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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문명

 

 

역사
마야 문명(Maya文明)은 중앙아메리카멕시코 남동부, 과테말라, 유카탄 반도 지역을 중심으로 번영하였던 문명이다.
케추아족이 세운 고대 문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2천년 전 부터 생겼을 것이라 추측된다. 300년 - 900년까지가 문명의 황금기였으나, 10세기에 이민족의 침략으로 인해 멸망하였다. 이후, 일부 마야 유민들이 유카탄 반도로 이동하여 아스텍 문명을 세웠다.
 
사실 이민족의 침략으로 멸망하였다고 위키백과에서 정의를 내리긴 했는데.. 가설이 몇개 남아있긴 합니다.
 
1.강제 노동에 분노하여 피지배층의 마야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멸망했다.
→ 전쟁이나 천재지변의 흔적은 유적에서 찾을 수 없었다.
 
2.타민족의 침입으로 멸망했다.
→ 마야를 무너뜨릴 만한 민족은 주변에 없었을 뿐더러 극지방쪽에 있었던 이민족도 마야문명을 무너뜨릴 만큼 강력하진않았음
 
3.화전 농업을 하기 때문에 멸망했다.
→ 화전이란 숲을 태워서 거기서 나온 거름으로 농사를 짓는 것
    현재에도 아프리카 사헬 주변지역 같은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는 농업형태 
    화전을 하면 토지가 재가되어 어쩔 수 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이론
    하지만 마야문명은 밀림 , 숲 , 늪지대에 고루 걸쳐서 발견됬고 과거 화전을 했던 흔적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문자
마야인은 상형문자를 사용했는데 문자의 발달수준은 중국의 상형문자와 매우 유사하다. 단 부호의 조합이 한자에 비해 복잡하여 아직까지 사람들이 완전히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
마야는 신정정치를 실시했다. 그들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유사한 모양의 거대 신전을 구축하고 태양신과 달의 신을 숭배했다. 
 
문화 
천체 관측법과 역법이 매우 발달했고 특히 마야 숫자가 매우 유명하다. 마야 숫자는 0을 사용했으며 20진법을 사용했다.
주로 농업에 종사했으며 주 수확 작물은 옥수수였다. 마야의 상인들은 멕시코만과 카리브해의 다른 부족민들과 교역을 하기도 했다.
 
의학
마야에서는 가 부러졌을 때 치료법은 다음과 같았다.
  • 화덕에 있는 덩어리를 잘게 부수어 으로 싼다.
  • 사이에 끼우면 통증이 사라진다.
  • 또 다른 방법으로는 악어 이빨을 뽑아 그것으로 생선 껍질을 으깬다.
  • 으깬 생선 껍질을 에다 싸서 부러진 이에 끼우면 통증이 멎는다.

그리고 마야는 의학을 종교와 관련시켰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화요일이나 금요일에 시작하면 불길하고, 곡식의 씨를 뿌리는 날이나 결혼식 아니면 도박을 하는 날에는 토요일이 가장 길하다고 믿었다. 다른 방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치료법도 있었다.

그리고 마야의 어느 의학서에는 '모든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에는 환자의 신발에다 오줌을 눈 다음, 그것을 먹인다.'라고 적혀있다.

 

문물

- 수정 두개골


1927년 멕시코 Belize에서 헤지스(Mitchell-Hedges)와 그의 딸에 의해 처음 마야 유적 중 발견된 수정 두개골은 사람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 수정 두개골은 완전히 큰 수정석을 가공연마하여 완성한 것인데 형태가 인류의 두개골과 거의 같고 높이는 12.7 센티, 무게는 5.2 킬로그램이며 턱뼈는 움직일 수 있도록 조각된 것이었다. 그 앞 뒤로도 이와 유사한 것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이 수정두개골은 외관상 진짜에 매우 가까울 뿐만 아니라 내부구조도 사람의 두개골 구조와 일치한다. 그 공예수준은 매우 높아 그 바닥에 숨어있는 마름모형 거울과 안구 언저리에 전용 수공으로 갈고 닦은 투경이 잘 조합되어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우리가 알기로는 현대 광학기술은 17세기나 나타났으며 인류가 자신의 두개골 구조를 정확하게 인식하게된 것은 18세기 해부학이 발전된 이후이다. 이 수정 두개골은 오히려 인체 두개골의 골격과 구조를 광학원리에 기초하여 조각한 것이다. 마야인은 어떻게 이러한 고도의 해부학적 지식과 광학적 지식 및 기술을 구비했을까? 


수정은 석영결정체이어서 매우 단단한 돌이다. 다이아몬드 다음인데 구리, 철, 돌 등의 공구로는 가공할 방법이 없다. 현대인이 이런 수정을 깎으려면 다이아몬드 칼 등의 현대적 도구가 있어야 한다. 실증연구를 통해본 결과 이 수정 두개골은 모종의 충돌하는 힘으로 조각한 것이라고 밝혀내었다. 그러나 현재과학기술은 아직 그러한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

프랭크 돌랜드는 다이아몬드로 깎은 다음 수정가루가 섞인 물로 매끄럽게 다듬지 않았을까 라고 추측하지만 이 방법을 기계를 빌리지 않고 완성하려면 무려 300년의 시간이 걸린다.

 

13개의 수정해골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많은데 고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13개의 해골 가운데는 마치 외계인의 머리 모양으로 보이는 해골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외계인의 해골 모양을 본떠 만들었을거라는 추측은 성급한 결론이다. 과거 칼을 대지않고 자라날 때 인위적으로 두개골을 특이한 모양으로 변형시키는 방법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흉내내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 , 천문학

다른 고대문명보다 훨씬 앞선 역법, 천문학, 수학이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사용되지 않았고 근세기에 들어와서 사용한 0(Zero)의 숫자를 마야인은 일찍이 실용화한 점이다.카툰이란 단위로 시간을 측정했던 마야인들은 3세기경부터 이미 0 을 포함한 20 진법 숫자 체계를 갖고 계산했다. 0 의 사용은 인도보다는 3 백년, 아라비아 상인보다는 7 백년 정도 앞선 것이다.마야의 천문학은 매우 발달하여 그들은 1년이 365.2420 일이라고 밝혔다. 오늘날 정확한 과학조사로 밝혀진 날짜는 365.2422 일이니 불과 17.28초의 차이다. 그들의 수치계산이 얼마나 정확했던가를 잘 알 수 있다. 또한, 마야인들은 금성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고 있어 584일 주기의 금성력(金星曆)까지 만들었는데, 그들은 태양력의 8년 동안에 금성력이 꼭 0.4일 어긋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예언의 정확성

고대 마야인들의 6번째 태양과 지구멸망 이야기입니다.

고대의 어느 문명보다 수학과 천문학등이 발달하여 정확한 달력을 가지고 있던 고대 마야 문명에는 6개의
태양에 관한 괴이한 전설이 전해내려 왔습니다. 인류의 운명이 태양과 지구에 의해 결정된다는 전설을
믿은 마야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예언한 4번째 태양이 없어진 시기에 정확히 멸망을 하였습니다.
오늘날 학자들에 의해 계산된 6번째 태양이 없어질 날은 2012년 12월 22일이고, 괴이하게도 마야의
전설에는 7번째 태양은 존재하지 않으며, 지구의 인류는 6번째 태양이 없어짐과 동시에 완전히 멸망을
한다고 기록되었습니다.
5번째 태양이 없어지는 날인 1991년 7월 11일 남미의 멕시코 시티에서는 당일 마야의 예언을 모르고 있던 사람들이 일식을 보기위해 하늘을 쳐다보다 일식이 일어나기 직전과 직후 하늘에 정체를 알수없는 비행 물체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당시 비디오 카메라를 가지고 일식을 촬영하던 수천여명의 시민들은 UFO의 영상을 촬영한뒤 깜짝 놀랐고
같은날 UFO가 출몰한 근처 포포카테페틀산에서는 갑작스런 화산활동이 포착되었습니다.
일식전후 모든 상황이 수천년전 마야인들이 남겨놓은 5번째 태양이 죽을때의 상황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된 사람들은 신문과 방송등에 문제의 사실이 공개된후부터 2012년 6번째 태양이 없어지며 인류가
멸망할것이라는 예언을 두려워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고대 마야 문명 900년에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태양활동에 의한 가뭄 때문이라고 추측

 

1991년 7월 11일 남미의 멕시코 전역에서 일어난 UFO 그 사진

 

2012년 지구멸망

2012년 12월(계산상 약 21~22일 사이) 인간의어리석은 과학으로 지구는 사라진다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로인해 논란이된게 유럽제네바에서 하는 2012년 12월 빅뱅실험입니다.

빅뱅실험은 성공하면 큰 업적을 남기고 현대과학이상승하지만 실패하면 블랙홀이 생겨 지구가 빨려들어갑니다. 

실례로 마야인들이 한예언중에서 '2008년 대륙아시아 부근에서 어리석은 인간으로 인한 큰지진이 일어난다'라고 예언했는데. 실로 중국 스촨성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또 지진원인은 스촨성댐으로 지진이 일어났지요. 2012년 빅뱅실험이 실패하여 양성자들이 정확히 부딪혀야 실험이 성공인데 0.00001%라도 어긋나면 서로 마찰이 생겨 미니블랙홀 즉, 자그마한블랙홀이 생겨 점점커지면서 지구를 빨아드립니다. 제네바 측에선 미니블랙홀이 생겨날가능성은 40%라고 발표했지만, 안전장치를 하기때문에 걱정할 필요하없다 라고 말하였는데. 한 과학자가 블랙홀 시뮬을 본결과 블랙홀은 점점커지면서 지구를 빨아드릴것이라고 했습니다.

 

 

대부분 행성충돌로 많이 알고계시는데.

마야 달력에 적힌건 인간의 어리석은 과학 이라고 나와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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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智異山) 피아골 :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통꼭봉과 촛대봉 :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과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경계
- 「피아골 - 피」, 되풀이 된 피아간(彼我間) 피 흘림의 역사


○ 영화 「피아골」은 빨치산 전투기록대로 현지 촬영한 영화

지리산 어느 골짜기인들 사연 없는 이름이 있을 것이며, 전설을 지니지 않은 곳이 있으랴마는, 그 중에서도 피아골은 역사의 상처, 지리산의 수난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곳으로서 특히 기억되어야 할 이름이다.

피아골은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의 지리산 골짜기이다. 지리산의 서쪽 최고봉이 되는 반야봉(般若峰 : 1,732m)과 삼도봉(三道峰 : 1,550m) 노고단(老姑壇 : 1,507m) 사이의 깊은 계곡이자 유명한 연곡사(燕谷寺)가 있는 곳이다. 연곡사(燕谷寺)가 있는 곳이니 그 이름대로 「연곡」은 우리말의 ‘
제비골‘쯤 되는 이름인데 그 유래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1955년도에 만들어진 영화 「피아골」에서 비롯되었다. 이 영화는 1954년 8월 빨치산 토벌작전에 참여한 국군의 전투기록과 수기를 바탕으로 지리산 현지 촬영에 의하여 만들어진 영화로서, 반공영화작품이면서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사상적 갈등과 인간성의 문제, 인간의 모순과 본능을 파헤친 문제작으로 회자되었던 영화이다.

눈 쌓인 산을 보면 / 피가 끓는다./ 푸른 저 대?을 보면 /
노여움이 불붙는다. / 저 대 밑에 / 저 산 밑에 / 지금도
흐를 붉은 피 // 지금도 저 벌판 / 저 산맥 굽이 굽이 /
가득히 흘러 / 울부짖는 것이여 / 깃발이여 / 타는 눈동자
떠나던 흰옷들의 그 눈부심

시인 김지하씨의 「지리산」이다. 역사의 칼날에 의하여 죽고 죽이는 피 흘림이 되풀이 된 곳. 그곳이 바로 지리산이며, 피아골이다.

1948년 10월 여수. 순천 무장군인 봉기사건과 1951년 6.25사변의 패잔병들이 소위 남부군 사령부 지휘 아래 빨치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지면서, 지리산 일대에서 준동하였다.
이들에 대한 토벌작전으로 1955년 말까지 군. 경과 죄 없는 민간인 사망자, 그리고 빨치산 사망자 등 1만 여명 이상이 지리산 기슭에서 죽어갔고, 그 중에서도 전투가 심한 피아골 지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갔다. 이데올로기는 무엇이며, 민중해방과 계급투쟁은 또 누구를 위함이었던가.

○ 지리산 빨치산 토벌과 구한말의 의병항쟁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겹겹이 봉우리 쌓인 연곡사 골짜기에
이름 없는 이들이 나라 위해 죽었도다.
말들은 흩어져 논두렁에 누워있고,
까마귀 떼만 나무숲 사이로 날아 앉는다.…(중략)
홀로 서쪽 바라보면서 뜨거운 눈물 흘리는데
새 무덤 오똑한 곳에 들국화만 피었어라.(원문 생략)

이것은 매천(梅泉) 황현(黃玹)이 쓴 <연곡싸움에서 순절한 의병장 고광순을 기리며>라는 시이다. 을사조약후 일본의 토벌을 외치며 의병봉기가 시작되었으나, 특히 1907년 우리 군대 해산 후에는 전국적으로 의병전쟁이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전라도 지역은 일제에 대한 의병전쟁이 가장 활발한 지역이었으며, 그중 김동신, 고광순 등의 의병장이 이끄는 부대의 지리산 지역 전투였다.

지리산 전투는 피아골의 연곡사, 섬진강, 화개장터 등지에서 벌어졌으며, 이 싸움으로 인하여 연곡사가 불타고, 이때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가 소실되었다. 이 연곡사 싸움소식을 듣고 황매천은 연곡사로 달려갔다가 그 참상을 보고 돌아와 이 시를 쓴 것이다.

피아골에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외세가 제 백성을 도륙하면서 이 강토를 유린하고 있을 때 이 나라 조정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
그때 우리 의병과 일본군이 치열하게 싸웠던 싸움터인 화개장터 옆 옛 섬진강 나루터에 지금은 영.호남 화합과 우의를 다지는 남도대교(南道大橋: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의 두 남도를 연결하는 다리라는 뜻)가 2003년 4월 경 개통되어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다시 피아골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연곡사의 의병전투에 앞서서 지리산 일대는 이미 동학 농민전쟁의 격전지가 되었던 곳이다.

접주야 접주야 임접주야. 그 많은 군졸을 어디다 두고
구리실 막바지에 낮잠 자느냐.

이 노래는 동학농민전쟁 당시 구례의 농민군을 이끌었던 임정연이 일본군에 붙잡혀 구례군 광의면 지천리 구리실 골짜기에서 처형되었으므로 이 지방 농민들이 부른 노래라고 한다.

녹두장군 전봉준에 의하여 전라북도 고부에서 불붙은 농민전쟁은 지리산의 화엄사와 구례, 남원 일대, 영남지역의 산청, 진주, 하동 일대에서도 일본군과 접전이 벌어졌으며, 산청군 단성에 집결한 농민군이 한 때는 5천명에 이르기도 하였던 것이다. 지리산 일대에서 농민군 함성이 메아리칠 때 피아골인들 조용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 동학농민전쟁과 정유재란의 비극

피아골에서 일어난 역사의 비극은 다시 1597년 정유재란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피아골 입구의 바로 옆에 사적 제 106호로 지정된 석주관이 있다. 이곳은 원래 고려말부터 흙과 돌로 성을 쌓고 섬진강을 따라 침입하는 왜구를 막던 곳이다.

정유재란 당시 배를 타고 섬진강을 거슬러 오르던 왜적을 막다가 구례의 선비들과 마을 주민들이 죽자, 이번에는 연곡사와 화엄사의 승려 150여명, 그리고 수많은 의병들이 가세하여 석주관 방어에 나섰으나 중과부적으로 모두 순절하고 말았다. 지금 남아있는 석주관 칠의사 묘와 순절비가 바로 그것을 기리는 비이다.

나라 위해 모집에 응하고 / 주인 위해 내 몸을 잊었네 /
중이라고 어찌 가리랴 / 기꺼이 나라 위해 일어섰도다 /
핏물이 내를 이룸을 한 조각 돌에 사연을 새기니 /
그 절개, 그 충정 영원하리라.

이것은 칠의사(七義祠) 순절비문의 일부이다.
석주관(石柱關) ! 돌기둥으로 세운 관문이라는 뜻이다. 그 돌기둥이 지금 섬진강 가의 어디쯤이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때 나라의 부름이 없었음에도 스스로 떨치고 일어나서 이 섬진강 벼랑에서 초개같이 한 목숨을 던진 그분들이야말로, 붕당을 짓고 공리공론으로 날을 지새우던 썩어빠진 조정 신하들보다도 분명 이 나라를 지키는 돌기둥(石柱)이 되었음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피아골! 이곳은 본래 직전(稷田), 즉 피밭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피는 화본과(禾本科)에 속한 일년생 풀로서 이곳에 있었던 피밭골에 의하여 피밭골>피앗골>피아골로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피’기 피 = 혈(血)로 풀이되면서 외세의 침략과 민중의 저항, 민족분단과 동족간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살륙과 전쟁의 역사, 그 역사의 질곡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피아골 연곡사 뒤쪽에는 높이 904.7m의 통꼭봉이 있다. 이 봉우리를 현지에서는 ‘통꼭지’라고 부르는데, 모든 지도에는 ‘통꼭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 통꼭봉이 나에게는 통곡봉(痛哭峰)으로 들렸다. 수많은 젊은 죽음을 애도하여 통곡하는 봉우리인 「통곡봉」으로 들리는 것이다. 또 그 남쪽의 촛대봉은 그 죽음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하여 촛불을 켜놓는, 그 「촛대봉」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 피아골의 ‘피아’가 적과 아군을 싸잡아서 말하는 「피아(彼我)」로 풀이되면서, 같은 동족의 젊은이들이 적(彼)과 아군(我)으로 나누어져 싸운 「피아골」로서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피아골 단풍이다.

피아골 단풍은 예로부터 지리산 단풍의 대명사로 알려진 곳이며, 그 중에서도 삼홍소(三紅沼)는 산홍(山紅), 수홍(水紅), 인홍(人紅)이라 하여 삼홍소로 불러지는 곳이다.

가을에 붉은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
천공(天公)이 나를 위해 뫼빛을 꾸몄으니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마저 붉어라.
-조식(曺植) <삼홍소>

피아골에서 피 흘린 역사를 증언하기 위하여 피아골 단풍은 저리도 붉게 물드는 것인가. 아니면, 그 피를 먹고 자란 나무들이기에 그 단풍마저 핏빛을 띠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피아골의 종녀촌(種女村) 이야기를 그냥 넘길 수 없다. 세월이 흘러서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된 이름이지만, 피아골 어느 골짜기인가 종녀촌이라는 여인들만의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종녀촌은 글자 그대로 씨받이 여인을 말한다.

자식을 원하는 지방의 부자들이 벼 10가마니 정도를 주고 여인을 사면 팔려간 여인은 자식을 낳아주게 되는데, 아들을 낳아주고 종녀촌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딸을 낳으면 그 딸은 이곳으로 데려와 살면서 대를 물려가며 종녀가 되었다고 한다.

이 종녀촌은 처음에는 타 지역에서 중매자의 꾐에 빠진 시골 처녀들이 들어와 살았으며, 나중에는 종녀들이 낳아서 데리고 들어 온 딸에 의하여 종녀촌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종녀촌의 여인들은 자식을 낳아주는 것을 생업으로 하면서 이곳에서 일생을 마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필자는 단풍이 물들어 가는 2003년 10월 말경 종녀촌을 찾아서 피아골계곡으로 들어갔다. 섬진강변 입구에서부터 연곡사를 지나 피아골 여러 마을을 들러보았지만 시원스럽게 종녀촌에 대하여 입을 열어주는 촌로들을 만나볼 수 없었다. 아마도 아픈 기억을 외부에 드러내놓기 싫은 탓일 것이다.

피아골 긴 골짜기마다 서리고 맺혀 있는 수많은 사연들을 여기에 다 적을 수 없다. 피아골은 우리 민족의 한과 원, 그리고 서민의 애환과 눈물을 담고있는 골짜기이며, 종녀촌 이야기는 또 다른 측면에서 피아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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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홍

          -서정주-

 

영산홍 꽃잎에는
산이 어리고

산자락에 낮잠 든
슬픈 소실댁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산 너머 바다는
보름살이 때

소금밭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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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Best Record                                              개인 최고기록

1500m Freestyle 24'                                          1500m 자유형 24분

 

Fin Swimming                                                        잠영 

50m / 4 times                                                     50m 4번

 

-자유형 느낌

 어깨의 근육을 긴장시키고 팔 리커버리 중에 앞쪽과 아래쪽의 대각선 방향으로 손을 작살꽂듯이 내지른다. 그리고 반대쪽의 팔은 몸과 최대한 밀착시키고 몸의 전체적인 모양은 옆으로 누운 모양이 되게 한다. 그리고 발이 압력을 느끼고 장단지에서 추진력을 발생시킨다. 턴 이후 잠영을 통해 최대한 많은 거리를 확보한다.

 초반 200m 까지는 상당히 체력이 비축되어 많은 힘을 써버릴 수 있으므로 물살을 가르는 것을 느끼는 것에 중점을 두고 500m 부터는 배 부분의 긴장을 풀리지 않게 노력한다. 몸 전체의 크롤링-좌우로 뒤뚱거림-을 하여 팔의 저항을 줄이면서 기존의 추진력을 살린다. 750m 사점이 지난 이후 근육의 긴장도가 적절하게 이뤄져 물의 저항을 줄인다면 스퍼트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대 속도의 70%까지 끌어올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발의 추진력으로 전체속도를 올리는 것이지, 팔의 스트로크로 속력을 낼 경우 후반부에 지치는 상황이 발생한다. 1000m 턴과 잠영이 근력의 소진으로 힘이들지만 잠영과 기존의 물의 저항의 감소는 가장 크게 생각해야 될 부분이다. 1250m 서서히 땅에서 달리는 것처럼 숨을 내쉬며 몸에 산소를 순환시킨다고 생각하고 숨을 크게 내쉰다. 그리고 이후에 팔의 스트로크와 하체의 긴장으로 추진력을 조합해서 낸다. 1400m 마지막 벨이 울린다고 생각하고, 남은 힘을 모두 쓴다. 그러나 자유형의 리듬을 잃지 않아야 한다. 잘못하면 허우적거림을 할 수 있으므로 잠영과 물의 저항을 고려한 스트로크로 완주한다.

- 물을 가른다는 생각과 나는 돌고래인가? 라는 생각에 집중하며 팔은 물속에서 배의 닻(Anchor)의 역할을 하며, 복부의 긴장을 시켜주어 마찰을 줄인다. 허벅지 아래에 오는 다리는 자연스럽게 저항을 줄이면서 추진력을 살린다는 생각을 한다.

 

- Concentrate Fun in swim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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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정호승 詩, 양희은 노래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내리면 눈길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라
갈대 숲 속에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가끔씩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신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산그림자도 외로움에 겨워
한번씩은 마을로 향하며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우는 것도
그대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그대 울지 마라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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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 책

이기철

 

행간을 지나온 말들이 밥처럼 따뜻하다

한 마디 말이 한 그릇 밥이 될 떄

마음의 쌀 씻는 소리가 세상을 씻는다

글자들의 숨 쉬는 소리가 피 속을 지날 때

글자들은 제 뼈를 녹여 마음의 단백이 된다

서서 읽는 사람아

내가 의자가 되어줄게 내 위에 앉아라

우리 눈이 닿을 떄까지 참고 기다린 글자들

말들이 마음의 건반 위를 뛰어다니는 것은

세계의 잠을 꺠우는 언어의 발자국 소리다

엽록처럼 살아 있는 예지들이

책 밖으로 뛰어나와 불빛이 된다

글자들은 늘 신생을 꿈꾼다

마음의 쟁반에 담기는 한 알 비타민의 말들

책이라는 말이 세상을 가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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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초

호시노 토미히로

 

 

오늘도 한 가지

슬픈 일이 있었다.

오늘도 한 가지

기쁜 일이 있었다.

 

웃었다가 울었다가

희망했다가 포기했다가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그리고 이런 하나하나의 일들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평범한 일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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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우리 몸 안에도 인을 생산할 수 있는 물질이 있어요.

그보다 더한 것도 있죠.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걸 알려드릴까요?

우리 할머니는 아주 재미있는 이론을 가지고 계셨어요.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 하고 성냥불을 일으켜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잠시 동안, 우리는 그 강렬한 느낌에 현혹됩니다.

우리 몸 안에서는 따뜻한 열기가 피어오르지요.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라지지만,

나중에 다시 그 불길을 되살릴 수 있는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중에서, 라우라 에스키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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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웠다

오마르 워싱턴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뿐임을.

사랑을 받는 일은 그 사람의 선택에 달렸으므로.

 

나는 배웠다. 아무리 마음 깊이 배려해도

어떤 사람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것을.

 

인생에선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보다

누구와 함꼐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서로 배워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기보다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보다

그 일에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무엇을 아무리 얇게 베어내도 거기엔 늘 양면이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겐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놓고 떠나야 함을.

더 못 가겠다고 포기한 뒤에도 훨씬 멀리 갈 수 있다는 것을.

 

결과에 연연하기 않고 마땋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

진정한 영웅이라는 것을 나는 배웠다.

깊이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드러낼 줄 모르는 이가 있다는 것을.

내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남을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정이 계속되듯 사랑 또한 그렇다는 것을.

 

가끔은 절친한 친구도 나를 아프게 한다는 것을.

그래도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남에게 용서를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 해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떄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두 사람이 다툰다고 서로 사랑하지 않는게 아니며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또 나는 배웠다. 때론 남보다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두 사람이 한 사물을 보더라도 관점은 다르다는 것을.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 결국 앞선다는 것을.

친구가 도와달라고 소리칠 때 없던 힘이 솟는 것 처럼

자신의 삶이 순식간에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글 쓰는 일이 대화하는 것처럼 아픔을 덜어준다는 것을.

가장 아까는 사람이 너무 빨리 떠나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것과

내 주장을 분명히 하는 것을 구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그리고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시는 나의 삶을 외부적 시각으로 인도한다. 시장의 움직임이나 미래에 대한 어떤 사건을 한 수라도 더 보기위해서 발버둥 치고 있는 나로 하여금 좀 더 자신의 삶을 장기적인 호흡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이상하게 문학 중에서는 시에 대한 나의 관심은 어느 순간 시작되었다. 삶과 시상의 관계가 유기적이고 일맥상통하는 느낌을 들게 해주는 것은 시의 매력이지 않을까?

 

 나는 배움을 좋아한다. 책이든 보고서든 논문이든 생활이든 사람이든 언제나 배움에 대한 호기심은 나에게 기쁨을 준다. 다이아몬드의 원석을 가공해나가는 것 처럼 배움이라는 세공도구로 조금씩 내 삶을 절차탁마한다는 것 처럼말이다. 세공사는 다이아몬드 원석이 크기가 줄어들지만 그 가치는 고귀해진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한번씩 배움에 대한 두려움과 귀찮음이 나를 찾아올 때 이 시를 보고 힘을 얻으려고한다.

 

 글을 쓰는 일은 자신과의 대화이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 처럼 자신의 아픔을 치유해준다는 말은 정말 크게 와닿았다.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것과 내주장을 분명히 하는 것의 구분은 아직 어리석은 나에게 아직 어려워 보인다. 이 글을 읽으며 지난 날의 무지했던 생활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젊음을 불살라야 겠다는 다짐이 함께 다가왔다.

 

 상대방의 최대치에 나를 맞추지말고 자신의 최대치에 자신을 마추라는 구절은 예전엔 상대방을 바꾸기 위해서 공부했던 것을 나를 바꾸는데 나의 청춘의 가치를 높이는 배움이 되어야 겠다고 깨달으며 이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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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는 하나로 보면 보잘것없는 그들이 모여 가장 아름다운 꽃차례를 만드는 꽃입니다. 코스모스라는 말이 '질서'와 조화, 나아가 완전한 질서 체계를 가진 '우주'를 의미하며, 한편으로 조화를 이룬 것은 아름답다라는 뜻으로 '아름답다'는 어원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코스모스 한 송이를 작은 우주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지나친 비유가 아닙니다."
- 이유미의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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