웅변해 주고 있다.


▲ 물가채의 비극


물가연동국채는 원금과 이자가 물가변동분을 반영해서 조정된다. 즉 물가상승기에도 구매력을 유지할 수 있는 매력적인 투자대상물이다.


일반적인 채권은 물가가 오르면 금리가 올라 가격이 떨어지만 물가채는 원금과 이자, 즉 원리금이 물가가 오르는 만큼 오른다. 즉 물가가 오르면 유리해져 변동금리부채권(FRN) 성격을 띈다.


물가채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도 계속됐다. 정부는 물가상승에 따라 원금이 늘어난 부분에 대해선 비과세를 해주는 등 떡고물들을 던지곤 했다. 최근엔 금융종합과세 기준이 2천만원으로 낮춰져서 분리과세를 통한 절세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간 물가채 투자로 비극적인 상황을 맞았던 경우가 많았다. 가까운 시점을 살펴보자.


2013년 상반기엔 절세 효과 홍보 등으로 이 채권에 대한 매수세가 과하게 늘어나고 BEI는 2%를 훌쩍 넘는 수준에서 형성됐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대, 0%대에 불과했다. 채권 고평가였던 것이다.


이후 2013년 하반기엔 전반적인 채권금리가 올라 명목국채, 물가채 금리 모두 크게 상승했다. 이러면 결국 자본손실이 커져 이자수익으로 이런 투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이래저래 물가채에 당한 뒤 많은 사람들은 물가채를 '계륵'같은 존재로 여겼다. 얼핏 매력적인 투자대상물로 보였지만, 막상 사보면 물가는 제대로 오르지 않았거나 유동성이 부족해 제 때에 팔기도 어려웠다.


▲ 또 다시 아주 매력적으로 보이는 물가채


올해 발행된 물가채 지표물 15-5호를 보자. 물가15-5호는 올해 6월에 발행된 10년짜리 채권으로 금리가 1.661%다. 동일만기의 국고15-2호의 금리는 2.467%였다. 즉 BEI가 80.6bp에 달한다.


원론적으로 보면 앞으로 10년간 평균적인 물가상승률이 0.8% 남짓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국내의 올해 소비자물가가 0%대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물가채는 앞으로도 한국이 0%대의 물가상승률을 지속할 것이란 예상을 반영하고 있다.


물가당국이라는 한국은행은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0.9%로 제시해 놓았다. 물론 애초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대의 물가 상승률을 예상하다가 끊임없이 물가전망을 낮추는 게 우리 물가당국이 하는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선진국도 아닌 한국이 계속해서 0%대의 물가상승률을 이어갈 것으로 보는 게 합당할까. 일부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면 0%대의 물가가 계속된다고 보기는 사실 어렵다.


원하는 때에 사고 팔 수 없는, 즉 유동성이 떨어지는 오래된 물가채권들은 가격적인 측면에서 더 싸 보인다.


2013년에 나온 유동성 좋은 채권 물가13-4호의 BEI는 70bp를 조금 넘는 수준이고 물가11-4호는 55bp 수준, 물가10-4호는 50bp가 되지 않는다. 만기가 2년도 남지 않은 초기 물가채인 물가7-2호의 BEI는 26.5bp에 불과하다.


물론 오래된 경과물 채권일수록 유동성이 떨어져 가격이 상당폭 할인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해보인다.


이런 점은 미국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국내는 발행시 10년짜리 물가채만 발행하지만 미국은 좀더 다양한 물건들이 있다. 역시 20일 기준으로 보면 미국의 10년짜리 TIPS(미국 물가채권)의 금리는0.53%, 명목채권은 2.37%다. BEI가 '무려' 184bp에 달한다.


국내의 경우 아직 물가채를 발행한지 10년이 안됐고 미국 물가채시장은 이미 성숙돼 '선진화'돼 있다고 하더라도 그 차이가 너무 커 보인다.


더구나 미국이 선진국이고 한국이 신흥국이란 점을 감안하면 '정상적인 경우'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한국보다 낮아야 한다. 30년짜리 TIPS의 BEI는 197bp로 200bp에 가깝고 5년 짜리는 156bp다.


결국 한국은 물가채 활성화를 위해 '인플레이션 대비 효과'를 홍보하기도 했고 원금증가분 비과세나 분리과세 등 각종 세제혜택도 줬다. 하지만 한국의 물가채는 대체로 별로 관심을 못 받았다.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BEI가 기대인플레이션을 예시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정책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하지만 국내 물가채는 아직 이런 정도까지 성숙하지 못했다.


▲ 물가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금융시장에 특정 상품이 출현하면 정상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과거 국채선물이 처음 등장했을 때 선물 저평가가 엄청났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저평가가 당시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후 시장이 성숙되면서 저평가는 줄어들고 고평가가 나기도 했다. 시장이 발전한다는 것은 곧 '쉽게 돈을 벌'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물가채도 결국 이런 경로를 밟아가지 않을까? 향후 물가채 거래가 더 늘어난다면 분명 '정상화' 과정은 좀더 힘을 받을 것이다.


영민한 투자자는 어떤 투자대상물이 출현했을 때 남들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 이에 접근해 은근한 수익을 확보하곤 한다.


물가채는 세금문제를 일단 따지고 들어가야 한다. 개인투자자들은 더욱 신경이 쓰이는 문제다. 세법이 바뀌면서 2013년 발행분부터는 3년 이상 보유한 뒤 발생한 이자에 대해 분리과세를 해준다. 2015년, 즉 올해 발행분부터는 물가채 원금상승분에 대한 비과세 혜택이 폐지됐다.


주변엔 금리가 과거에 비해 매우 낮은 이 시대에 물가채는 좀더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유용한 투자대상물이란 관점을 갖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일부에선 적극 투자를 조언하기도 한다.


NH투자증권은 연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8%로 올라가는 경로를 가정해 BEI 롱 포지션(물가채 매수, 명목국채 매도) 포지션을 권했다. 이 회사는 BEI가 150bp 수준으로 확대될 수 있다면 무려 69bp에 가까운 수익이 기대된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 회사는 물가채에 대한 직접투자의 수익도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명목 국채금리 전망치 2.80%와 BEI전망치 150bp를 고려해 물가15-5호가 1.30%까지 36bp 가량 하락할 것으로 봤다. 이 경우 연말까지 3.25% 가량의 대단한 자본차익, 연환산으로 7.27%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간 유동성 문제, 평가에 대한 불신 등이 물가채 투자자에게 적지 않은 고통을 안겼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시장이 성숙돼 가는 중간에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물가채의 매력적인 가격을 '트로이의 목마' 혹은 트라우마 차원에서 접근할 것인지, 다시 한번 투자해 볼 만한 기회로 활용할 것인지는 판단의 문제다. 과거의 경험의 소중하긴 하지만, 미래가 반드시 과거의 재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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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