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2013. 8. 2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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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세계에서 영향을 받는다. 그로 인해 가치관, 세계관이 생겨난다. 그 세계에 대한 반응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 그 이후 사람은 '사상'이라고 하는 특유한 개념을 만든다.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이러한 사상이 자신보다 큰 세상이라는 곳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 과목은 역사 속에서 이러한 사상과 세계라는 역학적 관계가 어떻게 발생하고 영향을 미쳤는지 공부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 시대,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사회'라는 것은 intertemperary 하면서 intersectional한 것이다. 즉, 우리가 규정하는 '사회'라는 뜻과 범위는 한정적이고 오늘날의 사회와 15세기의 사회는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15세기는 투표권도 사고 팔 수 있고 오늘날 일반인에게 주어지는 범위보다 더욱 특권적이고 한정적으로 받아들여 졌을 것이다. 그 중 어떤 선각자는 과거의 세계에서 좀 더 낫거나 사람, 세계를 좀 더 명확하게 이야기하려고 했고 오늘날에서 봤을 때 상당히 고리타분하지만 분명 역사적 진보나 시대의 상황에 적합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선각자들의 '사상'은 보편 타당한 성질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공통의 결과를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게 기여를 했다. 근대 이전의 시대에는 비이성과 논거 없는 당위가 있었고 합리가 있던 시대는 근대 이후로 부터 태동하게 된다. 근대부터 인간의 공통적인 생각, 가치관, 세계관이 응축된 결과물이 즉 '샤상'이라고 할 수 있다.-반대로 말하자면 근대 이전에는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이고 인류의 보편타당함을 대표해줄 수 있는 성격이 드물었다고 한다-

 

 -경제사상?

경제는 흔히들 '먹고 산다'라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근대 이전 인간은 이러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근대 이후에서야-인류의 역사 속에 가장 최근에-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근대 이전의 이야기는 상당히 비이성적이고 종교과 억지가 앞서는 사회였다. 그래서 합리성을 기초로한 사상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당시에 다소 회의적일 수 도 있었다. 물론 고대 사상가들이 녹여낸 사상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지만 중세의 주류 사상을 들여다 보면 다소 적나라한 인간의 무지와 야만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1.르네상스(Renaissane)?

 르네상스는 프랑스어로 '재탄생'을 의미한다. 음악에서 말하는 과거 히트 쳤던 음악을 다시 편곡해 만드는 '리메이크'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단순한 활동이 어떻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말할수 있을가? 이것은 고대와 중세, 근대를 통과하는 역사의 흐름으로 알 수 있다. 인류는 고대와 중세를 거치면서 '인간','사회'를 바라보는 모습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봤을 때 상당히 뒤틀리고 왜곡된 시각이었다. 예를 들어 지배층이 피지배층위에 군림하기 위에서는 '신'이라는 존재를 빌려서 억압하였고, 논리와 합리보다는 그들에게 거슬리는 행동은 '신'이라는 권위를 세워 억압을 했다. 상당히 억압받고 비합리적인 시대적 성향은 사회를 구성하는 다수의 사람에게 문제제기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새로운 사상이 퍼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보편 타당한 시각으로의 전환이고 신을 배제한 인간으로서 관심이었다. 이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새로 만들어 지지 안핬다. '세상은 새로운 것이 없다'라는 말 처럼 과거의 사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정','반'되어 합이 되거나 변증법을 통해 시대적인 움직임으로 만들어 졌다.

 르네상스는 14세기부터 16세기에 시민으로부터 지배계급을 아우르는 진보적 문화 운동이며 해방운동이었다. 다른말로 인본주의라고도 하는 것은 이 사상의 성격은 신을 중심이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한 사상이기 때문이었다. 사회적으로 너무나 '신'의 권위가 군림하게 되었고 이로 인한 반작용으로 인본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이 르네상스는 인류 역사에 있어 사상의 진정한 목적에 가까운 과정과 역할을 보여준 사건이다. 당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해결책을 사상을 통하여 제시하였고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me) 내가 궁금했던 것은 사상적으로 고대와 중세를 가르는 사건이나 사상이 있는지?

 

 르네상스 이 전에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인간은 단순히 신의 종이라는 시대정신이 깃들여 있었다. 그래서 중세의 가치판단은 '신'이라는 통합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통했다. 그러나 너무나 신을 중요시하면 상대적인 반작용이 일어나듯이 종교에 대한 너무나 큰 부조리와 피지배계급에 대한 군림은 종교를 '빌어먹을'것이라는 반응처럼 신을 부정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으로 부터 생겨난 이 사상은 사회, 정치, 과학, 문학, 종교와 같은 인류 전반적인 분야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다시 사람의 의식에 영향을 주게 된다.

 

 오늘날 말하는 기득권이나 지배계급이 군림하는 힘은 그 시대에 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은 나보다 돈이 많아서 잘 낫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숨을 쉬는 이 시간 이 공간에 대표적인 사상-자본주의-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능력이 좋다고 해서 지배할 당위성을 찾는 다면 '능력 중심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무의식적 반응에 대해 당연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생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은 안타깝게도 이전 시대에 살다간 사람들의 작은 책에서 혹은 말에서 시작되었을 수 도 있다.

 

 2. 르네 상스의 대표적 인물

 르네 상스라고 하면 레오나드로 다빈치, 미켈란 젤로를 떠올리기 쉽다. 물론 르네상스는 문화의 혁명이기 때문에 이러한 인물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사상을 중심으로 한 인물은 보카치오, 에라스무스, 토마스 모어, 마키아 벨리가 대표적이다. 보카치오는 천재 작가 이며 데카메론이라는 문학을 썻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흑사병이 창궐한 나라에서 귀족들 7명과 남정네 3명이 흑사병을 피해 별장으로 숨어들어 이야기를 하는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10명이 10일동안의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다. 그 내용은 상당히 지배계급의 위선과 부조리함, 비도덕적인 행동을 드러내었으며 중세시대의 주류 사상인 신성주의를 깨는데 도움을 줬다. 그리고 중세와 근대를 나누는 사건중 하나인 엔클로저 운동이 발생한다. 재산의 사유화를 관에서 주도하여 발생하는데, 토마스 모어에겐 이러한 사유화는 그의 이상과 충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소설 유토피아-세상에 없는 땅-이라는 곳에서 투영된다. 유토피아라는 곳은 제도적으로 사유가 허용되지 않는 세상이었다.

 마지막으로 르네상스 후반에 나타난 인물은 '마키아 벨리'다. 그는 르네상스의 후반을 대표하는 인물인 이유는 자기 주관이 밝혀지는 르네상스의 진가를 표현한 책이 그의 저서 '군주론'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정치는 종교와 독립적이어야 한다.라는 주장을 펼침으로서 상당히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보여준 저서이기 때문이다.

 피렌체라는 전쟁으로 지도자가 자주 바뀌던 곳에서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쳐 자신이 등용되기를 거리낌 없이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 그의 다른 저서에서 로마의 공화정이 이상적인 국가제도라고 말한 것을 종합 해보면 그는 인간이 가지는 존엄성을 사회제도에 투영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마키아 벨리가 근대 철학으로 움직이는 동인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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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