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속에는2018. 5. 1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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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덕렬
나는 책보다 저자가 좋다. 그의 고뇌가 나에게는 너무 닮은 꼴을 알게 된 것 같다. 물론 사람의 공통된 고뇌와 감정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책의 머릿말이 나에게 너무나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는 누구 인가?",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소명이란 무엇일까?" 정확히 2개월전부터 계속된 성찰과 자문의 내용과 일치했다.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소수의 거시적 의사결정은 그가 앞쪽의 두뇌를 발달 시키기 위해서 필요 충분 조건이라고 말한것이 나에겐 커다란 깨달음을 주었다. 석가모니는 남에게 답을 얻기 보다는 먼저 간단한 질문에 스스로에게 끓임 없이 묻고 경험하게 했다. 이러한 면에서 그는 현자이거나 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소 어리석긴 하지만 본인 혹은 저자는 이러한 간단하고 편한 문제에 대해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끓임 없이 물어보고 다시 다른 관점에서 보았다. 물론 그의 책에는 내가 이 책을 읽을 때 한 행동을 후회하게 하는 내용도 적혀있었다. 예를 들어 앞쪽형 두뇌가 손상된 사람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계획하지 않아 집에 못돌아오는 등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고 한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교훈이나 희망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오히려 고통으로 다가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스를 아무 생각없이 타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집과 반대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알고 나서 바로 내리니 비가 오고 있었고 지갑엔 돈이 없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했다 ." 나도 앞쪽뇌가 손상된 것이 아닐까? 내가 너무 스스로의 관리를 소홀히 했나보다."라는 후회와 걱정이 생겼다. 그러나 고무적인 점은 앞쪽 두뇌가 손상된 사람은 이러한 실수에 대해 나쁜 감정이 생기지도 않고 고쳐야 되겟다는 계획도 생기지 않는 글귀를 보고 한숨을 덜었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가 이 책에 너무 심취에 이 책의 내용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고. 그만큼 책에 푹 빠져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 책을 보고도 한동안 '신경, 뇌 의학서'에 대한 책을 서점에서 3권이나 읽었으니깐 말이다. 감히 이 책을 지금 까지 읽어보던 책에서 나의 마음과 이성,그리고 다른 감정으로 호소하고 끌어들였던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기존의 나의 편견 중에 하나가 '내가 뛰어든 분야에 엄청난 양의 책을 섭렵하다 보면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그리고 나의 길의 앞쪽에서 걸었던 사람을 만날 것이다.'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거품과 편견은 없어질 때만 그것이 편견이라고 알 수 있는 사람의 입장이 이해되었다. 그것이 하나의 철학이라고 믿었지만 이 책은 그것을 산산히 없애 버렸다. 왜냐하면 내가 추구하는 이상이 들어있을 곳(사회,인문,그리고 공학)이 아닌 이상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적은 곳(의학,뇌)에서 먼저 '내 삶을 바꾼 책'을 만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의 독서에 대한 비중은 크게 전부다 '비문학'이었다. 혹여나 글을 쓰거나 참조를 할 때에 문학서를 펼쳤던 것 외에는 사람의 향기를 맡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비문학중에서 의학 10%, 사회과학 70%, 인문 20%로 사회과학에 대한 비중이 훨씬 높았다. 사회과학 중에서 경제학 20%, 자본학,투자학,금융학 70%, 심리학 10%로 확률적으로 의학 분야의 도서에 소홀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사실 어릴 때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단순히 내가 공부를 못해서 수학을 못해서 사람 다루는 것은 중요해서라는 스스로의 규정지음으로 Plan B를 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고, 내가 경제에 대해 소고를 하거나 스스로를 진단하는 것은 아마도 Plan B를 택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덕렬이라는 저자는 나 스스로가 계속 해서 Plan B로 가도록 하는 상황을 지적해주고 내가 가진 편견과 오만함, 그리고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준 사람이다. 그리고 한동안 스스로에게 답을 찾는 것을 소홀히 하고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해결하려는 나의 태도에 대해 다시한번 경종을 울렸다.
-지금 상황의 Plan A..
내가 좋아 하는 조건은 '지난 상황의 불확실함이 지금 상황에 와서 변수가 제거 되거나 새로운 변수가 나타낫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고 내가 지난 행동에 대해 정오와 다시 고쳐야 될 점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용기를 항상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단지 사회상황이나 경제상황, 그리고 시장상황에 맞는 이러한 생각을 해본적이 있을 뿐, 정작 가장 중요한 고객인 나에겐 이러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나는 상당한 경제,금융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그리고 조금 썻다. 그리고 나는 자격증, 언어적 수단보다 금융시장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제적인 실력,통찰 그리고 끈기를 중요시한다. 어쩌면 이러한 점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판 혹은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맞는지 틀린지, 혹은 적당한 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내가 생각하는 길을 걸어야 된다.
나는 가장 원하고 가장 편한 행위, 마음, 상황을 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점을 제약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Plan B로 가는 길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해놓은 길은 Plan A 이다. 과연 이 시점에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란 일정 기간동안 과거를 통해 배우고 지금이란 상황을 헤쳐나가며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어느정도의 오만이거나 긍정적 의미로 자신감이다. 내가 생각하는 Plan A는 시장의 주치의라는 존재가 되고 싶다. 명의는 다른 의사의 말을 듣기 전에 환자와 직접 대면하여 스스로의 진단으로 환자를 우선 진료한다. 이것은 의술의 시작이며 끝이 될 수도 있을 만큼 중요하다. 시장에 대한 숙고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된다. 물론 다른 명의의 처방이나 진단도 참고하거나 교류해야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신과 시장의 대면이 없다면 어떤 명의의 말도 믿어선 안된다. 그리고 시장을 대면하면 , '나는 시장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 '시장의 움직임이 어떻나?', '시장에서 드러나는 변수나 예상가능한 변수가 무엇일까?'와 같은 생각을 끓임없이 해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과거 진단 목록을 체크하거나 이러한 생각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저서나 강연을 다녀야 된다. 새로 알게된 점은 경제,금융 강연이나 도서 뿐만 아니라 오히려 수학,공학, 의학, 그리고 예술과 같은 다른 분야에 대해서 오히려 깊이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외부에서 부터 나오는 어떤 정보나 이야기들은 믿어선 안된다. 물론 이러한 점을 생각해보는 것은 가능하나 의사가 새로운 학회에서 보고된 어떤 치료법을 환자에게 바로 실행하는 것은 엄청난 위험이 따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중요한 자산, 그리고 생명을 담보로 외부의 정보를 맹신하는 것은 경계해야되는 점중에 하나다. 시장의 주치의가 할 일은 시장이 어떤지 항상 점검하고 만약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적절한 처방으로 바로 잡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포지션에 따른 수익은 단순한 주치의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는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치료에 실패하거나 너무 늦게 치료하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이런 자료는 분명히 이 책처럼 남겨서 다음 진단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 안타까워하되 너무 상심해서는 안된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의사를 하는 것이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의사를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사람의 불완전성에 대해선 교훈을 얻고 인정해야 될 것이다.
- 나의 몸은 하나의 국가,기업,그리고 나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시스템적인 사고가 더 생겨난것 같다. 사람의 몸 전체는 하나의 나라이며 기업이다. 왜냐하면 손,발이 움직이는 것은 커다란 움직임이지만 움직임의 원인은 뇌에서 오는 작은 전기 신호다. 그리고 이러한 신호를 내리기 위해선 뇌나 척수에 일정한 조건이 만족되어야 된다. 만약 그런 조건없이 세상에 대해 몸이 반응한다면 사람은 유기체일 뿐이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쓸수 없었을 것이다. 거기서 '뇌'라는 기관은 몸전체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한다-척수도 일정부분 담당하고 있지만-. 그곳에서 뒤쪽의 뇌는 정보 수집자, 장관직이다. 이유는 몸 외부로 부터 오는 시각,촉각,후각,미각,청각에 대해 감각을 느끼고 장기적인 기억에 관해 데이터 베이스를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정리된 감각은 앞쪽 두뇌로 옮겨져 분류, 반응, 결정을 한다. 그러므로 앞쪽뇌(전두엽)은 말그대로 CEO,대통령의 직위다. 만약 한 나라에 대통령, 한 기업의 CEO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말 그대로 혼란이다. 외국의 어떠한 움직임에 대해서 일일이 반응하게 되고 혹은 어떠한 변수가 나타나면 그곳에 온정신을 집중해야된다. 그렇다면 나라도, 기업도 그들의 형태를 유지하기도 힘들게 될 것이다. 이것을 집단의 항상성이라는 것이다. 앞쪽뇌가 잘려간 사람은 혹은 손상된 사람은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을 뿐 사람으로서의 형질을 나타내지 않는다. 예를 들어 40대 후반의 앞쪽형 치매에 걸린 사람은 어떤 그림을 그려보라고 한다면 맨 처음 시작한 선을 무한정 반복한다. 그림만 본다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반복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시계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면 한쪽으로 치우치게 시간을 나타내는 숫자를 기입한다. 꽃을 그려라고 해도 한쪽으로 치우친 꽃만 그리게 된다. 이것이 앞쪽형 치매다. 대통령이 없거나 기업가가 없는 그런 공황이다. 다행히 치매에 걸린 사람은 이러한 것에 대해 슬퍼하거나 힘들어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앞쪽 두뇌가 손상되거나 퇴화되면 나의 몸에는 지휘관이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름 돋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가까운 미래 혹은 먼 미래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랑,, 그리고 소명
이 책이 의학서이면서 인문적인 감동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점을 주고 싶다. 저자는 현명한 내려놓음의 생각으로 쓰고 있다. 그는 과거에 세상을 욕하고 저주하고 자신이 악인냥 살았다고 했다. 나도 한때는 세상이 전쟁이라도 나서 무정부 상황에 빠졌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내가 선택받았다는 자만감을 가졌다. 그래서 내가 대중들은 심판한다는 생각까지 했다. 저자도 이러한 생각에 엄청난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어떤 처방을 내릴 때 환자는 문제가 있는 유기체일뿐 인격과 감정을 무시하고 치료가 우선이라고 생각한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에 대한 반성과 피드백을 이책에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는 앞쪽형 인간이란 책을 짓지만 그 스스로 덜 앞쪽형 인간이라고 한다. 만약 앞쪽뇌가 발달했다면 이 책을 쓰기 보다 더 발달된 의사결정으로 사회에 도움을 줄꺼라고하고 그의 지식에 대한 겸손도 있지 않는다. 그는 나에게 말한다. '자신만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며 편안한 친구이며 고객이고 스스로라고 한다' 나는 그의 생각을 너무 해와서 오히려 친구에게 '강박증,집착증,조급증 환자 같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의무와 기호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내가 외적으로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은 이성적인 측면이고 무의식,잠재의식이 결여된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심연의 마음을 들여다 보면 아직 말하지 못한 이야기, 아직 밝히지 못한 치부, 아직 인정받지 못한 가치가 들어있다. 내가 받아들이는 정보속에도 타자가 의도하지 않은 소음이 생성되 나의 편견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다 보면 점점 좋은 정보보다는 의심과 회의가 들게된다. 나는 이런 점에서 제한된 정보체널 혹은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물론 열린 인간관계를 추구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나의 길에 의심과 회의가 든다면 단절하는 가위만 나는 들수 밖에 없다.그러나 나는 아직 여러사람한테 배울 자세는 유지하고 있다.그러나 20대의 여느청년처럼 이것이 옳고 저것이 그르다같은 정치적인 편가르기 욕구가 아니다. 또한 과다한 테스토스테론 분비로 인해 뒤쪽뇌나 파충류뇌가 추구하는 성적 욕구를 우선으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하는 행위는 돈을 벌기 위한 것도 아니며 경제적인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단순하고 어리석은 생각에 대한 정오를 판단하기 위해서 하는 행위다. 내가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싶은 욕구는 나의 호기심에 대한 욕구이며, 이것은 개방된 자세지만 한정된 체널을 통해 하고 싶고 타자의 조언보다는 나의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싶다. 나는 이러한 행위를 누구에게 배신감을 느낀다고 해서 멈출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나의 어리석은 행동이 '남에게 지적받기 위한 행동'이라면 그 사람에게 당신은 당신의 젊음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나요? '라고 묻고 싶다.나 또한 이러한 답을 답하기 위해서 숨을 쉬고 내 젊음의 지랫대가 녹슬기 전에 지구라는 행성을 들어올리고 싶은 헤라클래스 적인 욕망이 없다고 할 수 없겠다. 그러나 단순한 힘자랑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 젊음으로 유용한 행위를 하고 싶다는 말이다.
-PS. 이 책을 추천해주신 박기정 님께 제가 받았던 감명만큼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박기정님께서 지적해주신 고뇌가 그대로 묻어있어서 크게 놀랏습니다 ^^. 그리고 스스로에게 가장 편안한 사람은 자신이라는 것을 의학적으로 설명한 것을 다른책 에서 찾기 힘들것 같다.
한동안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책장수 노릇하게 될 것같다. 왠만해선 다른 사람에게 책 추천 안하는데.. 오늘 집에와 가족들에게 책을 다 보여드리고 일일이 설명하고 같이 반성하고 같이 놀라고 위로해했다.물론 우리집에는 아직 의학적으로 치매환자가 없지만 이 책을 본다면 스스로 의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서로가 이러한 점에 이야기하다보면 가족의 결속이 얼마나 대단한건지 새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만난 친구에게도 이 책을 강매 비슷하게 사게 했다. 한가지 걱정은 내가 너무 이 책에 긍정적인 면만 보는게 아닐까라는 의문도 든다. 그게 싫다면 뭐 안읽으면 되지. 사실 나는 무조건적인 헌신은 회의적이다. 헌신을 해도 헌신자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뜨거운 맛을 보고 느끼는 방법이 그를 위하는 길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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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