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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노 칼럼2013. 8. 2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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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 [세이노의 부자아빠 만들기] 경제는 냉혈동물이다

 

경제의 피는 차갑다.

 

사업가를 꿈꾸거나 반대로 욕하는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경제는 냉혈동물이며 그 피는 돈이며 이득이다. 그 피에 따스한 체온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과 집단 국가 모두 이득을 추구한다. 비영리단체들도 수입이 없으면 문을 닫는다.

 

이익추구활동이 가장 극명한 집단으로 마피아를 꼽을 수 있다. ‘마피아 경영학’이라는 책도 있다. 준법정신을 제외한다면 그들의 경영기법은 일반과 다를 바 없다. 최소인원과 최저투자 최대이득창출이 요지이고 경쟁자를 제거하며 배신자가 나오지 않도록 인사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 아닌가.

 

기업은 일차적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사명선언문(MISSION STATEMENT)을 만들고 인류의 평화와 행복 번영에 공헌하겠다고 내세우지만 이익이 창출될 때 그렇다는 말이지 손해를 본다면 회사가 공중분해되고 만다.

 

너무 직설적인가? ‘변화하는 미국경제, 새로운 게임의 룰’의 저자 마리나 휘트먼도 “미국 대기업은 이제 더이상 옛날의 선량한 기업이 아니며, 자선사업가적 위치에서 스스로 물러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구조적으로 변신했음”을 역설한다. 다임러 크라이슬러회장 위르겐 슈타인 역시 “수익을 내는 기업만이 사회적인 책임도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 친구들이 내게 하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 부자가 되거나 가난해 질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부자가 되거나 죽임을 당한다.” 경쟁자가 보낸 마피아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세상을 뜨게 된다는 말이다.

 

사업을 하겠다는 말은 결국 경쟁자들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하겠다는 출사표이다. 심지어 나는 “경쟁사를 망하게 하는 것”을 내 취미로 여긴 적이 있다. 그런 싸움 때문에 세상이 황폐해진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그 싸움은 종종 너무나 외롭고 가슴 아프다. 그러나 패배하면 눈물만 남는다. 내가 패배하면 그 눈물은 나와 전직원 그 가족들 모두의 몫이 된다. 나는 직원들의 어린 자녀들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오직 승리를 향해 달려야 하므로 주변 경치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잔혹한 기업사냥꾼으로 나오는 리챠드 기어는 자신이 하는 일에 문득 회한을 품은 뒤에야 길거리 여인 쥴리아 로버츠에게 사랑을 느낀다. 주변 경치를 보게 된 것이다. 나도 사업을 대폭 줄이고 나서야 주위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의 차가운 피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사업은 망한다. 마음이 따뜻한 독자들이여. 당신은 돈이 다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주인으로서 수시로 전세금을 올렸을 것이며 세입자가 고통을 받건 말건 지금은 월세로 전환시켜 이익을 더 내려고 할 것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경제의 피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의 피를 따스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돈의 운영자에게 달려있는 것이지 경쟁원리나 경제제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

 

 


 자본주의의 피는 돈이다. 이것을 뛰게하는 것은 국민이 아닌 연방준비은행 혹은 중앙은행이다. 그것이 심장이고 심장이 잘못되면 경제는 파탄이 나고 만다. 세상은 분명 아름답다. 그러나 항상 아름다울 수가 없다. 마치 눈이 보는 것이상으로 다른 행위를 할 수 없고 코가 냄새를 맡는 것 처럼 아름다운 것을 느낄 수 있는 만큼 비열하고 냉철한 곳이 존재한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작용과 반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개인적인 사견이다.

 

 

 금융 시장 뿐만 아니라 우리생활에서는 한정된 자원으로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태환이라는 한국수영계의 영웅도 세계무대에 나가 경쟁에서 지면 많은 사람들은 그것에 대한 실망을 한다. 경쟁에서 뒤쳐진다는 것은 잊혀지거나 죽음을 의미한다는 이미지는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각인되어왔다. 뿐만 아니라 이땅을 밟고 있는 세계의 룰은 글로벌 스텐더드, 금융자본주의 라는 메트릭스에 짜여져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소설, 시, 노래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세상과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작년 말이었다. 나도 주변의 아름다움과 돈의 허망함을 느껴본 적이 있다. 어린나이에 벌써 그런걸 느껴봤냐고? 그렇다 경험에는 제한이 없다. 나이가 어리든 그것에 대해 원하지 않아도 죽음이라는 경험이 찾아오는 것 처럼 허망함이나 후회는 급작스럽게 찾아오기도 한다. 물론 장기적으로 이러한 감정은 나를 단련시키고 쫌 더 위기에 대처하도록 해준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서 떠오르는 기억들은 내가 금융시장에서 벌고 있는 수익률만큼 영혼이 황폐해져간다는 걸 느꼈다. 내가 도박을 하는 것인지 투자를 하는 것인지 트레이딩을 하는 것인지 인지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나타났다. 물론 그 사람을 지금 바로 볼 수 없지만 그 사람은 나에게 주변의 경치와 사람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해 준 사람이다. 그러나 만나는 기회가 줄어들 수록 나는 이것이 비용만 드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냉철한 경제와 인정없는 돈의 세계에 다시 들어왔고, 점점 적응하고 내가 죽지 않기 위해선 내 몸이 다치지 않기 위해선 상대를 간파하고 상대의 허점을 이용해 자멸하게끔 유도해야 된다는 자리를 잡았다. 나는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 직접 느껴보고싶다. 이런 감정 이런 생각 ... 20대가 가지는 강한 집념중 하나란다. 다음 단계에서 좀더 풍요롭고 나의 자의식을 강하게 하기 위한 과정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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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