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2013. 8. 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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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는 일찍부터 봉건제도가 해체되면서 농촌에서는 자유로운 농민층이 많이 나타났다. 이들 자유농민층을 모체로 하여 농촌 모직물공업이 발달하게 되는데, 농민층 분해의 진전과 함께 선대객주제()와 매뉴팩처의 형태를 취한 초기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그 밖의 유럽 여러 나라에서보다 순조롭게 나타나게 되었으며, 17세기 중엽 절대권력을 일소한 시민혁명 ·해외시장 ·식민지 획득, 외국 특히 네덜란드 ·프랑스와의 상업경쟁에 대한 유효한 중상주의적 정책이 서로 작용하여 본원적 축적이 현저하게 진행되었다.

또한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공업화를 촉진한 가장 중요한 현상은 16세기 중엽 이후의 목재자원의 고갈이었으며, 이로 인해 야기된 것이 연료 위기였다. 이 연료 위기를 극복한 기술혁신이 무생물적 자원인 석탄의 조직적 이용이었으며, 그 결과 영국은 1540∼1640년에 석탄산업을 중심으로 한 여러 관련산업의 발전이 촉진되어, 18세기 산업혁명에 맞먹을 정도의 생산확대를 가져오게 되었다. J.U.네프는 이것을 ‘초기 산업혁명’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석탄에 대한 수요와 생산이 증대함에 따라 기술적으로 해결을 요하는 당면과제로, 탄갱()의 배수문제(), 석탄의 수송문제, 철광석 용해에 있어서의 기술개발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과제들이 사회적 ·기술적으로 해결되어 가는 가운데 산업혁명의 조건도 정비되어 갔다.

즉 탄갱의 배수처리라는 기술적 문제는 T.세이버리가 고안한, ‘광부의 친구’라 부르는 펌프, T.뉴커먼대기압기관 등 초기 증기기관의 발명을 촉진시키고, 마침내 J.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기에 이르렀다. 와트의 증기기관은 수력 ·풍력 ·축력() ·인력 등 농업사회의 기본적인 동력을 능가하는 것으로서 동력혁명()을 가져왔으며, 산업혁명을 혁명이라 부를 수 있게 한 기술적인 기초를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한편 석탄 수송문제는 도로의 개수, 운하의 건설 등 사회적 간접자본에의 투자를 촉진시킴과 동시에 국내시장의 확대에도 기여했다. 아브라함 다비1세에 의한 철광석 용해에서의 코크스로() 제련법의 개발은 철과 석탄 시대를 가져온 가장 중요한 기술혁신이었다. 그 밖에도 농업부문에서의 기술혁신 인클로저 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토지제도의 근대화 및 대농경영이 농업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왔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다.

이러한 여러 조건이 정비되고 충실해지는 과정에서 산업혁명은 먼저 면공업(綿)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영국의 전통적 산업인 모직물 공업에서가 아니라 신흥 면공업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은, 영국이 동인도무역에 의해 17세기 말에 들여온 인도산() 캘리코 면직물이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있어 의료혁명()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면제품의 수요를 자극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서인도 제도에서 나는 설탕 ·담배 등과 마찬가지로 노예노동에 의한 플랜테이션에 의해 재배된 면화를 원료로 하여, 인도산 캘리코 면직물과 경쟁할 수 있는 면제품을 제조하는 일이 18세기 초의 국민적 과제가 되었다. 이 과제를 해결하도록 추진시킨 것은 전래의 지배계급인 지주나 전통적인 직물업자가 아니고 주로 상인과 요먼이라고 부르는 자영농민층이었으며, 그들 대부분이 비국교도이자 국가의 원조도 없이 자조정신으로 기업을 이룩한 사람들이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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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