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빈곤 - 읽어볼 책
아래 게시된 글은 헨리 죠지(Henry George)의 명저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을 통해 나타나는 그의 사상을 현재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명예교수로 재직중인 루이스 와써먼(Louis Wasserman)이 요약 및 정리한 헨리 죠지의 기본사상(루이스 와써먼/김윤상 역, 도서출판 무실)에서 발췌한 것이다. 죠지의 원리를 설명하는 아래의 글은 '진보와 빈곤'의 특징과 그 중 오늘날 관심의 대상이 되는 부분, 즉 토지경제학과 재정정책에 대한 그의 공헌을 요약한다. 그리고 죠지가 '진보와 빈곤'에서 길게 언급하고 있는 고전경제학 이론 중 오늘날 시대에 맞지 않거나 관련성이 적은 부분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만 언급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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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의 경제분석은 19세기 후반 미국의 산업발전을 배경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그가 지적하는 발전의 "역설"은 부가 유례없이 증가하는 가운데 빈곤이 광범위하게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계기술의 사용으로 인해 생산이 확대되었고 생산비가 저하되었으며 총소득도 몇 배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사람이 물질적 복지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산업이 융성하는 곳마다 빈부의 대조가 뚜렷해 지고 일부 계층은 현저하게 사치를 누리는 반면 근로계층은 극도의 빈곤 속에서 연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간이 길고 생산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았으며 노동환경은 이상하게도 전통있는 공업 중심지에서 더 열악하였다. 산업이 호황을 누리다가도 주기적인 불황이 닥쳐와서 노동자와 기업가가 다 같이 고통을 겪었다. 기술진보에 빈곤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현상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러한 현상은 부의 생산과 분배에 관한 사회제도의 결함에 그 원인이 있다고 설명할 수 있는가? 죠지는 당시의 통설적인 경제이론, 특히 임금기금설과 맬더스의 이론을 검토하였으나 이문제에 대한 만족할 만한 설명을 얻지 못했다. 죠지는 임금기금설에 대해서는, 임금은 기존의 자본기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임금의 반대급부인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고 보아 반대하였다(현실적으로 착각하기 쉬운 부분인데, 사실 인간이 생산적인 노동을 하는 그 순간 임금은 계속적으로 생성된다. 다만 모든 사람이 자신의 먹을 것, 입을 것 등에 관한 생산에만 종사하지않는 이유는 교환을 통해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생각할 때, 사회가 아무리 고도화되어도 임금이 결과적으로 노동에서 나옴은 자명하다-옮긴이 주). 또 맬더스 이론에 대해서는, 인구가 생존물자보다 더 빨리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 가정은 경험적으로나 비유적으로나 근거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노동과 자본 간에 본질적으로 갈등관계가 존재한다는 견해, 그리고 빈곤이 없어지지 않는 원인이 산업의 독점 또는 경쟁의 과잉에 있다는 견해도 부정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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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는 고전경제학의 방식대로 생산의 3요소를 토지와 그 자원(자연의 기회 등), 노동(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모든 형태의 노력), 자본(부의 추가 생산에 사용되는 부)으로 구분하였다. 죠지는 이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노동이며 인간이 노동을 토지의 자원에 투입함으로써 물자를 생산, 가공, 수송한다고 보았다. 자본은 생산의 한 요소로 구분되기는 하지만 실은 과거에 투입된 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 중 즉시 소비되지 않고 추후 사용을 위해 저장된 것이다. 자본의 형태는 기계류, 상품재고, 창고 철도시설 투자기금 등으로 다양하지만 1회 또는그 이상의 과정을 통해 과거의 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토지비용이 상승하면 토지소유에게 지불되는 몫이 증가하며 이에 따라 노동과 자본이 기술과 생산성의 향상으로부터 기대하는 수익도 줄어들게 된다. "그러므로 생산력이 아무리 향상되더라도 지대의 상승이 이와 병행한다면 임금과 이자는 상승할 수 없다"(p. 171.). 이를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기술진보율이 토지가치의 상승률을 초과하는 경우에 한하여 노동과 자본은 생산성 증가로부터 혜택을 누릴 수 있다. |
죠지는 토지라는 용어를 넓은 의미로 정의하여 인간의 물리적 자연환경 전체를 포함시킨다. 토지는 경작의 가능, 불가능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곳의 토양, 주거용, 상업용, 공업용 등의 모든 천연자원, 천연해변, 항구 등 해안, 해양, 호수, 강 및 그 속의 모든 자연물, 심지어는 대기 및 기류까지도 포함한다(p. 38, 따라서 이 글에서도 토지라는 용어는 이러한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 첫째, 위에서 지적한 천연토지 내지 물리적 부존물. 둘째, 지구의 표면에 인공이 가해진 결과. 첫째 범주는(되풀이되지만) 인간의 공동 유산이며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고 인간을 부양해 주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공적인 결과는 인간이 창출한 것으로서 인간이 재배한 곡물, 인간이 지은 집, 창고, 가게, 극장, 사무용 건물, 공장 등 외에 철도, 광산시설, 부두, 정유시설, 기타 문명을 장식하는 수많은 재화를 말한다. 이들 생산물과 토지개량물(improvements)은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투입된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의 결실이다. 죠지는 천연토지와 인공생산물 간의 중대한 구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또 인간의 생산력은 자신의 창의적 노력 여하에 달려 있을 뿐 그 잠재력이 무제한인데 반해서 토지는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그 양이 고정되어 있으며 재생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죠지의 견해에 의하면 "인공 토지"는 토지가 아니라 부의 일종이며 이러한 종류의 부는 자본으로 분류된다). |
천연토지에 가치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토지가치는 사회 전체의 성장과 발전의 결과이다. 사람이 어느 지역을 점유하여 농사를 짓거나 집을 짓거나 토지의 생산물을 사용하거나 하지 않으면 토지가치가 생기지 않는다. 고립되어 있는 경작자는 토지에서 겨우 생존물자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사회가 성장하고 융성하고 기능이 다양해지고 생산이 늘어나고 시장이 확대되고 정부서비스가 팽창하면 그 지역의 토지가치는 상승한다. 인구가 증가하면 주택, 사무실, 시장건물, 유전시설, 공장 등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그에 따라 지가는 상승하며 한계지역이 수익성 있는 용도로 사용되게 된다. 벽지의 농토 1에이커의 가치가 200달러라고 하면 인구가 밀집한 중심지의 1에이커의 가치는, 예를 들어 인근의 마을에는 5천 달러, 도시의 주택지는 2만 내지 5만 달러, 같은 도시의 상업지는 10만 내지 100만 달러와 같이 높아진다. 하나의 사회 내에서 이처럼 토지가치의 차이가 많이 나는 원인은 위치, 용도, 지역지구제, 편익시설의 존재 여부, 도로 사정, 교통사정, 성장 가능성 등인데 이들 원인은 모두 그 사회의 전체적인 모습, 인구 수준, 주거 기타 생활의 기회를 반영한다. 죠지의 표현에 의하면 "토지가치는 개인이 소유하는 토지에 대한 사회의 권리를 정확하고 확실하게 나타낸다"(p. 344). 토지가치는 사회가 집합적으로 창출한 것이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그 창출에 공동으로 참여한다. 법적인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토지소유자는 토지가치가 창출되는 과정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며 토지소유자가 그 토지에 있건 없건 간에 토지가치는 동일하다(다만 토지소유자는 투기적 목적으로 토지를 방치함으로써 가격에 약간의 인위적인 영향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토지소유자가 동시에 노동자 또는 기업가가 되어 다른 사람처럼 생산에 기여한다면 그도 다른 사람과 같은 정도로 자기 노력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취할 자격이 있다. |
죠지는 지대(rent)라는 용어를 천연토지의 소유로부터 토지소유자가 얻는 소득(실제로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에는 당해 토지가 다른 사람의 소유라고 할 때 그가 이 토지의 사용에 대해 지불해야 할 금액)만을 지칭하는 정확, 정밀한 의미로 사용한다(pp. 165-166). 죠지는 이 대목에서 일상 용어로서의 렌트에 포함되는 두 가지를 구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가령 아파트의 렌트가 월 200달러라고 하면 여기에는 사실 두 가지 다른 성분이 들어 있다. 하나는 토지에 세워진 "토지개량물"인 아파트의 사용료(예를 들어 140달러)이고 또 하나는 아파트의 대지사용료(예를 들어 60달러)이다. 죠지가 말하는 렌트는 바로 이 후자에 국한된다. 만일 아파트 주인이 그 대지도 소유하는 경우라면 200달러를 모두 차지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60달러는 대지를 세내어 쓰는 대가로 토지소유자에게 주어야 한다. 어느 경우이든 간에, 그 대지에 아무 건물도 없다고 가정하고 대지만을 경쟁입찰을 통해 임대한다고 할 때 임대료가 얼마가 될 것인가를 판단함으로써 대지만의 렌트를 구분할 수 있다. 즉 죠지가 관심을 두는 렌트는 토지로부터만 발생하는 토지의 렌트, 즉 지대이다. 지대는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가? 이에 관해 죠지는 리카르도가 정립한 이론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지대는 동일한 (노동과 자본의) 투입을 했을 때 현재 사용되고 있는 토지 중 생산성이 가장 낮은 토지(한계지)에서 생산할 수 있는 정도를 초과하는 생산에 의해 결정된다"(p. 168). 물론 이때 토지의 용도가 농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모든 상업활동 또는 공업활동도 토지 위에서 이루어지므로 그 사용에 대해 토지소유자에게 지대를 지불하여야 한다. 토지는 공급이 제한되어 있고 재생산이 불가능하므로 지대는 한계토지와 비교하여 사용자가 토지사용의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금액에 의해 정해진다. 따라서 지대는 전적으로 수요에 의해서만 결정되며 내재적 토질과는 무관하다. "교환가치를 가지는 토지에는 반드시 경제학적 의미의 지대가 발생한다"(p. 166). 어떤 토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 그 토지의 지대는 상승한다(죠지는 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재화의 경우에는 이 관계가 반드시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일반 상품의 가격은 수요뿐만 아니라 공급에 의해서도 변화하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토지투기는 현재의 부정의를 증폭시킨다. 토지투기는, 노동과 자본의 생산물로부터 토지소유자가 찾아가는 몫에 보너스를 얹어 주는데 이로 인해 미래의 생산에 대한 대가를 줄인다. 토지투기의 효과는 "토지소유자에 의한 노동과 자본의 배재"(p. 270)로 나타난다. |
죠지에 의하면 지대의 개인 귀속이 가장 해로운 영향을 주는 분야는 재정정책 분야이다. 정부 서비스를 지원하려면 세입이 있어야 하지만 조세를 현평성 있게 그리고 경제에 대한 피해가 최소가 되도록 부담시키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기존의 조세제도는 생산을 위해 노동하는 계층에게 가장 무겁게 부과되며 생산을 하지 않는 토지소유자에게 가볍게 부과된다. 노동자와 기업가는 기술과 저축과 창의력을 이용하여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데, 기존의 재정정책은 이러한 노력에 벌금을 물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새로운 기계의 도입으로 생산속도가 빨라지거나, 늪지가 택지로 조성되거나, 더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주택이 개량되거나 하면 조세당국은 이러한 개량이 공해요소나 되는 듯이 세금을 부과한다. 그 결과로 기업이 위축되고,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토지개량이 지연되며, 토지의 최선사용이 이루어 지지 않는 경우가 흔히 생긴다. 상징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기존 건물을 임대하는 것이 새 건물을 짓는 것보다 더 매력적인 투자가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토지소유자는 특별 배려를 받는다. 토지소유자는 생산에 아무런 보탬을 주지 않는데도 지대소득(이것은 사회가 창출하여 토지소유자에게 분배한 것인데)에 대해 가벼운 세금이 부과된다. 또 토지소유자가 토지를 사용하지 않고 방치하더라도 세부담이 가벼우므로 이런 행위가 조장된다. 그러나 지주를 비난하는 것은 죠지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죠지의 주장의 핵심은, 모든 사람은 자신이 생산한 것에 대해 완전한 보상(이 보상은 경쟁을 통해 결정되지만)을 받아야 하고 이러한 생산물에 대해서는 조세를 부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의 배경에는 어느 개인도 사회가 집합적으로 생산한 것 (즉 토지의 임대가치 및 그 증가액)을 사적으로 차지할 권리가 없다는 원칙이 있다. 죠지는 이 두 가지 원칙을 결합시켜, 개인의 노력에 벌을 과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부담을 지우는 유일한 조세는, 사회가 발전을 통해 공동으로 생산한 것, 즉 토지가치를 완전히(또는 거의 완전히) 환수하는 조세라고 결론을 내린다. |
죠지의 표현에 의하면 "그러므로 본인은 지대를 조세로 징수할 것, 그리고 토지가치에 대한 조세 이외의 모든 조세를 철폐할 것을 제안한다"(pp. 405-406). 죠지는 토지를 국유화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즉 정부가 토지를 매수하거나 몰수하지 않으며, 개인의 토지소유권도 그대로 유지되어 누구도 소유권이나 임차권을 박탈당하지 않으며, 개인이 보유할 수 있는 토지의 면적에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산가치를 평가하고 이에 과세하는 정부기구는 이미 존재한다. 이미 토지가 그 개량물과 분리되어 평가되고 있는 나라에서는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없으나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는 양자의 분리평가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 후에 법률에 의해 순수토지에 대한 세율을 점차로 높여 마지막에는 연간 지대액에 가까운 금액을 환수하여 세입에 충당한다. 새로운 제도에 수반할 수 행정상의 비용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죠지는 다음과 같은 실무적인 편법하나를 제시한다. 즉 토지소유자는 토지소유권을 그대로 유지하며, 토지를 직접 임대하여 지대를 바고 이를 세금으로 납부하는데 따른 비용으로 "지대의 1%(이 금액은 국가기관이 토지를 임대할 때 드는 비용보다 적을 것이다)를 토지소유자에게 보상"(p. 405)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계가 진행됨에 따라 다른 조세, 즉 토지개량물에 대한 조세, 부동산 이외의 개인재산에 대한 조세, 재화와 용역에 대한 조세, 개인소득과 법인소득에 대한 조세 등을 점차 줄여 나가며 궁극에 가서는 완전히 면제한다. |
죠지는 이어 그의 제안이 보편적인 "조세의 원칙"에 비추어 타당한가를 검토한다. 죠지는 정부세입을 조성하려는 어떤 수단이든지 다음과 같은 조건에 가능한 한 근접하여야 한다고 본다. (1) 조세가 생산에 주는 부담이 가능한 한 적을 것. (2) 조세는 단순하고 저렴하게 징수될 것. (3) 조세가 확실성이 있을 것. (4) 모든 사람의 조세부담이 공평할 것. 죠지는 지대에 대한 조세는 위의 모든 조건에 맞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조건 (1)에 대해서 보자. 지대조세는 생산에 부담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현재 다른 조세가 생산에 주는 부담을 제거하는 효과를 갖는다.
토지가치는 그 자체로 사회 발전의 한 반영일 뿐 생산을 증가도 감소도 시키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토지가치에 대해 부과하는 조세는 전가되지 않고 반드시 토지소유자가 부담하므로 세액이 토지의 임대가치를 넘지 않는 한 임금이나 자본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이 조세를 부과하면 오히려 미개량토지의 사용을 촉진함으로써 생산적인 기업에 더 많은 기회를 주는 효과가 생긴다. |
죠지가 제안한 대책을 단순하지만 그 효과는 모든 경제부문에 미칠 것으로 죠지는 확신하였다. 생산적 기업은 생산에 부과되던 무거운 조세(이 조세는 생산비를 높이는데 그 결과 수요가 줄고 생산이 줄며 노동자의 일자리와 임금이 줄어든다)의 사슬에 더 이상 매이지 않는다. 생산은 결국 자원을 충분히 이용하여 주민의 수요에 쉽게 부응하게 된다. 재화와 용역의 가격은 조세가 감면되는 만큼 하락할 것이고 이로 인해 구매력이 증대된다. 노동과 자본은 생산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른 완전한 보상을 받게 되며 단지 정부가 이 중 일정한 몫을 토지세의 형태로 징수하는데 이 몫은 공공서비스의 형태로 모든 국민에게 돌아간다. 이 제도가 실시되면 토지투기에서 생기는 이익이 거의 또는 전혀 없기 때문에 경제불균형을 초래하는 토지투기라는 원인이 제거된다. 매년 토지세만 납부하면 토지를 안전하게 보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주택건설업자나 기업가는 토지를 구입하기 위해 고액의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해서 자유롭게 된 자본은, 단순한 보유만으로는 이익이 남지 않기 때문에 토지투기꾼이 내놓는 토지를 포함해서 여러 토지에서의 건축에 투자될 수 있다. 따라서 건축경기가 활발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규주택이나 기타 토지개량물에는 세금이 부과되지 않기 때문에 현재 세부담이 낮음으로 해서 존속하는 낡은 셋집 등이 개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죠지는 이러한 가시적인 경제적 결과보다 더 큰 결과를 기대했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사회철학 전반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가 오랫동안 추구한 "진보"는 단순한 경제성장이나 재정제도 개혁이 아니다(제 10 권 참조). 그가 진정으로 추구한 것은 인간이 지적, 도덕적 능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죠지가 불가피하게 경제학 분야를 연구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죠지는, 사람은 사회, 물질적 생활을 통해 인간으로서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은 우선 생존을 유지해야지만 더 고차적인 삶을 희구할 수 있다. 빈곤한 상황에서는 사람이 발전의 기회를 박탈당할 뿐 아니라 생존유지에 많은 정력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높은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경제체제는 인간의 창의와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때에만 성공적인 것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의 기회가 모든 사람이 생산의 기회를 평등하게 누리고 모든 노동자는 자기 노동에 대한 완전한 대가를 받으며 어느 누구도 특권에 의해 이익을 얻을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죠지는 토지의 지대가 개인에게 돌아가면 이들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지대를 사회화하면 궁극적으로 경제학 발전과 인간적 진보가 조화를 이루게 된다. 각 개인은 조세당국과 토지독과점의 구속에서 벗어나서 자기의 능력에 따라 노동하고 자기의 노력에 대한 완전한 대가를 취득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사회는 지대라는 형태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므로 이 가치를 걷어서 사회 전체의 수요에 맞도록 사용하게 된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도 불이익을 받지 않으며 동시에 정당하지 않게 부자가 되는 사람도 생기지 않는다. 윤리적 정당성이 경제적 능률성과 조화되어 서로 이익과 도움을 준다. 죠지는, 인간은 이러한 확고한 근거 위에서 최고의 도덕적 지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결론을 맺는다. |
지대의 사회화라는 이 제안은 사회의 각 소득계층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소유자가 입는 손실에 대해서 보상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보상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윤리적 입장이나 물질적 입장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죠지는 토지사유제가 오랫동안 법, 사회적 인정을 받아왔고 현 토지소유자 중에는 자신이 정당한 방법으로 취득한 자본을 지불하고 토지를 구입한 사람도 많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이에 대해 "만일 토지소유자가 자신의 특권에 대해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면 일반 국민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하며 "토지를 매수해 준다면(즉 토지의 시장가치를 보상해 준다면-역자주) 토지소유자에게 그들이 현재토지소유에서 얻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액수를 다른 형태로 주는 셈"이라고 지적한다(p. 360. 또 토지의 시장가격에는 미래의 토지가치 예상증가액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토지의 매수 또는 보상에는 엄청난 실무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
우리 경제에는 지대와 토지가치증가액 이 외에도 "불로소득"이 있는데 왜 토지와 토지소유자만을 거론하는가? 죠지는 다른 불로소득을 구별해 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인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토지가치의 증가는 매우 독특한 현상이라고 한다. 모든 형태의 투자자본은 (상속된 것이라고 해도) 인간의 노동과 장비를 통해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데 기여한다. 이로 인해 받는 대가는 액수의 다과를 막론하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제적 결정을 반영한다. 그러나 천연토지는 자본과 달라서, 현재나 과거의 노동의 결과가 아니며, 생산된 것도 아니고 재생산할 수도 없으며, 개량되지 않는 토지의 가치는 소유자의 결정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토지의 가치는 생산용 및 주거용으로 제공될 수 있는 기회-즉 사회가 창출한 기회에 의해 형성된다. 그러므로 토지에서 나오는 대가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다. 따라서 다른 형태의 자본소득 중에서 불로소득을 구별해 낼 수 있다고 해서(이에 대해 적절한 재정적 조치를 취할 필요는 있겠으나) 토지가치 환수의 우선 순위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천연토지의 가치와 토지개량물의 가치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죠지는 이 구분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고 본다. 토지와 그 개량물을 합하여 단일한 세율을 적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나라에서는 이미 양자를 분리하여 평가하고 있다. 건물 기타 인공물의 비용은 쉽게 알 수 있으므로 어느 부동산의 총평가액 중 이 비용을 뺀 잔액이 천연토지의 가치가 된다. 토지세가 증가하면 임대료나 상품가격이 상승하여 세액이 임차인이나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죠지는, 토지는 증산 또는 감산할 수 있는 인공물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사용이 가능한 토지의 양은 일정하므로 추가세액의 효과는 토지소유자가 취하는 순지대소득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 죠지는 당시의(그리고 지금도)지배적인 경제학설, 즉 토지세는(다른 조세와 달리)소유자가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지 못하며 그 자신이 흡수할 수 밖에 없다는 학설을 제시한다. 토지만을 대상으로 하는 조세는 탄력성이 없어서 정부세입의 수요변화에 부응하기 어렵다. 이 문제는 방위비와 복지비의 지출이 엄청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특히 심각하다. 죠지는 그가 저술할 당시 토지가치에 부과하는 단일세만으로도 중앙 및 지방의 모든 정부에 충분한 세입이 된다고 계산하였다(p. 406.). 뿐만 아니라 죠지는토지세액은 인구성장 및 이에 병행하는 토지가치 상승에 의해 증가하므로 토지세는 본질적을 탄력적인 조세라고 하였다. 또 그는 그의 제안이 실현되면 기업활동, 고용, 실질소득을 강하게 자극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의 무거운 복지비 부담이 대폭 줄거나 없어질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완전한 토지세를 실시하면 토지사유제가 없어지고 토지소유에서 생기는 보장이 상실되며 그에 따라 토지를 개량하고 최선의 용도로 사용하려는 의욕이 없어질 것이다. 죠지는 매년 토지가치세를 납부하는 한 토지의 소유권이나 사용권은 침해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종래 토지소유자가 차지하던 지대소득의 대부분이 토지소유자 또는 토지사용자로부터 사회로 이전된다는 것만 제외하고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토지사용자는 토지를 최선의 용도로 사용하여야만 이익이 확실히 보장된다. 토지세율이 낮다면 토지소유자는 토지가격이 더 상승할 때까지 토지개량을 하지 않고 기다실 수 있기 때문에 토지의 최선사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보장과 자극은 그들이 경작하고 건축하고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얻은 소득을 자기 몫으로 하는 것이라고 죠지는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보장과 자극은 다른 모든 조세를 면제하고 토지가치세를 실시함으로써 실현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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