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속에는2018. 5. 11.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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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Science,과학, 이 단어는 수많은 분석이 축적되온 결과물을 통칭한다. 오늘날 서구문화가 지배적인 관념이 되고 문명이라는 번영은 과학으로 부터 답을 얻었다. 세상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의 방향성을 탐색하는 것이 철학이고 이러한 철학은 오늘날 몇 몇 사람들에게 고루하고 따분한 학문이다. 철학을 하기 위해선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해야 하며 이러한 것은 육체적으로 '고통'이라는 이미지로 다가 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철학은 인류와 함께 필수 불가결한 도구이며 행위였다. 비유를 하자면 내가 걷는 다는 것은 지식이지만 내가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는 역할은 철학이 한다. 내가 느끼는 서양철학의 특징은 어떠한 사물을 판단할 때 각각의 특징을 분리하고 그러한 특성을 나타내는 사물에는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나타난다는 생각이 중심에 있다. 예컨데, 한 여인이 아름답다고 한다면 아름다움이라는 특성이 그 여인에게 들어있기에 그렇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양 철학은 그 여인 주위에 아름다움이라는 기운이 둘러싸여있기에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과 사뭇 다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먹고 죽기 전 삶과 죽음, 영혼과 육체, 그리고 사물이 가지는 특성이 어디서 부터 나오는지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대화체 형식으로 풀어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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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욕심이 있는데,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아야 하며 이러한 것은 나를 신뢰하고 인정한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사는 편이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는 누군가를 증오하는 마음과 누군가를 집착해는 마음이 존재한다. 그리고 시각적인 화려함 그리고 아름다움에 쉽게 유혹당하며 혀끝의 달콤함 그리고 육체의 상쾌함을 과하게 즐긴다는 것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자제하고 배척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배척과 자제의 이유는 나로 하여금 논리적이기보다 강압적이고 억압적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왜? 내가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대중처럼 감각적인 육체적인 쾌락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과 다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러한 필요가 왜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철학에 있어서 적극성을 띄기 보단 사회나 종교에서 만들어놓은 지침을 문자 그대로 읽고 행동하거나 해석하려고 하였다. 그러다 플라톤이 지은 파이돈을 대면하게 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지론은 간단하지만 비판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내가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으며 삶의 끝 이후의 삶을 내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지론은 내가 삶이라는 상태에 있음에 경건하게 살아가는 것이 논리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에는 충분하였다. 간단히 말해 사람은 영혼과 육체의 결합에 의해 현재 숨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세상에 발을 딛고 있는 다는 것은 육체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가 삶의 전부인양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영혼이 추구하는 것과 육체가 추구하는 것의 차이 속에서 육체적인 쾌락을 무조건 따르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잠시 생각해보면 나의 삶이 그러지 않았나라는 반성을 하게 된다. 메스미디어의 이미지 그리고 사회가 제시하는 여성의 아름다움, 기름지고 먹음직 스러운 음식, 문제와 문제해결에만 집착하는 성과주의에 목숨을 걸지 않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찬미받고 싶음 그리고 투자시장에 있어서 커다란 자본을 굴리고 그러한 자본이득으로 삶을 쉽게 살아보려는 맹목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라고 반성을 하게 된다. 즉, 사람들은 육체가 얻으려는 편익에 엃매여 영혼이 가지는 순수함과 불멸성을 잊어버린다. 불멸성을 잊어버리는 가장 큰 이유는 육체적 죽음이 있고 난 이후의 삶을 우리는 인지할 수 없으며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육체적 생명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후의 사태를 크게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학문과 자기 수련을 육욕에 열위에 두게되고 자연스럽게 영혼이 가지는 성질을 변화시키게 된다. 책속의 이야기를 현실속에 적용하면 아직도 영혼이 존재하는 지에 대한 과학적인 증명은 어렵다. 그러나 만약 있다고 한다면 육체적 욕구를 따라 한정적인 쾌락을 영원한 영혼의 시간으로 현재비용을 당겨 계산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향성에서 육체로 부터 해탈을 한평생 힘쓴 영혼,다시 말해 참으로 철학적인 영혼은 언제나 죽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철학이란 육체적 죽음을 연습하는 소크라테스의 말로 영혼과 육체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파이돈에서 묘사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깊었다. 당시 소크라테스는 영혼이 불멸한다는 것에 대해 주위사람들에게 설파하지만 대중들의 미움을 사게 된다. 당시 세상 모든 사람이 소크라테스를 비난하고 믿지 않더라도 결국 그의 신념을 침해할 수 없었으며 그의 절계는 죽음이라는 결과로 승화된다. 상상해보면 인간 소크라테스, 독약을 먹을 시간이 언제 돌아올 지 모르는 그,는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육체적 죽음에 두려움은 영혼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에 비해 너무나 작은 고민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로 하여금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해 초연한 태도를 일관하며 결국 자신의 신념을 지켜냈다. 결국 그는 2500년 가까이 잊혀지지 않는 성현이고 인류 역사상 많은 통찰을 가져다준 성인 중 한사람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이러한 신념에 대한 불굴의 의지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적용될 뿐 아니라 어리석은 나에게 큰 영감을 준다. 실천적인 신념을 지켜나가는 것은 대학생으로서의 평안함 보다 지식의 축적으로 세상에 도움을 주는 것, 투자자로서 돈이라는 촉매를 이용해 건전한 기업을 키워내는 것, 미래에 내가 일하게 될 곳에서 단기적이고 범법적인 이득보다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투자철학을 실천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세계 시민으로서 다음 생을 살아갈 인류를 위해 아니 한 사람을 위해 투자분야에 있어 유용한 철학과 성과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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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