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2013. 8. 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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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개발원 2002년 11-12월호에 실린 기고문입니다. 실업 교육의 문제가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 풍토 조성 및 이공계 문제와도 직결되는 만큼, 사이엔지 멤버들도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이슈진단

실업계 고교의 근본 문제점과 개혁의 방향

글 / 장석민(한국직업능력개발원 수석연구위원, smchang@krivet.re.kr)

Ⅰ. 실업계 고교 문제 제기의 배경
실업계 고교의 문제가 심각한 현안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실업계 고교가 IMF 경제 위기 이후 취업률마저 떨어지고, 학생모집도 매우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실업계 고교는 원천적으로 많은 취약점을 안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에도 실업계 고교는 1970년대이래 직업교육 중시 정책에 의하여 많은 발전을 하였고 경제 발전을 위한 기능인력 양성을 뒷받침 하여왔다. 1980년대 경제 침체와 더불어 실업계 고교의 위기가 찾아왔고, 노태우 정부 하에서는 제조업 경쟁력 강화 대책과 더불어 인문고 대 실업고를 50:50으로 한다는 실업계 고교 발전대책이 추진되었다. 이러한 대책으로 실업계 고교에 투자가 확대되고 한때 실업고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90%을 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하였다.
현재 실업계 고교가 위기에 내몰리는 계기는 김영삼 정부가 1996년 2월 9일 발표한 교육 개혁방안(Ⅱ)에서 만들어졌다. 김영삼 정부는 이 방안에서 전문대학 졸업자에게는 산업학사를 수여하고, 2000년까지 희망하는 모든 고등학교 졸업자에게 전문대학 수준의 교육 기회를 보장한다는 선언을 하였다. 이로 인하여 이후 소위 "50:50"이란 정책은 아무런 발표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고, 실업계 고교의 대학진학 열풍이 거세게 불기 시작하였다.
그 이전까지 10% 내외이던 실업계 고교의 대학 진학률이 교육 개혁(Ⅱ)이 발표된 다음 연도인 1997년에는 29.7%로 급격히 높아졌고 최근에는 50∼60%까지 높아지게 된 것이다. 실업계 고교마저 입시 준비교육기관으로 전락되고 있다는 비판과 더불어 그 정체성의 혼란이 야기된 것이다. 최종 수요자인 산업체의 인력 수요는 간과한 채 수요자 중심이라는 미명하에 중간 수요인자인 학생 및 학부의 요구에 따라 인문교육 및 고등교육 팽창 정책을 취해온 것이다. 이러한 교육 정책은 궁극적으로 기능 인력난을 심화시키고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능인력난이 심화되는 가운데 정부는 실업계 고교의 개편을 미룬 채, "산업기술 연수생"이란 미명하에 외국인 근로자를 수입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취업 청소년들은 100만 이상이 미취업 상태에 있으면서 외국인 근로자는 불법 취업자를 포함하여 30만이 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인문교육 편중 및 고등교육 팽창 정책의 와중에서 실업계 고교의 발전 정책은 미루어지고, 상대적으로 더욱 위축되어 왔으며, 드디어 IMF 경제 위기 이후 그동안 축적된 문제점이 폭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교육인적자원부는 2000년 1월 13일 실업고 육성대책을 발표하였다. 이 대책의 핵심은 경쟁력 없는 실업고를 일반계 고교로 전환하고, 인문교육과 직업교육을 통합 운영하는 통합형 고교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경영이 어려운 실업고를 일반계 고교로 전환해 주면, 결국 실업고로 존속할 학교가 없게 될 것이며, 인문과정과 직업과정을 통합 운영하면 종합고등학교 운영의 선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직업과정은 고사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우려에서 대책은 실업고를 살리기는커녕 실업계 고교 고사 대책으로 인식되어 일선학교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좌초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후 실업계 고교 육성대책을 일선학교가 강력하게 요구하자, 교육인적자원부는 2001년 다시 실업계 고교생들에게 대학 진학의 문호를 열어주기 위하여 대학수학능력 시험에 직업탐구 영역을 신설(2005년부터 적용 예정)하는 정책과 동일계 대학 진학의 경우 입학정원의 3% 이내에서 정원외 선발을 허용(2004년부터 적용 예정)하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대부분의 대학에서 거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그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가운데 실업고의 정체성 문제 및 향후 발전에 관한 근본 방향 설정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실업계 고교는 근본 개혁 없는 미봉책으로서는 회생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차제에 실업계 고교의 근본 문제점을 진단해 보고 개혁의 방향을 생각해 본다.

Ⅱ. 실업계 고교의 근본 문제점

1. 실업고의 정체성 혼란 및 사회적 위상 저하
실업계 고교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의 하나는 그것이 교육제도상 인문교육의 아류교육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해방이후 고등교육이 지금과 같이 보편화되기 이전에는 실업계 고교에도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하였고, 졸업 후 취업도 잘 되었고, 기업에서 중견간부이상으로 승진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실업계 고교의 위상은 인문계 고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하락을 지속하여 왔다. 실업계 고교는 인문계 고교에 진학할 수 없는 열등한 학생들이 마지못해 진학하는 막다른 골목의 학교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실업계 고교는 경제적으로 빈곤하지만 우수한 학생들이 취업을 위하여 진학하는 고등학교로서 사회적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실업계 고교는 졸업 후 진학의 길도 막혀 있고 취업도 어려우며, 취업이 된다하여도 3D 업종에 제한되며, 현직에서의 승진과 발전이 불리하게 되는 학교란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실업계 고교가 이와 같이 인문교육의 아류교육으로서 인식되고 있는 것은 학교제도가 일반교육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고, 직업교육 기관은 일반교육의 진학통로에서 탈락된 학생들을 임시로 수용하여 사회로 배출하는 아류교육 기관으로 설계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와 같은 교육제도 하에서는 직업교육이 독자성을 갖고 발전해 나가기는 원천적으로 어렵다. 그나마 교육 정책이 산업 인력수요에 무관하게 고등교육과 인문교육만을 팽창시켜 왔기 때문에 대다수의 청소년들이 일반계 고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보편화되게 되었으며, 상대적으로 실업계 고교는 학업이 열등한 소수학생들이 마지못해 진학하는 진로가 막힌 학교로서의 인식을 갖게 되었다.
실업계 고교는 승진과 발전, 임금 면에서 불리한 학교로서 그 사회적 위상이 하락됨에 따라 청소년들이 진학을 기피하게 되었으며, 최근에는 설상가상으로 학력인구의 감소 추세로 입학자원이 더욱 감소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정원미달 현상이 현실로 다가오자 일부 실업계 학교들은 학생들에게 좀 더 높은 유인가를 제공하기 위하여 대학으로의 진학 기회 확대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전문대학, 산업대학 및 야간대학으로의 특별전형에 의한 진학 기회가 계속해서 확대되어 왔다. 최근에는 실고생의 대학 진학을 위하여 수능시험에 직업탐구 영역을 신설하고 동일계 대학진학의 경우 정원외 입학을 허용하는 정책까지 도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은 실업계 고교가 입학생을 모집하는 데 다소간은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는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결과적으로 부실한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실업고 역시 대학진학 준비 교육 기관화함으로써 실업고의 정체성을 상실케 하고, 실업고 무용론까지 대두케 한 원인이다. 이러한 진학위주의 실업고 구제 정책은 기능 인력을 양성하는 직업교육 기관으로서 실업고의 기능과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상실케 하고 있다.
실업고생들을 일단 기능인으로 양성하여 산업현장에 취업케 하고, 평생교육 시대를 맞이하여 고등교육단계까지 계속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실업고의 기초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실업고의 위상을 강화해 나가는 정책과, 실업고 졸업생을 졸업과 동시에 고등교육기관으로 진학시키는 입시준비 교육기관화하는 정책은 교육의 근본적 방향과 관점이 다르다. 전자는 직업교육기관의 관점에서 실업고의 사회적 매력과 위상을 높여 나가는 것이며, 후자는 근본적으로 실업고를 일반계 고교화하는 정책인 것이다. 오늘날 실업고는 전자와 후자 사이를 넘나드는 혼돈된 교육 정책과 현실로 인하여 정체성의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실업계 고교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근본 철학과 관점을 세우지 못하고 그때그때 제기되는 현상적 문제 해결에만 집착하여 실업고의 정체성이 상실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으며, 실업고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채 입학정원 확보 그 자체만을 위한 모순된 정책을 강구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2. 직무 현장과 유리된 교육과정 운영
실업계 고교는 전통적으로 이론과 개념 중심의 교육내용 편성 방법을 고수해 옴으로써 학습 곤란도가 높고, 현장 타당성이 낮은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교육과정 편성은 적은 투자로 짧은 시간에 완성하기 위하여 주로 학자와 교수들이 참여하여 기존의 학문체계 중심으로 교육내용을 선정 조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현장의 참여가 외면되거나, 참여되었다 하더라도 형식적으로 이루어져 온 것이다.
이러한 교육과정은 과거 비교적 우수한 학생들이 실업고에 진학하던 때에는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가르칠 수 있었다.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중학교 졸업생의 거의 100%가 고교로 진학하고, 실업계 고교는 이중 하위 30-40%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진학하고 있다. 실업계 고교에 진학하는 이들 대부분은 기초학력이 부족하며, 학습동기와 적극적 학습 태도가 결여된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실에서 학문체계 중심의 전통적인 교육과정은 학생들에게 배우기 어렵고 흥미없는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실업계 고교에 중학교 졸업생의 상위 30%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진학한다면 이론과 개념 체계 중심의 교육이 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우수한 학생들은 쉽게 개념과 이론을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론과 개념 중심의 교육과정이 아직까지 존속됨으로써 이론은 너무 어려워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실무 기능은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아서 못 배우는 결과를 낳고 있다. 오래전부터 산업체에서는 실업고 졸업생들이 현장 적응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불평을 제기해 왔다. 산업체 대표들은 우리나라의 실업고 졸업생들이 현장 적응력이 부족하여 입직 이후 많은 시간과 경비를 투자하여, 기능훈련은 말할 것도 없고, 인격훈련마저도 새로 시켜야 할 상황이란 점을 문제점으로 제기해 오고 있다. 실업계 고교에서는 교양과목마저도 입시 위주로 되어 있는 일반계 고교의 그것과 동일한 것을 가르치게 함으로서, 직업인으로서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실질적 교양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실업계 고교는 기능 교육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교육마저도 실패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실업고 졸업생의 80%이상이 중소제조업체에 취업하는 경향을 보이며 극히 소수만이 대기업에 취업이 된다. 실업고 졸업생에 대한 인력 수요가 크게 변한 것이다.
이러한 산업체 현장의 교육적 요구와 인력수요를 체계적으로 고려하는 교육과정 편성 운영방안이 마련이 되지 않고서는 실업고의 교육과정은 산업현장의 변화에 뒤지고 괴리될 수밖에 없다. 산업체 현장의 요구가 주기적으로 진단되고 이러한 요구가 체계적으로 교육과정 편성에 연계되는 산학협력 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과정의 현장 괴리문제는 불가피한 문제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학생들의 현장 실습도 실효를 거둘 수 없으며, 형식적으로 이루어 질 수밖에 없다.

3. 비민주적 자격제도 운영
자격제도는 실업계 고교 교육을 활성화하고, 졸업생들의 현장 적응력을 높여주는 원천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자격제도는 이 모두의 기능에서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노동부가 관장하고 기능 자격기준과 교육인적자원부가 제정하는 교육과정간에 아무런 체계적 연계가 없기 때문에, 일선학교는 오래 전부터 혼란을 겪어오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제정한 교육과정을 이수시키는 데 있어서도 일선 학교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또 다른 기준으로서 기능자격을 취득시키기 위한 교육을 수행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일선학교는 오래 전부터 자격기준과 교육과정을 통합하여 무시험 검정으로 기능사 자격을 부여하는 방안의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과정과 자격검정의 이중적 기준의 교육 운영으로 일선학교는 많은 측면에서 혼선을 빚고 있으며, 교육의 효율성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
일선 실업계 고교가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자격취득율을 높이고 있지만, 자격을 취득한 대부분의 졸업생들은 취업에 있어서나 승진에 있어서 별다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현장 적응과 생산성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자격취득의 기준이 대부분 현장의 변화에 뒤져 있는 기능들이기 때문이다. 현장의 직무 요구와 교육과정과, 그리고 자격기준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제도적 장치가 없고 부처 별로 별도의 법과 기준에 의하여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한 비합리적 자격제도의 운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 나라는 기능자격과 기술자격을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이것은 전통적 신분사회에서 관행적으로 받아들여진 제도이다. 그러나 기능과 기술은 하나의 뿌리를 가진 것이며 연속성 상에 있다. 기능인으로 출발하여 기술인으로 발전케 하는 것은 기술 교육상 가능하고 바람직하며, 민주사회의 관점에도 바람직한 것이다. 기능자격과 기술자격을 엄격히 구분하여 기능인들의 자격 상승과 발전 통로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비민주적 제도의 관행은 이제 재고되어야 한다. 이러한 제도의 관행이 지속되는 한 기능인의 양성을 주된 기능으로 하는 실업계 고교의 활성화는 난제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4. 산학 역할 분담 체제의 결여
산업현장은 현장의 기술과 기능을 배울 수 있는 최적의 학습장소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 나라도 현장실습을 중시하고 있다. 이러한 현장 실습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산업체와 학교간에 협력을 위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현장실습이 학교의 일방적 요구로 이루어지거나, 산업체의 책임있는 협력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형식화되거나 내실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와 산업체, 그리고 정부를 포함한 관계 기관간에 책임 있는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들이 학교로부터 직업 세계로의 이행(School to Work Transition)을 위하여 역할 주체간 협력체제를 제도화하고 있다. 관계 기관 등의 이해관계가 상호 맞물려 긴밀히 협조하고 책임과 성과를 공유하는 제도가 정착되어 있는 것이다. 산학협동 교육(Cooperative Education)의 차원을 넘어 연구개발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상호 이익과 상호협력을 추구하는 역할 분담체제(Partnership system)가 마련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산업체와 학교간에 긴밀한 협력체제가 구성되어 있지 못하며, 상호 역할분담이 정립되어 있지 못한 상황에서, 산업체의 요구를 수용하는 교육이 잘 이루어질 수 없으며, 학교의 요구에 부응한 산업체의 협력이 잘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나라는 산업체와 학교간의 성공적 협력을 기대할 수 없으며, 교육과 연구를 위한 산학협력의 상승효과(Synergy Effects)는 더더욱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5. 직업교육의 질 관리 체제 결여
지금까지 실업계 고교 교육의 성공여부에 대한 관심은 졸업생의 자격증 취득율과 취업률 정도에 머물러 왔다. 실업계 고교 교육의 전체적인 성과와 효과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체계적인 질 관리는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취업률과 기능자격 취득율에 따른 질 관리마저도 엄격한 의미에서 없었다고 보여진다. 실업계 고교 교육의 내적인 과정의 효율성 평가나, 사회적 경제적 효과의 평가가 주기적으로 행해지고 그 결과에 따른 개선과 발전 정책이 지속적으로 수립, 추진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실업고의 위기는 불가피한 결과이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현재 실업계 고교에는 가정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낮고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많이 진학하고 있다. 이들은 기초 학습기능과 학습동기가 낮은 상태에 있다. 이러한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지도하려면 실업계 고교는 이들 학생 변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육과정, 교재, 프로그램, 시설설비, 교사변인 등을 다각적으로 평가진단하고 효과적인 수업체제를 모색하고 적용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가차원의 정책적 대안과 노력은 거의 없었으며, 따라서 실업계 고교의 질 관리는 방치되어 온 셈이다.
기능인력의 양적 요구 및 질적 요구에 실업계 고교 교육이 어느 정도 부응하고 있는가를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실업고 교육에 반영하는 노력은 아직까지는 제도화되거나 정책화되지 못한 상태에 있다. 기능인력의 수요에 맞는 실업계 고교 정원 관리도 제대로 될 수 없었고, 기능인력의 질적 적응력을 높이기 위한 산업현장의 직무 조사와 직무 분석도 제대로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업고교의 질 관리가 이와 같이 방치된 상황에서 우수한 기능인력 양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제는 WTO 출범과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우수한 기능인력을 양성해 내야 한다. 앞으로는 우수한 기능인력을 양성해 내기 위한 질 관리의 문제가 더욱 심각한 문제로 제기될 것이다.

6. 현장 지향적 교원양성 및
연수제도 결여
실업계 교원은 인문교과 담당 교원과는 달리 산업현장의 실기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많은 선진 외국에서는 실업계 교원의 자격기준으로 산업체 현장 경험과 기능·기술 자격취득을 필수 요건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는 대부분의 교사가 산업체 현장 경험이나 기능·기술 자격 없이 교원자격을 취득하여 채용되고 있으며, 교원이 되기 위한 교생실습마저 기간이 짧고 부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실업계 고교 전문교과 담당 교원은 산업현장의 실무경험과 동시에 학교 현장의 교직 실무경험을 두루 쌓아서 양성되어야 되기 때문에 보다 전문적이고 장기간에 걸친 훈련이 요구된다. 그러나 현재의 실업계 고교 전문 교과 담당 교원 양성 제도는 이러한 훈련이 원천으로 불가능한 상태에 있으며, 실업계 교원에 대한 유인책도 없어 우수 교원 확보가 어려운 형편에 있다.
산업현장의 기능과 기술의 변화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실업계 교원의 경우는 이를 따라잡기 위한 현직 연수가 보다 짧은 주기로 이루어지고, 이론보다는 현장 실무경험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실업계 교원 연수제도 또한 인문계 교원 양성제도와 유사하게 대학중심의 연수원에서 이론 연수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양성 과정에서도 산업체 현장 경험 없이 이론 위주로 훈련받아 온 터에. 현직 연수마저 산업체 현장연수가 배제되거나 부실한 상태에 있다. 이렇게 양성되고 훈련된 교사들은 당연히 이론 중심의 교수-학습지도에 익숙하고 이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에서 실업계 고교에서 현장 실무기능 중심의 교육은 자연히 한계성을 지닌다. 실업계 고교 교육의 현장 지향성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 조치로서 실업계 전문교과 교원 양성 및 연수제도의 전면적 재평가와 개혁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7. 투자부족 및 정책적 기능의 취약성
실업계 고등학교는 지난 '7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었고, 자질 있는 기능인을 배출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직업교육은 정책적 관심에서 밀려났고, 투자도 만성적으로 부족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질 높은 기능인력의 양성과 확보는 곧 바로 산업의 국제 경제력을 높이는 지름길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선진국들은 연방 정부가 직접 직업교육에 투자를 높여 나가고 있다. 실업계 고등학교가 질 높은 기능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및 교재개발, 시설설비 및 실험 실습실 설치 운영, 현장실습 및 산학협동, 교원의 양성 및 연수 등을 위하여 적절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행·재정 구조하에서는 직업교육에 관한 정책적 우선 순위와 투자 우선 순위가 주어지기 어렵게 되어 있다. 과거보다 교육인적자원부 및 시도교육청에서 담당 부서의 권한과 기능이 타 분야의 부서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왔고, 기능도 분산되어 있어서 정책의 우선 순위뿐만 아니라 통합성, 일관성, 및 전문성을 발휘하기도 어렵게 된 것이다.
투자의 부족으로 아직도 실업계 고교의 학급당 학생수는 30∼40명 선을 유지하고 있고, 실험실습 기자재 확보율은 62.7%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학급당 학생수와 시험실습 기자재를 가지고는 효과적인 기능교육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인 것이다.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인적자원 개발 투자의 관점에서 획기적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나아가 실업계 고교 발전을 위한 정책의 우선 순위, 전문성, 통합성, 및 일관성을 높이기 위한 개혁 조치를 단행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실업계 고교 교육은 오래지 않아 파탄에 이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Ⅲ. 실업계 고교 개혁의 방향
그간의 직업교육개혁은 원칙과 방향을 세우고 종합적 구도 하에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추진되어 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발전은 고사하고 오히려 시행착오와 혼란만 가중시켜온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러한 점에서 여기에서는 실업계 고교 교육의 향후 개혁의 방향과 원칙을 논의해 보고자한다.

1. 직업교육 철학의 정립과 확산
역사적 전통으로부터 실업교육 또는 직업교육은 빈민층 자녀들에게 특정한 기능을 숙달시켜 취업하게 하는 교육으로 인식되고 있다. 반면에 인문교육은 지적 고양을 높여주는 교육의 원형으로 인식된다. 지금까지 인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사회 지도층의 주류를 이루어 왔고, 특혜를 누려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사람들이 인문교육을 선호하고 이에 집착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직업교육 또는 실업교육은 생산성과 직결되는 교육이다. 직업교육은 인문 교육이 제도화되기 이전에 인류의 출현과 함께 생존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교육이다. 먹고살기 위하여 채취하고 사냥하는 기능을 배우기 시작한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직업교육은 자연스런 생존교육(Survival Education)이며, 인문 교육 이전에 생활 속에 존재해 온 교육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직업교육은 취업교육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삶을 위한 기본교육으로서 취급되어야 한다.
생산성 높은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직업교육 또는 기술교육이 중시되어야 하며, 그렇게 되어야 삶의 질을 높이는 인문 교양 교육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직업교육은 장래의 진로준비(Career Preparation) 교육이다. 민주사회에서는 누구나 직업을 통하여 생계를 마련하고 사회에 봉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진정한 민주사회에서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구분될 수 없으며, 모두가 평등하게 일해서 먹고사는 사회의 생산적 구성원일 수밖에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때로는 지도자로서 때로는 동조자로서 살아가야 한다. 직업교육은 민주사회의 생산적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진로준비 교육으로서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중요한 교육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국가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직업교육은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인력양성 수단이 된다. 국가의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고서는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으며, 국가의 안전도 보장받기 어렵다. 이러한 점에서 직업교육은 기능과 기술을 발전시키고 전파하며, 국력을 높여 나가는 교육으로 인식된다.
직업교육에 대한 전근대적 인식과 인문교육 편중의 비민주적 교육제도는 시정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생산적인 민주사회 건설이 가능하다. 직업교육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확산과 사회적 위상의 제고는 직업교육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이해된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의 교육제도와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인문 교양교육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왔으며, 직업기술교육은 비중이 너무 낮고, 그나마 형식적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전근대적 사회 구조의 망령을 떨쳐 버리지 못한 교육제도와 교육과정을 운영해 온 것이다. 국민 모두가 생산적 직업인인 동시에 교양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소질과 적성에 따른 다양한 직업인을 양성 교육하기 위해서는 먼저 초·중등학교의 교육제도와 교육과정을 인문교육과 직업기술교육 간에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구조적으로 개혁하여야 한다.
실업계 고교를 포함한 직업교육기관을 학제상 일반교육과 대등하게, 일관되고 연계된 교육체계로 만듦으로서 직업교육의 사회적 위상을 높여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직업교육기관으로 진학하는 것이 오히려 진로개척과 생산적 직업인이 되는데 있어서 유리해질 수 있고 따라서 실업교육을 천시하는 왜곡된 교육관을 불식할 수 있을 것이다. 직업계 학교 출신자가 기업 및 사회에 있어서 중견간부의 반 이상으로 진출할 수 있는 제반여건도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사회와 주민이 환영하는 교육으로서 직업교육의 여건을 가꾸어 나가야 한다.

2. 산업인력 수요와 직업교육의 연계
직업교육과 일반교육의 비중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되는 가는 한나라의 교육제도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설계하고 운영하고 있는 가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의 하나이다. 경제발전단계에 따라 국민들의 교육적 요구 변화에 따라 그리고 그 비중이 적절히 설정되고 조정되어 나가야 한다. 즉, 그것은 노동시장의 인력 수요를 포함한 교육적 욕구를 진단하여 설정하고 조정해 나가야 한다. 그렇게 비중이 합리적으로 조정되어야 교육체제가 노동시장에 필요한 인력을 과부족없이 공급할 수 있고, 구조적 실업에 의한 개인들의 희생도 방지하고, 인력부족에 의한 기업의 손해도 예방할 수 있다.
일반교육과 직업교육의 비중은 나라마다 산업발전단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업발전단계에 따른 일반적 경향은 매우 유사하다. 다시 말하여 후진국으로 갈수록 직업교육의 비중이 커지는 반면 선진국으로 갈수록 일반교육의 비중이 커지는 경향을 나타낸다. 독일이나 영국과 같은 선진국들을 보면 산업발전에 따라 인문계 고교가 최근 늘어나고 있지만 그 비중은 30∼40%에 그치고 있다. 대만의 경우는 교육제도상 60∼70%의 학생들이 직업교육 통로를 거쳐 사회에 진출하도록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는 어떠한 근거에서 인문계 고교와 실업계 고교의 비중, 나아가 일반교과 직업교육의 비중을 설정하여 왔는가? 그것은  아마도 인력수요진단을 포함한 합리적 요구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출세주의적 고학력 지향의 여론에 근거한 정치적 결정으로 설정되어 왔다고 판단된다.
앞으로의 직업교육개혁에서는 인문고교 대 실업계 고교, 보다 넓게는 인문교육 대 직업교육 전체의 비중을 어떻게 합리적 근거에 의하여 결정하고 조정해 나갈 것인가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적어도 인력수요와 여러 가지 요구의 관점에서 검토하고 합리적으로 비중이 설정될 수 있어야 한다.

3. 복선형 또는 다선형 학제의 도입
교육의 통로(Educational Track)를 어떻게 설계 운영할 것인가? 단선형 학제(Single Track System)는 복선형 학제(Dual Track System)보다 민주적이라는 단순논리로 우리 나라는 지금까지 학제를 설계 운영하여 왔다. 그러나 필요한 교육기회를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배분하여야 된다는 관점에서 보면 복선형 학제 나아가서 다선형 학제(Multi Track System)가 더욱 민주적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 나라의 학제는 재검토되어야 한다.
우리 나라의 학제는 인문교육위주의 단선형 제도로서 직업교육을 원천적으로 삼류교육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 문제점이 있다. 우리 나라 학제는 원칙적으로 단선형이면서도 매우 복잡한 형태로 되어 있다. 실업계 고등학교는 기간학제에 속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방송대학, 산업대학*등의 방계학제와 더 밀접한 연계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 실업계 고등학교는 기능인을 양성하는 종국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여 왔다. 공민학교, 기술학교, 산업체 부설학교 및 학급, 실업계 고등학교, 전문대학, 방송대학, 산업대학 등은 그것이 기간학제에 속하는가 또는 방계학제에 속하는가에 관계없이 원칙적으로 직업교육기관으로 기능해 왔다. 이러한 직업교육기관들은 필요에 따라 기간학제의 적당한 교육단계에 덧붙여진 제도로써 그때그때 만들어지고 운영되어 왔다. 직업교육은 이와 같이 일반교육위주의 기간학제를 보완하는 차원으로만 설계되었다.
그러나 유럽 여러 나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직업교육은 일반교육과 대조되는 그 나름대로의 독자적 논리성과 체계성을 요구하는 국민 대중의 교육제도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는 직업교육을 학제의 주된 교육통로(Main Track)로 정립하지 못하고 산발적, 임시방편적, 부가적 제도로만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학제상 대부분의 학생들(Majority)이 일반교육을 받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당연한 과정으로 인식되고 오히려 그것이 장려되는 교육제도의 설계를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하여 직업교육기관은 이러한 일반 교육의 흐름으로부터 낙오된 소수 집단이 마지못해 진학하는 막다른 골목의 학교로 설계되어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인식되고 있다.
실업계 고교는 일반계 고교 진학에서 낙오된 학생들을 수용하는 종국교육(Terminal Education)관점의 직업교육기관으로, 그리고 전문대학이나 산업대학은 4년제 정규대학 진학에 실패한 학생들이 막다른 골목에서 수용되는 직업교육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실업계 고교에서 전문대학으로 그리고 전문대학에서 개방대학으로 이어지는 직업교육의 단계적 연계성은 전혀 없다. 이와 같이 현행 학제에서는 직업교육이 하나의 계통(Educational Track)으로 연결되는 체계성이 고려되고 있지 못하다.
직업교육기관은 학제상 일관되고 연계성 있는 하나의 교육체제(Educational Track)로서 설계되지 못하고, 일반교육 위주의 기간학제를 보완하는 방편으로 설계되고 운영되기 때문에 자기발전을 위하여 계속교육을 원하는 국민들로부터도 배척되고, 고도산업사회로의 발전을 위한 인력 요구에도 부응할 수 없는 상태로 전락되고 있다. 이것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포함한 직업교육기관들이 직업인의 계속교육을 가능케 하는 전체 직업교육체계(Vocational Education System) 속에서 학습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개방된 교육체제를 운영하고 있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다고 이해된다.
직업교육이 인문교육과 대등한 주요교육 통로로 설계된다면, 우리나라 전체 학제는 원칙적으로 복선형이 될 것이다. 사회문화가 발전됨에 따라 국민들의 교육적 요구도 복잡 다양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교육적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복선형에서 좀더 나아가 다선형 학제로 발전시켜 나아가야 될 것이다. 직업교육의 사회적 위상을 재확립한다는 관점에서 우리 나라 학제 전반의 재설계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4. 계속 교육 체계에 의한 기초 직업교육 기관으로 위상 재정립
국민들의 고등교육에 대한 욕구충족과 국가전체의 기술수준을 높여야 된다는 측면에서 우리 나라도 계속교육을 체계화하고 그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절실해졌다. 이러한 필요에서 본다면 기능인들을 위하여 전문 대학이 계속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기관으로서 주요한 기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전문대학은 실업계 고교와 기술대학으로 이어지는 직업계통의 중간학교로서보다는 일반계 고교와 4년제 대학으로 이어지는 학문계열의 중간학교로서 기능하고 있다. 기능인을 위한 계속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이 수용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전문대학이 대폭 확대됨에 따라 이들 졸업생들의 계속 교육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고, 현장 기능인들의 대학교육에 대한 욕구가 확산되고 있지만, 이를 수용할 교육기관이 마련되지 않고 있으며, 다만 개별 기업 차원에서 최근 사내기술대학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 사내기술대학은 공기관으로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학력을 공인받지 못하고 있다.
직업기술교육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체계화하려면 선진외국에서와 같이 실업계 고교 졸업자 및 현장 기능인들에게 고등교육 단계의 계속교육 기회 제공을 위한 현장 직무 기능 중심의 개방적 기술대학을 신설해야 한다. 이러한 기술대학은 현재 시화공단에 1개교가 산자부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계속교육을 위해서는 실업계 고교→전문대학→기술대학으로 이어지는 직업교육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실업계 고등학교는 이상과 같은 계속교육 체제 속에서 기초적 직업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로서 위상을 새롭게 정립시켜 나가야 한다. 실업계 고교의 진학이 기피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대학진학의 길도 막혀 있고 계속교육의 기회도 사실상 차단되어 있으며, 승진과 대우에 있어서도 실업고 졸업생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실업계 고교는 장래의 진로가 막혀 버리는 막다른 골목의 학교로 학제상 설계되고,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반계 고교진학과 대학진학이 선호되고, 실업계 고교를 포함한 직업교육이 경시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로 이해된다. 일반계 고교야말로 일부 재능 있는 소수집단만이 진학할 수 있는 학교로, 그리고 실업계 고교가 대다수의 학생들이 진로개척을 위하여 진학하는 주된 통로의 학교(Main Track)로 교육체제가 설계되어야 한다. 실업계 고교는 전문대학, 기술대학으로 연계되어 계속교육이 가능한 직업교육체제 속에서 기초적 직업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로 위상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따라서 실업계 고교는 더 이상 종국교육기관이 아니며, 현대 산업사회의 계속 교육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

5. 공공부담원칙의 실업계 고교 운영
기능·기술인력은 산업발전의 기본적 토대가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기능·기술인력을 양성하는 직업교육과 훈련이 그에 상응하는 만큼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합당한 만큼의 사회적 매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기능인력뿐만 아니라 고급기술인력 양성 면에서 우리 나라는 난관에 봉착해 있고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인문교육에 비하여 직업교육은 불리한 위치에 있으며,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러한 직업교육 비용을 수익자에게 부담시킨다면 직업교육의 매력과 질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인문교육은 중등교육이든 고등교육이든간에 수익자 부담 원칙을 강화해 나가는 반면, 직업교육은 공공부담을 늘려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 직업교육의 질과 사회적 매력을 높일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기업의 경쟁력도 높여줄 수 있다.
물론 기능·기술 인력이 고용되는 곳은 기업이며, 따라서 최종적으로는 기업이 혜택을 받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업의 부담능력이 성숙되는 대로 직업교육훈련 비용의 일정비율을 부담케 하는 것은 또한 바람직할 것이다. 직업교육훈련을 받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고, 그들이 결국은 기간산업발전에 기여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 비용을 훈련생 개인들에게 부담케 하는 것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6. 인문교양교육으로부터 직업교양교육으로 전환
취업을 위한 직업교육은 고등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 실업계 고교는 제도상 첫단계의 직업교육기관이다. 실업계 고교는 일반교양교과와 전문교과를 이수해야 하는데 실업계 고교도 일반계 고교와 똑같은 교양교과를 같은 단위로 이수시키고 있다. 이러한 교양교과는 대학입시를 겨냥한 인문계 고교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취업을 전제로 한 실업계 고교생들에게는 수준이 너무 높고 내용의 타당성도 부족하다. 이러한 이유로 실업계 고교의 교양과목은 이해하기 어렵고, 시간만 무의미하게 낭비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실업계 고교에서는 실업계 고교의 목적과 특성에 맞는 교양교과가 제공되어야 한다. 예컨대 공업계 고교의 경우 일반수학보다는 공업수학을, 물리보다는 공업물리를, 국어보다는 실용문 중심의 국어를, 윤리보다는 직업윤리를 제공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교양교육과 전문교육의 연계와 통합이 이루어지고 실업계 고교의 교육이 전문적 직업인으로서의 교양교육으로 내실 있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학입시라는 굴레 때문에 실업계 고교에서도 인문계 고교와 동일한 교양과목을 과해 왔으나, 이는 오히려 대학입시를 이원화해서 실업계 고교는 실업계 고교에서 배운 교과대로 입시를 치울 수 있도록 고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된다. 앞으로는 각급 직업교육기관이 이와 같이 획일적인 인문교양교육으로부터 해방되어 그 특성에 맞는 직업교양교육을 내실있게 과할 수 있도록 개혁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통일적인 보통교양교육은 중학교 단계까지 마치고, 고등학교 이후는 교양교육과 전문교육을 학교자율에 맡기도록 해야 한다. 2000년부터 적용되고 있는 제7차 교육과정에 의하면 국민기본 공통과정으로 고등학교 1년까지 10년 동안 똑같은 교양교과를 이수토록 하고 있다. 이는 실업계 고교 교육과정 운영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실업계 고교에서는 7차 교육과정 적용의 융통성을 대폭 확대하여 학교특성에 맞는 직업교양교육을 확대하고 장려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7. 현장직무분석에 기초한 교육과정 운영체제 도입
지금까지 각급 직업교육기관은 현장적응력이 부족한 기능·기술인력을 배출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지나치게 이론 중심으로 교육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교육과정 편성과 교과서의 편찬이 학문체계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그리고 교사양성 또한 학문중심교육으로 해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불가피했던 오류이기도 한 것이다.
실업계 고교를 포함한 각급 직업교육기관이 산업 사회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현장중심의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직무분석에 기초한 교육과정 편성·운영이 원칙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는 직업교육이 이론체계 중심으로부터 직무체계 중심으로 전환됨을 뜻한다. 이론과 개념중심으로부터 현장실기중심의 교육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교육환경구조도 보통교실중심에서 실험실습실 중심으로 개편해 나가야 한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포함한 직업교육기관은 학과 및 교육과정도 학문단위보다는 산업체의 직종 및 직무에 대응하도록 편성해야 한다. 교과서도 직무체계를 잘 반영하고 이론과 실기를 통합해서 가르칠 수 있는 모듈식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학생들이 쉽고 흥미있게 학습해 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

8. 공통기초교육과 선택교육의 강화
기술변화시대에 폭넓게 적응하고 평생학습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기초 학습능력을 튼튼히 육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직업군(Job Cluster)별 공통기초기능을 강조해서 가르쳐야 한다. 지나치게 세분화된 전공들을 통합하거나 동일직업군내의 공통기초기능을 추출해서 가르치는 기법을 개발해야 한다.
폭넓은 적응과 미래의 학습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통기초기능을 가르쳐야 되지만, 당장의 취업과 현장적응을 위해서는 해당분야의 집중훈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개인별로 필요한 분야의 선택집중교육이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직업교육기관은 공통기초기능과 다양한 분야의 선택집중교육이 가능하도록 모듈을 개발·적용함이 필요할 것이다.

9. 자격제도의 민주와 및 합리화
기능 자격과 기술자격 제도는 시대적 요청에 맞게 하나의 연속된 자격체계로 통합해야 한다. 제조업 중심의 대량 생산 체제하에서는 기능인력과 기술인력이 엄격히 구분되는 피라미드형 인력 구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능과 기술을 함께 보유한 중간 기술인력의 수요가 늘어나 항아리형의 인력 구조를 이루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으로 보아, 또한 기술의 속성으로 보아, 기능과 기술자격은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기능인들의 기술 향상을 위한 계속된 노력을 촉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통합되는 것이 바람직하게 인식된다. 기능인과 기술인을 엄격히 구분하여 기능인의 기술인으로서의 성장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은 민주주주의 이상에도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현행의 이원화된 기능·기술 자격제도는 통합되어야 한다.
자격의 단계는 선진외국의 통례로 보나 산업체에서의 인력 요구로 보나, 기능사(Skilled Worker ; Crafteman ; Trademan), 중견기사(Technician), 전문기사(Technologist), 공학자(Engineer), 과학자(Scientist: 석박사 포함) 등 5단계로 구분하는 것이 적절한 것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기술자격은 학력과의 호환성을 유지하고 직업기술교육 체계와 상응하는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직업교육체계 속에 있는 학교 및 훈련기관의 경우는 교육과정 속에 자격 기준을 포함하여 이수케 하고 평가함으로써 원칙적으로 무시험 검정으로 자격을 부여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험 검정에 의한 인적, 물적, 시간적 낭비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산업체 현장의 경력자는 일정 경력에 따른 자격 검정 시험에 의하여 자격증을 부여하고, 이러한 자격은 직업교육체계에 의한 계속교육 기회 부여를 위하여 학력과의 호환성을 인정한다.

10. 직업전문교과 교원의 현장성 강화
직업교육기관 졸업생들이 현장적응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와 같이 현장적응력이 부족한 인력을 계속해서 배출하게 되는 데에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 그러한 구조적 요인의 하나가 교원양성과 연수제도이다. 지금까지 직업계 교원양성의 근본적 결함은 기능·기술 자격증과 산업체 현장경험 및 능력 배양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과정과 제도를 운영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이론위주의 교육으로 양성된 교사가 산업체 현장 경험 없이 학교에 배치되고, 근무 중에도 산업현장의 연수를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교사들은 산업현장의 기술변화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사들은 이론중심의 교과서, 실험실습설비의 부족 등으로 불가피하게 이론중심의 교육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직업전문교과 교사의 양성과 연수제도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새로 신설된 기술대학이나 기술대학원에서 실업계 교원 양성과 재훈련을 하게된다면 현장성 높은 교원교육의 방안이 모색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 긍정적 사회 여건의 조성
실업계 고등학교를 포함한 직업기술교육기관은 국가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공헌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들의 왜곡된 직업관과 직업교육정책의 오류에 기인된 것으로 생각된다.
기술직을 천시하고, 관리 위주의 사무직을 선호하는 전통적 직업관 때문에, 생산기술직은 보수, 대우 면에서 불이익을 당해 왔고, 이러한 기능인을 양성하는 직업교육 또한 천시되어 온 셈이다. 직업의 귀천의식이 사라지고 민주적 직업관이 새롭게 정립되어야, 사회에 생산적으로 이바지하는 기능인이 그리고 기술교육이 올바른 평가와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용 관행은 아직도 학력 위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직업기술교육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통적인 사회에 있어서 일반적 능력을 보증해 주는 가장 공신력 있는 제도는 학력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학력에 기초하여 채용하고 대우를 결정하는 것은 타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직업이 분화되고 전문화된 사회이며,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이 요구되는 사회이다. 또한 구체적인 능력과 자격을 인정하는 자격제도가 도입되어 왔다. 직업기술교육은 바로 이러한 자격과 능력을 육성하고 인정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도 학력 위주의 고용 관행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한, 공인기술자격제도의 인식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자격제도에 의한 고용과 대우를 결정하는 관행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상에서 언급한 직업관, 고용 관행 및 직업기술교육에 대한 국가정책의 미비로 인하여 직업교육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도 부정적인 경향이 크다. 이는 실업계 고등학교의 진학 기피 현상을 심화시키고 일반계 고교 진학을 부채질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또한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마저 많은 경우 대학 진학을 원하게 하고,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중도 탈락률을 높아지게 하는 원인으로 생각되고 있다.
직업교육의 긍정적 강화를 위하여 학력과 학벌중심에서 자격과 능력위주의 고용관행정착, 일과 직업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회적 가치관 확립, 기능기술인의 사회적 우대정책은 앞으로 정부에 의하여 추진될 중요 사회개혁과제로 인식된다.

Ⅳ. 맺는 말
지금까지의 실업계 고교를 포함한 직업교육 개혁정책은 일반교육의 아류교육으로서 인문교육의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수립되고 추진되어 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즉 직업교육의 본질과 현실에 대한 이해없이 개혁이 추진됨으로서 발전보다는 혼란만 자초한 경우가 없지 않았다. 직업교육 관점에서 보면 학교중심의 직업교육과 직업훈련, 이와 관련된 노동시장 조건들이 함께 맞물려 개혁이 조화롭게 시도되어야 한다. 그러나 종래의 직업교육개혁 정책은 인문교육개혁과 함께 학교교육으로 맞물려 있는 직업교육개혁만을 시도하여, 오히려 직업교육이 직업훈련, 노동시장 조건과 균형을 잃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실업계 고교를 포함한 직업교육의 개혁과 발전 정책은 직업교육의 본질과 현실을 이해하고 직업교육에 대한 원칙과 방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검토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앞에서 제시한 원칙과 방향은 예시에 불과하다. 앞으로의 직업교육정책은 이 분야 전문가 및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토론에 의하여 개편의 방향과 원칙이 종합적으로 검토되고 수립되어 시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직업교육의 개편은 종합적인 구도 하에 추진하되, 장기적 관점에서 균형있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우선 순위와 완급을 고려하여 추진하되 일정기관 후에 균형이 취해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해당사자의 조급한 요구는 단기간의 형평성에 집착되어 큰 방향과 균형을 잃게 만드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직업교육의 개편은 정권과 담당자의 교체에 관계없이 일관된 원칙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개혁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 이유가 담당자의 잦은 교체와 정권의 교체에 기인한 바 적지 않다. 앞으로의 개편 정책은 일관성과 지속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까지도 고려하여 계획이 수립되고 추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출처 : http://www.scieng.net/zero/view.php?id=now&no=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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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