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속에는2018. 3. 1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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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포터

영국 웰컴 인스티튜트에서 의학사를 가르쳐온 역사학자. 8가지 분류로 의학의 실체를 보여주며 접근성을 높힌다.
-현대 사회에서는 의학을 서비스라고 부른다. 의학이 만능이고 서비스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된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았다. 과거에는 의학은 주술이었고 연금술의 다른 이름이었다.
질병 자체는 보이지 않는 악령 따위로 비유가 되었고 의사는 그러한 악령을 쫒는 주술사였다.또한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몸은 절단을 하거나 붙이는 목재 따위였었다. 지금은 공장형 병원이 위엄을 갖추고 서있지만 이발소나 교회가 과거의 병원이었다.
몸 부분에서 인상 깊었던 점이 질병에 대응해서 사람의 기질도 유전자형을 변화하여 질병 우산을 편다는 역사적 사례가 흥미로웠다. 사람 유전자 또한 자기 생존을 위해 성찰을 해서 기질을 바꾸는 것같아서 인상적이었다.
이렇듯 의학이 말하기 싫어하는 치부를 필자는 거침없이 그대로 전해준다. 물론 이러한 의학이 현대에 나쁘거나 잔인하다고 평하지 않는다. 분명 과거의 의학과 지금의 의학이 바뀐점을 인식하면서 의학의 장점과 순기능을 알 수 있었던 좋은 책이었다.

ps : 깊이는 없지만 의학사의 접근성을 높여주는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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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탠스
내 서재속에는2018. 3. 1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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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

오늘날 막스는 마르크스, 프로이트와 나란히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사상가로 손꼽힌다. 그는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연구했었다. 그는 '제2의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별칭도 따라온다. 그가 연구한 학문의 다양성만큼이나 깊이와 성찰이 옅보인다. 그리고 현대사회에 관료제,합리화, 카리스마,경제윤리와 같은 개념의 시초는 대부분 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증명사례를 꺼내지 않더라도 그가 현대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자들의 사상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 지 실감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생애와 철학은 내가 본받고 싶은 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몇몇 환경적인 특성이 내가 생각하는 유년시절과 비슷하다는 점이다.그는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법률가이자 시의 참의원으로 부르주아 계층이었다. 그리고 베를린 교외의 샤르를로텐부르크에서 살았는데, 그곳은 지역 학자들과 기업가, 예술과 등 자유로운 토론 장소가 되었다. 그 결과 어린 시절부터 베버는 자연히 정치적 토론뿐만 아니라 교양 있고 수준 높은 대화와 독서에 익숙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지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자랐고 가족들과 함께 많은 여행을 통해 조숙해진 소년 시절의 베버는 틀에 박힌 학교 수업에 불많이 많았다. 그는 운동보다 독서를 좋아했으며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폭넓은 독서를 했다. 

 그러나 사춘기부터 비판적 사고를 가졌던 베버는 학교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지 않았고, 학교의 형식적인 학습방식에 반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동급생의 경박한 행동과 권태로운 학교생활에 염증을 느낀 베버는 더욱 자신의 지적 세계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나의 사견이지만 그의 폭넓은 학문과 합리적 사고는 그의 유년시절부터 생겨난거 같다. 그는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던 어릴 적 삶을 살았지만 가부장적인 아버지 인도적인 어머니 사이의 불화를 눈치 챘던것 같다. 그는 사춘기 시절에 아버지의 전근대적인 속물근성과 어머니의 프로테스탄트 신앙심 모두를 비판하면서 부모님과 멀어진다.

 그리고 그는 대학을 입학하면서 법률을 전공하게 되지만 역사학,경제학,철학 과 같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그는 아버지가 대학시절 들었던 결투클럽의 임시회원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짐작했을 때 그는 독서에만 빠졌던 것이 아니라, 사교 활동을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베버는 일찍 일어나 논리학 강의에 참석하는 열의도 보이기도 했지만 결투장에서 빈둥빈둥 지내기도 했다. 어떤 때는 교수의 집에 초청받아 다른 사람들의 특징을 흉내 내는 등의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베버는 결투 클럽에서는 물론 술자리에도 빠지지 않는 사교적인 인물로 변해 갔다. 그래서 베버의 얼굴에는 결투를 하면 으레 생기기 마련인 흉터도 생겼고 심지어는 유흥에 쓴 돈 때문에 빚도 지게 되었다. "결투 클럽에서 행했던 과감한 공격 훈련은 나에게 강한 모습을 심어 주었으며 그 덕택으로 소년 시절의 수줍음과 불안이 사라졌다."라고 쓴 것을 보면 베버의 일생에서 이 시절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이델 베르크에서 세 학기를 지낸 후 1993년 베버는 스트라스부르로 가서 군 복무를 했다. 하지만 형식적이고 가혹하며 육체훈련에만 집착하는 군 복무는 베버에게 몹시 고통스러웠다. "생각하는 인간을 자동적이며 정확하게 명령에 응하는 기계로 길들인 어이없는 시간 낭비였다"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베버는 군 복무에 환멸을 느꼈다. 나 또한 이렇게 생각한다. 단순한 기계가 되어버린 자들과는 어떠한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없는 것을 느낀다. 물론 군대라는 힘든 상황 아래에서도 주체적인 정신과 군대 속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어 오는 자들도 있지만 말이다. 

 병역은 1년만인 1884년에 끝났다. 다시 복학한 베버는 처음에는 베를린에서 그뒤에는 괴팅겐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괴팅겐으로 온 뒤 차분하게 학업에 열중했으며 1889년 중세의 무역회사를 다룬 박사 학위 논문을 완성했다. 이 논문을 쓰는 데 이탈리아 스페인의 문헌을 참고하기 위해 베버는 이 두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1890년,제2차 사법 시험에 합격한 베버는 이듬해인 1891년 로마 농업사를 다룬 논문을 써서 학위를 마치고 베를린 대학의 상법,독일법,로마법을 담당하는 교수가 된다.
이하의 그의 생애는 아마도 이 책에 대한 내용으로 대체하는 것이 나을 것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의 책을 윤리 교과서 이후에 다뤘던 적은 아마도 처음이다. 분명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항상 약간의 마음의 정적이 생겼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항상 질문이 떠올랏다. 어떻게 그가 나의 머리 속 생각 까지도 그의 논거로 펴내는 지 너무나 놀라웠다. 아마도 이러한 연유로 이 책이 고전이 되고 지금 까지 전해져오고 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오랜 시간 걸쳐 베버 이후에 지나간 사람에 의해 읽어지고 그의 생각이 펴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생각과 고찰이 현대사회의 페러다임까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나도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교육과 생활,문화를 통해 무의식적인 학습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다만 이러한 사상을 무의식적으로 생각하지만 그의 저서는 읽어보지 않은 자들이 대부분이다. 즉,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명명을 들어보진 못해도 이로 기인한 행동은 하지만 이것의 근원은 모른다는 것이다. 근원을 모른 채 행동하는 것은 삶에 있어서 주체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미네르바의 추천에 의해 읽게 되었지만 분명 스스로 읽어 볼 필요가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 맴돌았던 질문은 "종교도 하나의 사상이고 철학이다.그러나 종교를 믿는 자들은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고 종교에 있어서는 합리적인 사고가 아닌 광기,감각적으로 믿어버린다.왜 이성적인 질문을 한번이라도 해보지 않는 거지?"였다. 아마 이 책에 주제에 비해 많이 빗나간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의 저서 속에는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왜 자본주의 정신에 포함되어있고 이것이 기인한 철학이 소개되어있다. 16세기 마틴 루터와 장 칼뱅등이 주도한 종교개혁의 결과로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해 성립된 기독교 분파가 프로테스탄트이다. 일명 신교 혹은 개신교로 불린다.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은 'protest'라는 어원에서 왔다.그리고 자본주의라는 것은 16세기 무렵부터 봉건 제도 속에서 점차 싹트기 시작했다. 영주에게 일정 노동력을 제공해야되는 농노의 시대부터 약간의 균열로 인해 생기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주의자들이 쓰기 시작했는데, 그 뒤로 널리 보급되어 일반적인 명칭이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한마디로 대체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객체가 정의 하기에 따라 자본주의의 범위는 협소적일 수도 포괄적 일 수 도 있다. 다만 막스 베버가 정의한 자본주의는 근대 자본주의이다. 직업을 통해 이윤을 조직적이고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근대 자본주의를 베버는 '합리적 자본주의'라고 불렀다. 합리적 자본주의는 정규적인 시장과 연관되어 이루어지는 경제 행위의 한 형태로서, 정확한 계산을 통한 장부 정리와 합법적 수단에 의한 체계적인 이윤 추구를 특징으로 한다. 베버는 합리적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정신이라는 규범적인 조건과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라는 제도적 요소가 필요하다고 구분했다. 이러한 두가지 요소가 없다면 자본주의는 성립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근대 자본주의를 이루는 원동력이 된 합리적 정신의 뿌리인 프로테스탄트의 직업 윤리를 찾아가는 추론 과정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분류하지 않는다.그러나 중세,근대,현대 자본주의에 차이점은 존재하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본주의 속 발전과정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 것일까? 패러다임 속의 작은 발전은 아마도 큰 룰이 정해주는 범위 아래서 이루어질 것이다. 우선 자본주의에 대한 개념적 정의를 내려본다. 물론 비약과 오류가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것은 현대에는 '돈,금융'이다. 그렇다면 돈,금융은 무엇인가? 회계장부상 처리되는 위치는 자본(Capital)로 분류된다.말 그대로 자본이 자본주의에 가장 필요한 가치이며 룰이다. 16세기 중세시대에 시작한 자본주의의 성장은 대부분 장인과 상인 계층에서 이루어 졌다. 물론 농업인에 대한 시각에서도 일정한 발달이 이뤄져왔음은 인정해야 되지만 말이다. 중세 자본주의에서 성공한 장인과 상인,그리고 농업인은 이윤추구적이고 대량생산적 체제로 발전 하면서 비용절감으로 인한 자본획득이 가장 큰 성공요인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엄청나게 벌여놓은 돈은 자신의 믿음,혹은 사회적 도덕적 가치로 기인한 점보다 경제적,상업적 비용절감으로 인해 생겼다는 점이다. -일부는 도덕적 가치로 성공했을 수도 있지만 환경에서 분석해본다면- 그래서, 그들의 돈은 복권에 당첨되거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느껴졌을 것이고 , 과시적이고 유흥적인 소비가 이어졌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생활에 잘못된 점을 느낀자들은 자신의 종교적인 성찰의 필요성이 생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과정이 진행 되고 있는 동시에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이라는 종교가 분화한다. 분명 중세 자본주의 시대에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과 다양한 가치평가기준을 가진사람이 존재 했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받아들인 자들은 자연 조건이나 교통 여건이 좋아서 경제적으로 발전한 여러 지역들, 그중에서도 특히 부유한 대다수의 도시들은 16세기때부터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했다. '왜?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된 지역이 종교 개혁을 받아들였던 것은 어떤 이유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수반해야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이유는 그들이 기존에 믿었던 종교에서는 이러한 부의 축적은 신성모독 혹은 악행의 반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악행과 신을 욕한 사람들은 사후세계에 있어서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그러나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금욕적인 삶과 청렴한 행동의 결과가 부와 직업이라는 결과물이 뒤따른다는 것이었다. 물론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도 부 자체를 욕망으로 생각하고 모은다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욕망은 새로운 욕망으로 발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 개혁으로 개종한 자들은 오히려 더 압박적인 구속을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적 전통주의에서 벗어난 자들은 부와 직업적 소명을 가지기 위해서는 좀 더 금욕적이고 성실한 행동을 요구했을 것이다. 기존의 교회에서는 편안함을 얻었다면 프로테스탄트 윤리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의 결과물은 구속의 강화였을 것이다.

 또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차이점은 개인의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믿음 속에서는 한쪽은 노동이라는 가치를 소명이란 단어보다 위에 뒀고, 다른 한쪽은 소명이란 가치를 노동이란 단어보다 위에 두었다. 그래서 가톨릭 교도들은 수공업에 머물러 수공업 장인이 되었고, 그에 반해 프로테스탄트인 수공업 도제들은 공장에 들어가 숙련 노동자가 되거나 공장을 관리하게 되었을 것이다. 
 
 현대 작가 중 한사람인 오펜바하는 두 신앙의 차이를 설명하는 말을 했다.
"가톨릭은 영리 충동이 적기 때문에 평온하다. 위험하고 자극적인 생활을 통해 명예와 부를 추구하기보다는 수입이 적더라도 안정된 삶을 추구한다. 익살맞은 속담의 하나로 '잘 먹을 것인가 아니면 발 뻗고 잘 것인가."라는 표현이 있다. 두 신앙의 차이를 비유하자면 프로테스탄트는 잘 먹으려고 노력하는 쪽이고, 가톨릭은 발 뻗고 자려는 쪽이라 할 수 있다. "

 실제로 잘 먹는다는 표현은 교회에 무관심한 오늘날 독일의 프로테스탄트를 부분적으로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근대자본주의는 미국으로 들어와 자본주의 정신과 함께 발전했다. 미국의 자본주의 정신의 근원인 프랭클린 정신을 본다면 이러한 점이 맞을 것이다.

 "시간은 돈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매일 일을 해서 10실링을 벌 수 있는는 사람이 반나절을 빈둥거리거나 산책을 했다고 하면, 비록 그 사람이 오락을 위해서 6펜스만 썻다 하더라도 그 돈만 쓴 것이 안아니다. 실제로 그 사람은 6펜스 외에 5실링을 덜 쓴 것이 되며, 더 적절하게 말한다면 5실링을 내다 버린 셈이다.
 
 신용을 곧 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나에게 자신의 돈을 빌려주고 샆을 기간이 지났음에도 찾아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이자를 준 것이거나 혹은 그 기간 동안 그 돈으로 잘 이용한다면 많은 액수의 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돈은 번식력을 가지며 결실을 맺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돈이 돈을 낳고 그 새끼는 도 새끼를 친다. 5실링을 잘 이용하면 6실링이 되고 다시 이를 잘 이용하면 7실링 3펜스로 늘어나서 나중에는 100파운드에 이르게 된다. 한 마리의 암퇘지를 죽이는 사람은 이 돼지가 뒤에 낳을 천 마리의 돼지를 같이 죽이는 셈이다. 1실링의 화폐를 없애는 사람이 돈이 벌어들였을 것,수천 파운드를 없애드는 셈이 된다.

 돈을 잘 갚는 사람은 모든 돈주머니의 주인이라는 속담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약속한 날짜에 정확하게 지불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은 친구들의 여윳돈을 언제 어떤 경우에나 빌릴 수 있다. 때로 이는 매우 유용하다. 근면,검소와 더불어 모든 거래에세 정직과 시간을 지키는 것만큼 청년의 출세에 필요한 것은 없다. 따라서 당신이 빌린 돈은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시간이라도 늦추지 말고 갚아라. 그러지 않을 경우 당신 친구의 지갑은 당신에게 영원히 닫혀 버리는 수가 있다.

 신용에 영향을 주는 문제라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조심해야 한다. 당신의 채권자가 새벽 다섯시나 저녁 여덟 시에 당신의 망치소리를 듣는다면 그 사람은 기꺼이 당신에게 지불 기간을 6개월 더 연장해 줄 것이다. 그러나 일해야 할 시간에 당구장에 있는 당신을 보게 되거나 술집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당신의 채권자는 다음날 당장 모든 빚을 갚으라고 독촉할 것이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내는 망치 소리는 당신의 자신의 채무를 잊지 않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며, 이는 당신을 성실하고 주의 깊은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따라서 당신의 신용도를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지니고 있는 재산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 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점은 바로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착각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당신의 수입과 지출을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 항상 주의를 기울인다면 당신은 작은 지출이 모여서 얼마나 많은 돈이 되며 무엇이 절약되었고 또 앞으로 무엇을 절약할 수 있을지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영리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면, 당신은 1년에 6파운드를 가지고 100파운드의 가치로 쓸 수 있다. 날마다 10펜스를 낭비하는 사람은 1년에 6파운드를 낭비하는 것이며 이는 100파운드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는 것이다. 게으름을 피우며 5실링에 해당하는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은 5실링을 바다에 던져 넣은 것과 같다. 5실링을 잃는 사람은 단지 5실링만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이익 즉, 젊은이가 노인이 될 때까지 계산한다면 엄청난 금액까지 잃는 것이다."

 벤저민프랭클린
물론 프랭클린이 말하는 설교에 자본주의 정신이 모두 들어 있다고 할 수 는 없다. 다만<<미국 문화의 모습>>을 쓴 페르디난트 퀴른베르거가 말하는 것처럼"소에게서는 지방을 짜내고, 사람에게서는 돈을 짜낸다."라는 말로 프랭클랜의 처세 철학을 요약된다. 프랭클린의 처세 철학을 좀 더 살펴보면, 신용이 있는 신사는 무엇보다 자본을 늘려야 할 의무를 자신의 삶의 목적으로 전제해야 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미래
금욕이란 단어를 통해 실천한 삶은 역설적으로 부에 대한 유혹을 증식 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부는 합
리적이고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부합하고 소명과 천직이 일치된 삶이이다.

 일찍이 백스터는 "외적인 재화에 대한 염려는 마치'언제든지 벗어 던질 수 있는 얇은 망토처럼' 신도의 어깨 위에 놓여 있어야만 한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운명은 이 망토를 강철 같은 우리로 만들었다. 이것은 현실에서 메트릭스로 작용한다. 금욕주의가 세상을 새롭게 형성하고 세속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자 이 세상의 외적인 재화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도 볼 수 없었을 정도로 인간에 대한 지배력을 키워 나갔고 급기야 인간은 결코 이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 종교적인 금욕주의 정신은 이 우리에서 사라져 버렸다.영원히 사라진 것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제 승리를 거둔 자본주의는 기계라는 기초 위에 서 있으므로 더 이상 정신의 지지를 필요를 하지 않는다. 이 정신의 유쾌한 후계자인 계몽주의의 장밋빛 분위기도 완전히 빛이 바랜 듯하고, '직업 의무'사상은 지나간 종교 신앙의 유령이 되어 우리 삶의 주변을 떠돌고 있다.예를 들자면 당신이 출근부에 기록을 하는 시점 부터 종교 신앙의 유령에 환상에 휩싸여 버리는 것과 같다.
현대의 종교나 교회로 귀결되는 단체는 위의 종교 신앙의 유령에 홀린 사이비 단체인 경우가 많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영혼이 없는 전문가, 가슴이 없는 향락주의자, 이 공허한 인간들은 일찍이 인류가 도달하지 못했던 단계에 도달했다고 자부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글귀가 나에게도 성찰과 겸손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점은 나 또한 반추하고 Feedback 해야 될 점이다. 다만 미래를 어리석게 나마 짐작한다면 미래에는 계속에서 우리는 황금 구속복이라고 생각하는 종교를 가지고 유령에 홀린 채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선각자가 나타나 콘크리트 처럼 굳어버린 메트릭스를 인식시키고 다함께 번영에 길로 나아갈지로 나눠 질 것이다. 아니면 몇몇 소수만이 메트릭스를 인지하고 종교에 유령에 홀린 사람들은 그 소수만을 위해 근면 성실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단지 '열심히','착하게' 일 할지도 모른다.

 ps : 다이나믹 시스템적인 차원에서 세상을 보기 위해선 이 세상을 구성한 룰을 이해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그의 삶과 나의 삶이 비교되고 내 삶의 기준을 이 전에 살았던 사람보단 더 긍정적으로 살아야 할 욕구도 느꼈다. 나는 교회를 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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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탠스
내 서재속에는2018. 3. 11.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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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파버

1997년의 과도한 신용을 지닌 아시아의 외환 위기에 대한 경고했다. 2000년 에 미국에서 벌어졌던 나스닥 기술주 붕괴에 대한 전망을 내놓으며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아웃 포커싱적인 글귀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가 되고자하는 미래에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가치이다. 그는 항상 말한다. 내가 하는 것은 예언이 아니다. 다만 현재에 상황을 분석하고 과거 역사에 비슷한 구조적 순환과정을 살펴본 후, 내일의 기회를 생각해본 것 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다 라고 수차례 강조한다.
그리고 책을 읽기전부터,어떤 친구에게도 이러한 성실한 투자 전략가가 당신의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물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상대방의 소임이므로 그 친구가 그것을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다. 그 만큼 나는 이 사람이 좋다. 이러한 대전제적인 철학관도 비슷하고 내가 책을 읽으면서 믿음이 변형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내일의 금맥은 안타깝게 팍스 아메리카나가 아니라 팍스 차이나 혹은 팍스 시니카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아시아의 가치를 평가한다. 아니 아시아라는 지정학적인 가치를 재평가 해본다. 

혹자는 이러한 투자전략가 에 대해 평가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측은 수많은 자신의 긍정적 전망과 비관적 전망 속에서 시간이 흐른후 올바른 평가만 꼬집어서 잘된 예를 묶어서 책으로 써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한 실패자들의 비판은 무색하다. 왜냐하면 그는 아시아가 도시화 되기 이전 1973년부터 홍콩에 상주하며 투자 활동을 해왔다. 분명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과 다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신이 알고 분석한 내용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이 혹자의 반론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내일의 금맥?
제목에 의해 책을 고른자는 이러한 글귀를 원했을 것이다. 당신이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선 -아시아 주식,실물 자산에 투자하시면 얼마의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렇게 직접적인 말을 써놓은 곳은 책 어느 부분에도 없다. 아마도 마크 파버가 이 제목을 지은 이유는 이러한 탐욕적인 투기자들을에게 책을 팔기 위해서라기 보단 자신이 의도한 바를 함축 해놓을 가능성이 크다.
나의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그는 '내일이 소유하고 있는 것은 금' 이렇게 직역되는 제목을 왜 지었을 까? 생각해보길 원한 것 같다. 단순히 내일의 금맥을 집어주는 내용을 원하는 독자보다 왜? 내일이 금을 소유하고 있을 까라는 반문하는 독자를 위해 이름을 붙여준 것 같다. 그리고 7장과 8장에 이러한 나의 생각을 뒷받침 해주는 내용이 나온다.
7장은 경제의 장기파동 과 8장 새로운 시대,열광,거품 그리고 11장 번영 중심의 성장과 몰락에서 미국이 2000년 이후에 엄청난 유동성을 공급한 연유로 인해 기축통화의 지위가 흔들릴 것이다. 그것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재도약이 아닌 팍스 아메리카나의 쇠망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 이후 통용되고 있는 화폐를 대신 하는 것은 다른 화폐가 아닌 성실한 화폐,즉 노동력이 생산하는 금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달러로 표시되는 금 값이 오른다는 전망이 아닌 가치적,필요적 수요가 금으로 수렴되고 그로 인해 달러 표시든 어떠한 도량형으로 측량하더라도 Gold의 가치는 올라간다고 말한다. 물론 그는 객관적 분석과 역사적 사례에 의거한 도표와 그래프를 상세히 곁들여 자신의 전망을 입체화한다.
또한 그가 책의 어느 곳에서 펴봐도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과거를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은 똑같은 오류를 되풀이하고, 과거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오류에 빠지는 다른 길을 찾아낸다라는 찰스 울프의 말이다. 즉, 내가 역사를 통해 찾아낸 분석과 전망도 다른 방법의 오류를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고 나는 그러한 사실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있게 강조하는 점은 중국은 세계의 한 축으로 성장할 경제적,사회적,지정학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과거의 미국 번영기를 예로 든다. 미국은 과거 미주대륙 발견 이후 무역로가 개척되면서 이전 유럽 지역의 생산 지역이 미주 대륙으로 옮겨 온다. 그러나 현재 처럼 어떠한 글로벌 기업이 아시아 지역으로 아웃소싱해오는 방법을 쓰진 않았지만 분명 경제적인 효율을 높이기 위해 유럽에서 생산하는 물품을 대신 생산해오는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2번의 전쟁이후에 미국은 군수물품과 복구산업에 참여하게 되어 미국은 세계의 공장이었던 적이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위는 최대의 소비국가로 변화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흥했던 과정대로 다른 자가 흥하는 것이 이치이기 때문 이다.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말이다. 냉전 시대가 중국의 공산주의와 시장경제를 혼합하는 과정에서 종식되었다. 그리고 30억 인구가 세계 무대에 등장하면서 아시아의 소외 현상은 균형을 찾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나는 이 점에 완전히 동의 할 수 없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미국의 군사적 패권은 미국을 제외한 국가가 힘을 합쳐도 힘든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있게 과거 로마와 패권 국가는 어쩌면 쇠망해가는 과정을 반증하는 증거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경제적,문화적인 통제로 충분히 자신의 이권을 챙길수 있었지만 이젠 군사적인 패권을 휘두르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란 말과 일맥상통한다.
-책에 일부 중에 재밋는 부분이 있어서 발췌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람의 형태에는 별로 변화가 없다. 플라톤이 살던 시대의 그리스인들이나 근대 프랑스인들이나 행동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산업화 시대의 영국 사람들도 고대 로마인들과 비슷하다. 수단과 방법은 바뀌었지만 동기와 목적은 그대로다. 일할까 쉴까,뺴앗을까 나눌까, 싸울까 퇴각할까,남들과 같이 할까 혼자 할까, 친구로 삼을까 모른체할까,보살펴줄까 내칠까를 고민하는 것은 똑같다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한 사람들도 본성은 같다. 대체로 보아 가난한 사람도 부자와 같은 욕망을 갖고 산다. 단지 그들은 그런 욕망을 실현할 기회가 적거나 능력이 부족할 뿐이다. 성공한 혁명가가 그토록 자신이 비난했던 사람들을 곧바로 닮아간 사례는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역사학자 윌 듀랜트는 자신의 저서<<역사의 교훈>>(1968발간)에서 이러한 생각을 밝혔다. 사람은 어떠한 체험을 하든 이것은 규정짖고 단정짖고 행동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를 한다는 자체가 과거에 사람들이 해왔던 것일 수 도있다. 그러나 이러한 글귀는 우리에게 무가치하고 무능력하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자체에도 가치가 없을 수도 가치가 있을 수 도 있다. 이러한 물음의 생활과 실질적 행동을 원하는 것이다. 전망도 분석도 아무리 화려하고 실현가능하고 실현되더라도 실천,행동이 없다면 무가치하다는 말이다.

-ps : 책정리 욕심을 가지게 한 책이다. 그가 말하는 건 몇 개 되지 않지만 발상의 과정이 너무나 멋지다. 아 난 왜 딱딱한 글이 멋지고 마음에 들지...문학 청년은 언제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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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탠스
내 서재속에는2018. 3. 11.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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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서 꽃이라고 불리는 마케팅에 접근도를 높혀주는 책이었다. 항상 읽으면서 이건 한사람이 적어내기엔 관점이 다양하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다 읽고 깨닫은 거지만 공저자가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도 내가 저자에 대해 글이나 머릿말을 잘 안읽어서 발생한 일이었다. 

-현대 사회의 인간을 한 단어로 부른다면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소비자라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자본주의라는 세계에서 숨쉬는 우리는 끓임없이 재화를 소비하는 소비자이다. 아무리 고결한 수도승이라도 그는 생존적 필요에 의해 의식주에 필요한 의류,음식을 사게된다. 물론 수도승의 욕구나 니즈는 분명히 일반인들과 다를 것이지만 말이다.
투자에선 BLASH전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것은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 누구나 이러한 전략을 취하고 싶어한다. 이 전략은 Buy Low And Sell High라는 격언을 줄인 전략이다. 문자 그대로 싸게 사서 비싸게 팔라이다. 그러나 이 전략을 보고 먼저 드는 생각은 'How?'혹은 '어떻게?'라는 것이다. 아무리 절대적이고 효과적인 전략이라도 방법,설명이 없다면 뇌라는 저장 장소를 필요없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분명 마케팅의 절대 명제. '니즈를 찾아서 만족 시켜주어라.'에 대한 방법론적 분석을 한다.
이책의 첫장은 니즈라는 이놈은 도대체 무엇인지. 어떻게 니즈라고 불리는지 설명한다. 니즈라는 것은 사람이 살기 때문에 생기는 모든 욕구가 니즈에 속한다. 왜냐하면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의 피라미드 도형으로 설명한 메슬로가 언급한 욕구가 마케팅에서 니즈라고 불리는 것이다. 생리적,안전,사회적,위신,자아실현의 욕구가 수직,수평적으로 세분화되면 니즈가 되는 것이다. 성취에 대한 욕구를 수평적으로 분류하여 작업을 실행 하는 니즈와 재능을 연마하려는 니즈가 있고 그것을 만족시켜주는 자기 향상 프로그램,작업을 설명하는 법 같은 실용서적과 강좌 따위가 이러한 니즈를 가진 사람들을 만족시켜주고, 그 사람은 니즈가 충족되어 욕구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니즈는 잠재적 의식에 내포되어있다. 프로이드가 말했듯 우리가 깨어있을 때(의식이 있는)의 행동은 잠재적 의식과 무의식의 욕망을 치환해서 표현 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하더라도 그의 잠재,무의식에서 꿈틀대는 욕구와 니즈를 모두 알 수 없다. 그래서 가끔씩 자기 성찰이나 자기 반성을 통해 깨닫기도한다. 그러나 마케팅에서는 이러한 것을 기다려줄 수 없다. 잠재적 의식,무의식에서 부르짖는 단어를 빠르게 소비자에게 일깨워 그것을 충족시켜주어야 되기 때문이다. 또한, 동기부여에서는 긍정적인 욕구만 강화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씩 사회의 편견이 되어버렸거나 악영향이 강조된 문화를 제품 구매를 돕기위해 좋게 포장하거나 약화시키는 것도 마케팅의 일종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는 공익광고도 고용주의 장애인에 대한 고용 수요를 늘리고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 산업의 생산 효율을 올리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A씨는 스포츠카를 몰고다니는대 B씨는 세단을 몬다.C씨는 홈드레스를 입지만,D씨는 섹시한 옷을 즐겨 입는다. E씨는 질레트 면도기를 쓰지만,F씨는 전기면도기를 사용한다. 이렇듯 소비는 왜하는 것일까? 아마도 소비를 하면서 스스로가 존재한다고 증명하려는 것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최첨단의 전자제품을 사면서, 스스로가 변화에 빨리 맛본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시계나 옷 따위를 사면서 스스로를 관리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독서를 하고 강연에 참여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칼럼을 쓰면서 스스로가 지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때도 스스로가 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쓰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의 성격에 맞는 마케팅이 있어야 제품을 팔 수 있는 것이다.
-사회계층의 욕구에 대한 설명이 인상깊었다. 상류층과 하류층의 극단적 분류를 통해 언어와 상징,무형과 유형선호등 추상성 정도를 설명하고,적대감과 분개,감정과 애착 등 현실적인 내용을 다룬다. 고객이 어떤 계층사다리에 있고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참신했다.사회적 계층을 구분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7가지 요소는 타당했다.
-구글과 같은 혁신을 만드는 기업은 이 책을 읽어야 한다.혁신은 스스로가 혁신을 하더라도 소비자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처절한 자본주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물론 마케팅을 전쟁으로 치환해서 보는 것은 약간의 비약이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빚으로 만들어진 Money인 것이다. 소비자는 Money를 제품으로 바꿔주는 마케팅이라는 주사를 맞아야하는 숙명적 과정을 볼 수 있어야한다. 물론 책에선 이러한 설명이 없었지만 마케팅을 연구한 저자도 이러한 숙명적 과정에서 주사 시약을 만드는 의사의 역할로 이러한 책을 만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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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탠스
내 서재속에는2018. 3. 1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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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는 자본주위 위에서 피어오르는 끈질긴 다년생화다. 

나는 찰스 P 킨들버그를 이러한 문장으로 그를 기억한다. 이 말을 위한 내용이 책의 전부를 차지한다 이 책은 버블 생성과 버블 성장, 버블 붕괴의 메커니즘 귀납적으로 제시한다. 그의 책은 다분히 예시 중심적이고 역사의 뒷받침에 의지한다. 그래서 이 책은 통찰적 시각을 가지기 쉬울뿐 아니라, 케이스는 실증적이기 까지하다. 그의 책은 분명 최고점을 받을 가치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나와의 만남은 그리 좋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조지 소로스의 투자철학을 알고 있는 자들에겐 단순한 케이스 모음집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과연 버블이란 무엇일까?
버블의 공리적 정의를 내려보자. 이러한 정의를 내리지 않으면 버블은 자본주의에서만 일어나는 사회현상이 될 수도 있고, 우주 전체를 통틀어서 나타나는 자연현상이 될 수도 있다.
버블,거품의 정의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협의적으로 정의내리겠다. 인간은 끓임없이 소유하거 권리를 가지고 있는 대상을 만든다. 버블은 인간이 소유한 대상의 내재가치보다 통상적으로 평가되는 가치가 커지는 것이 버블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를 광의적으로 넓혀보자. 버블은 가치차이이다. 즉, 인간에게 필요한 산소가 혐기성 미생물에겐 독이되는 것처럼, 각각에 필요한 요소가 다르고 그에 따라 나타나는 필요성의 차이가 버블이다. 


 그렇다면, 우리 생황에 영향을 미치는 버블은 광의적인 것이다. 다만, 우리는 자연현상을 바꿀수 있는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자본주의 위에서 피어나는 끈질긴 다년생화에 대한 연구를 해야된다. 저자는 이러한 연유로 끓임없는 케이스 연구를 하는 것이다.
그는 궁극적 대여자와 하위 기관,그리고 개개인으로 뻣어가는 유동성의 순환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동성의 순환과정에서 나타나는 투기적 수요 자체가 버블을 촉발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투기적 수요는 제도적,교육적으로 억제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리고 궁극적 대여자의 역할은 단순히 유량하지만 유동성에 곤란을 겪고 있는 기관을 살려주는 것이 올바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페러다임의 필요성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생각하는 것은 자본주의 위라는 전제다. 물론 나는 그의 지성이나 노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새로운 페러다임과 메커니즘이 제시되는 지금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일 뿐이다.
새로운 메커니즘과 패러다임의 제시의 필요성은 있다. 나는 새로운 페러다임이 온다. 그들이 온다. 이것을 외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최적 효용을 자랑한다. 충분한 능력이 있는 자는 원하는 것을 최적의 시간과 최적의 효용으로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서있는 곳의 룰이며 공리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최고 효용을 발휘 할 수 없는 메커니즘이다. 즉, 인간에게 능력이 없다면, 최적의 효용이든 최적의 시간이라는 것 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공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능력을 빼앗기도 한다. 과정은 단순하다. 충분한 능력을 가진자는 버블을 만들어 내길 원할 것이고, 이것은 후발로 들어오는 시장참여자의 능력을 상실하게한다.-시장의 붕괴위험으로 인한 금융위기로인해. 그래서 이 금융 다년생화가 씨가 퍼지고 생기고 죽고 하는 동안 능력이 있는 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공격해 버린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과연 최적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단순히 말해 자본주의 세상위에 있기 떄문에 이러한 버블과 붕괴의 순환이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과정이 인간의 창조적 파괴과정이라고 말한다. 물론 일리가 있다. 버블의 성장과 붕괴의 과정속에서 우리는 디지털,나노기술,생명공학의 높은 기술을 구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금융 자본주의 주장자는 자본주의가 없이도 이러한 기술을 발전해내지 못했을 까라는 물음을 해보지 않은듯하다. 

 또한 창조적 파괴과정은 파괴의 범위가 너무나 광대하다. 그것을 붕괴전의 상태로 돌려 놓을 순 없다. 왜냐하면 오늘이 지난 내일은 오늘과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비슷하게나마 버블 전으로 돌아가는데도 시간은 피해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우리나라 GDP -4%성장이 나타내는 것은 15년전 경제규모로 돌아간다는 말과 같다. 우리는 인간 그대로의 인간이다. 즉, 충분히 지금의 자원(인적,물적) 을 통해서 최고의 조합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돈이라는 진통제에 취해 이러한 명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ps: 책의 번역탓인지 책이 많이 난해합니다. 논리적으론 이해가 가는데 약간 힘듬.눈운동에 좋은 책이지만 곱씹어 보면 좋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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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탠스
내 서재속에는2018. 3. 1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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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L.번스타인

내가 존경하며 마음속에 살아있는 다리와 같은 사람.
언제 적이었다. 우연히 그의 저서를 읽었다.아마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투자 아이디어였다. 그는 머릿말에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적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평가할 때도 성공한 투자자도 뛰어난 학자도 아니라고 시인했다.그러나, 그는 전문가와 지혜를 갈망하는 자를 잇는 다리와 같은 사람이 될 것을 밝혔다. 그는 의지가 있었고 이미 그러한 소양을 지녔다. 분명, 통찰력 있지만 대중에게 알리기 힘든 지혜를 그리고 알려는 의지는 있지만 너무 어려운 환경이 그에게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메트릭스를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단순한 금융,투자를 말하기 앞서서, 자신의 저서를 읽는 자에게 시간,공간을 초월해 존재적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 의해 한번더 나의 존재적 가치를 끌어 올리게 되었음을 밝힌다.
이렇듯 책은 어느새 나의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과거에 만나지 못하거나 미래에 만날 사람을 미리 만나게 해주는 신비한 능력을 볼 수 있다. 분명, 지금도 중요하지만 지금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이러한 가르침을 해 줄 사람은 과거에 지나간 사람과 미래에 다가올 사람을 비교하면 지극히 작을 뿐아니라 위험한 사람도 내제되어 있다. 위험한 사람... 분명 나의 인생에 있어서 현재의 만족에 머무려하고 단순히 후두엽의 호르몬에 분비에 의해 행동을 제약 받는 사람 들일 것이다. 분명, 사람은 더러움을 향해 내달리는 존재지만 아직은 아니고 더럽혀진 사람을 만나는 건 미래에 마주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더러워 질 때로 더러워져서 밑바닥에서 처절하게 배우고 과거에 아림을 잊지 않을 것을 다짐한 사람이기에 이러한 책이 좋고, 나의 생각의 괘적을 조그마하게 나마 남기고 싶을 뿐이다.
-리스크에 관한,리스크를 논하기 앞서서 25화의 영상물을 보았다. 25개의 영상을 보는데 시간이라는 요소를 잊을 정도의 집중과 내면화 과정은 꽤 뜻 깊었던것같다. 이것의 주제는 신의 인형이라는 인간,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해 결국 신의 형상까지 만들어내고 스스로를 보호하는데 신의 형상을 이용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고뇌나 자존감의 성찰은 수준높은 컬렉션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수학으로 표시되는 확률이라는 개념은 신이 남겨놓은 인간을 위한 부스러기가 될 수도 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주사위를 던져 인간의 향방을 정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이 말을 풀이한다면, 신은 미래를 보기 때문에 주사위의 패가 나올 것도 정해져 있을 뿐아니라 그 결과로 인간의 향방을 결정한다는 것은 결국 신의 의지로 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책에 첫머리에선 존로크의 말을 인용한다.
"신은 우리의 관심사 대부분에 단지 미광만을 부여하셧다. 내가 여기에 부연한다면 신은 우리에게 확률이라는 미광만을 부여하셨다."
이 말에 대한 것은 RISK 에 대한 의미를 한번 더 생각할 수 있었다.
스스로 감탄하면서
"사람이란 스스로의 미래를 확실히 알 수 없다고 투덜대지만, 어느 무엇도 스스로 모든 것을 안다고 규정할 수 없는 존재야""왜냐하면, 내가 1+1=2을 안다고 해서, 물은 100도에서 끓는 것을 안다고 해서 이렇게 단순한 명제를 참으로 기각할 수 있는 강제적 힘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을 안다고 자신할 수 없다.다만,우리는 다수의 타인과의 약속에 의해 공리 당연하다고 약속한 것 뿐이지."
그렇다. 우리는 어떠한 것이라도 스스로가 완전히 안다고 말 할 수 없다. 아마도, 사람은 사람의 형상을 본뜬 인형을 만드는 것 처럼 신 또한 신의 형상을 본뜬 사람을 만든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신의 형상을 한 신의 인형은 신의 능력도 약간만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사위를 던질 때도 복권을 할 때도 심지어 생명을 살 릴 때도 확률을 생각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일한 신의 부스러기를 사용하는 것이고 어쩌면 신은 이러한 사람의 행동을 예측 할 수도 있다.
- 신의 부스러기, 리스크에 대한 연구는 언제 부터 이루어 졌을까? 아마 사람이 생기면서 도박이란 개념도 생기지 않았을 까? 도박이라는 것 자체가 확률을 이용한 놀이이다. 이렇듯 리스크의 대한 관념은 아마도 신이 인형을 만든 그 시점부터 일 것이다. 그러나 리스크를 이용한 자는 역사속에 큰 획을 만들지만 리스크를 감수하거나 두려워 한 사람들은 역사라는 무덤 속에 사라졌다. 인간 대다수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 갖는 오만한 자부심과 자신의 운에 대한 터무니 없는 신뢰 때문에 리스크를 감수 하는 본능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리스크에 대한 초기의 역사는 소크라테스,아리스토텔레스 부터 시작한다 그 중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실 처럼 그럴 듯한 것은 결코 그들이 진실을 말한다고 할 수 없다.'라는 언명이 와닿았다.그리고 약 1000년 동안 역사에 보이는 확률,리스크에 대한 논쟁은 사그러 들었다. 마치 신들의 놀이가 유행을 잃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0이라는 개념을 발견한다. 이것은 수학에 연관된 학문에 있어서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0에 대한 것을 발명이라하지 않고 발견이라고 하는 것은 0이라는 개념은 없다라는 개념이지만 분명 우리가 표현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분명 과거의 사람들은 없는 것을 표현한다는 것의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고통스러워 했을 것이다. 0의 대한 발견에 이어지는 신의 비율,황금 비율의 표현이었다. 그것은 피보나치에 의해 고안되었다. 첫째 숫자1 와 둘째 숫자1 의 합이 다음 숫자2고 이렇게 이어지는 수열은 첫째 숫자와 둘째 숫자의 비는 점점 0.618..:1로 수렴해가고 그것은 우연의 일치인지 우리의 몸과 세상을 구성하는 비가 일치한다는 것이다.
RISK는 측정 가능한 불확실성을 생각하는 서술 문제가 많이 나온다.
다음의 문제는 불확실성에 대한 측정을 생각하는 문제다.
A와 B는 발라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 사람이 여섯판을 이길 때까지 계속하기로 했다. 그런데 게임은 A가 다섯 판,B가 세판을 이기고 끝이 났다.내기에 건 판돈은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가?
분명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다.B가 남은 3판을 이겨서 결국 우승을 할 수 있다. 이러한 판돈 문제에 대한 사고는 16,17세기에 꾸준히 다뤄졌다고 한다. 분명 리스크에 대한 계량화 노력은 꾸준히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계산 불가능한 불확실성,한정적으로 계산 가능한 불확실성,그리고 불확실과 상반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비교적 확실한 것 현대의 일부의 학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확률을 서술한 분류이다.
18세기 학자 베르누이의 말을 빌리자면 1001번중 1000번이 확률을 따라야 그것은 믿을 만하다고 믿을 수 있다는 그의 페러다임..그의 페러다임은 충분히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1001번중 1000번이 제시한 확률이 일치할 경우 그 명제나 전제는 공리적으로 충분히 믿을 수 있는 근거를 확보 했으니깐 말이다.
이러한 1001번 중 1000번이 나온 것이 유효하다고 단정 짓기에는 기하급수적인 검증을 해야된다.(50번중 1번이 확률적으로 나타나더라도 이것을 검증하기 위해선 다시 2만 5550번이라는 부분의 예를 검증해서 이것이 정규분포의 곡선을 이루는지 확인해야 된다)...그래서 20세기 이후 통계학,수학에선 20번중 1번이라도 이러한 확률을 따른 다면 '유효'하다고 정의 내린다.
그리고 어떠한 확실한 예측이나 결과예상치가 있더라도 그것은 언제나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측정 불가능한 상황을 단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금융과 관계된 리스크 개념이 많이 등장한다. 과연 행실이 불안한 20대가 죽을 확률이 높을지 아니면 건강한 생활을 하는 80대가 죽을 확률이 높은지도 이러한 리스크를 통한 분석이 있기에 보험료를 책정하고 그에대한 적정한 보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 경제학에 있어서는 확률적,RISK 계산을 뽑아온 기술적 용어,이론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확실성과 반대되는 개념의 불확실성은 축복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확실성이라는 단어는 사람보다는 신에 단어로 어울린다. 어쩌면 우리는 본능적인 습성에 의해서 모든 것을 규정짓고 어떻게든 확신 해보려는 결정을 내리지만 이러한 행위는 미래에 정해진 결과를 바꿀 수 없는 무기력한 행위 일 수 도 있다. 현실주의자였던 하이얌도 1000년전에 똑같은 생각을 했다.
"움직이는 손가락이 쓰고 있으니,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쓰고 있으니, 기도해보아도 반 줄인들 지울 수 있을까. 움직이는 이 속가락을 되돌려 단 한 글자를 씻어낼 수 없으리라. 네 눈의 모든 눈물도...."
당신이 내린 결정으로 전혀 예상 못했던 결과가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예상 확률이 낮았던 결과가 생각보다 더 자주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과거의 패턴이 항상 미래를 밝혀주는 것은 아니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것이 현대까지 밝혀낸 리스크, 측정 가능한 불확실성에 대한 실체 이다.
그리고 가까운 과거에는 기대이론,혼돈 이론이 제기 되었다. 이러한 이론은 점점 세상을 그려가려는 인간의 노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이론을 이용한 리스크 계산 행위는 현재에도 많은 부분에 활용되고 있지 않고, 일반 대중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대의 공학자들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극복하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사람들은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지 않을 뿐아니라 시장을 상회하는 전략을 알지만 실제로는 스스로가 편한대로 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최근에 들어와 매매하는 파생상품에 대해서도 설명을 곁들인다. 파생상품은 면도칼이다. 그것을 가지고 면도를 할 수도 자살을 할 수 도 있다. 그것은 정량 분석가 리스크를 잘 다루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현물 투자의 극강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그 이후, 자만에 빠지거나 시스템을 무시한 행위,그리고 나를 망가 뜨리는 행위를 했던 것 같다. 이러한 후일담은 다른 곳에 적도록하고 글을 마무리 해야 할 것같다.
-이렇게 내가 어떠한 책에 대해 논하거나 상황적인 분석을 할지라도, 이러한 내용과 정보는 무지가 일부 포함될 뿐 아니라 수학처럼 양적인 내용을 모두 안다고 하더라도 부분의 총합이 전체와 같을 수 없다는 전제하에 내용을 받아들어야 RISK에 대한 바람직한 개념정리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어제 하루 동안 RISK 라는 내가 아는 개념을 고민한 결과.이것은 한글로 번역되는 위협,위험과 다른 개념이다. 다만 Risk가 위험이라는 대표적인 뜻이 있지만, 번스타인저서에 나오는 RISK는 다르다.그것은 미래를 일정부분 통찰 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계산할 수 있지만 계산한다고 해서 이런 개념을 명백히 보증해준다는 조건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에게는 사기,허영,교만이라고 오르내린다. 반면, 역사적으로 볼 때 있다고 호언할수도 없다고 단정하기도 힘든 RISK 개념은 많은 현명한 루스벨트와 같은 정치가,존 메이너드 케인즈 같은 학자,장군을 배출했다. 납치된 사람이 죽기 전 러시안 룰렛을 할때 권총을 보고 방아쇠를 당기는 이러한 위협적인 상황에서 총알 한발과 구멍이 9라는 것을 알아 그것의 확률을 계산하는 동안에 이러한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만을 말 할 수 있을 뿐이다.이런 개념을 모른 자에겐 측정 불가능한 위험이고 공포 그 자체지만 말이다.RISK를 통한 상황적인 이해를 해내는 사람에겐 지금이 위기와 파국을 부르짓은 국면이 아니라 기회이고 그의 눈앞에 펼쳐진 전장은 새로운 문명과 희망의 씨를 뿌릴 비옥한 곳으로 보이는 차이를 만드는 통찰적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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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탠스
내 서재속에는2018. 3. 1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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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턴 빅스

30년간 모건스텐리에서의 근무했다.모건 스텐리의 전임 회장을 지냈지만 그는 스스로의 성찰을 위해 트렉시스라는 메크로 투자 헤지펀드사를 만들었다.
-매크로 헤지펀드
헤지펀드의 지금 개념은 자산에 +가 되는 모든 투자에 참여하는 펀드이다. 일반인을 비롯한 대다수가 알고 있다. 그러나 헤지펀드를 철학을 가지고 운용하는 곳도 있고 지금의 변질된 개념을 가지고 운용하는 곳도 있다. 일정한 자산이라는 것은 정해진 규칙 혹은 철학, 개념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 다면 남의 돈을 가지고 탐욕에 호소하는 폰지 사기와 다른게 없다.
매크로 헤지펀드라는 것은 전세계적인 거시경제적 톱니바퀴 속에 움직이는 윤활유와 같은 존재이다.그들은 유동성을 공급해주고 어떠한 현상에 대한 파급효과에 투자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2009년 1월 23일 현재 글로벌 주식시장이 새로운 하락기조의 출발이 발생했다고 보자. 그렇다면 그들은 단순히 주식 매도 포지션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다. 유가증권 시장 폭락으로 인한 파급효과를 생각해본다면 무엇이 있을까? 상대적인 실물 자산,즉 디폴트 위험이 해지된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속에는 돈육,철광,금,귀금속,미술품들이 있다. 그들은 이러한 정책 혹은 현상에 대한 파급 효과에 따른 수혜를 노리고 투자하는 것이다. 그들의 자금력은 원본자산을 기준으로 하여 소규모로 100만달러 큰 경우 10억 달러를 호가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엄청난 자산운용 규모를 보이지만 그들의 투자금을 받는 곳은 거액의 변덕스러운 투자자들이 대부분이다. 약 1년~2년의 벤치마크를 하회하는 수익 혹은 -수익이 있다면 그들은 다른 헤지펀드로 갈아 타버리는 경우가 많다.
-어느 방면이든 성공한 사람들의 격언은 한결같다. 다만 형식과 어조가 다를 뿐이다. 그들은 "Back to the Basic" 근본에 대한 신뢰를 강조한다. 마치 낙오한 사람들이 "머리가 좋다는 말을 대신하는 군.."그런 비아냥 알지만 그들은 웃으며 말한다. 혹자는 그들에게 되물어본다. "당신은 기본에 충실했나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됫을 까요?"
금융시장에서는 이러한 파랑새 같은 룰이 여전히 적용된다. 지은이는 월스트리트의 묘사를 극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도 실화에 기초로한 사례로 생생히 전달한다. 어떤이는 기술주 거품에 투자를 하여 자신의 관속까지 그 주식을 들고 갔지만 휴지조각보다도 못했다는 이야기가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월스트리트라는 곳은 가장 치열하면서도 중요한 교전지라고 말한다. 제트스크림이라는 제트 비행기를 가지고 마치 레고 동산을 꾸미는 갑부가 한순간에 빈털털이,정신병자 혹은 자살에 이르는 현장을 말한다. 그러나 그 속에는 한가지의 통찰을 제시한다. 엄청난 금액과 수익에 안일해 기본을 져버리지 말라. 행간의 문장은 책을 읽지 않는 자에겐 보이지 않지만, 책을 읽고 사려해본다면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교훈이었다.
아래 내용은 책의 일정한 내용을 묶어서 분류 해놓것입니다.
-1. 사기꾼, 멍청이, 귀족, 그리고 거위
투자 회사들은 어떤 자산에 투자하기에 앞서 정기적이고 형식적인 투자회의를 한다. 그곳에서는 특별한 정보도 번뜩이는 것도 없다. 그래서 한단계 승화된 형태의 투자가 클럽은 좀더 자유분방하고 통찰력을 지닌 자들이 모인다. 그러나 그곳에서 바뀌는 것은 금액과 더 많은 수의 사기꾼이다. 사기꾼들은 스스로를 현명한 투자자라고하고 그들의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어떤 자가 "내일 크라이슬러의 실적 발표는 예상외로 선방할 것이며 회계상 주당 20%를 상회하는 이익증가율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믿고 투자한 현명한 투자자들은 그에게 속은 것이다. 그는 뒤에서 그 주식을 매도하고 공매도 포지션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헤어날 수 없는 손실의 나락으로 떨어져버린다. 위선과 명예가 함께 존재하지만 그들은 수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버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그리고 거위는 대부분 그들의 희생양이 되곤한다. 수익이라는 알을 낳는 스스로를 아는 투자자들은 현재 수익과 자산으로 평가 되어서 힘든 고생을 하거나 그러한 클럽에서 죽여버린다. 죽은 그에게 남는 것은 황금 덩어리의 커다란 알이 아니라, 더 큰 적이 되어서 돌아온다.
-2.미소,희망,현명함이 고통,절망,멍청함으로 바뀌어 버리는 신기한 곳.
황금의 손을 가진 헤지펀드 사람들은 그들의 한순간의 방심 혹은 커다란 기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자산을 잃곤 한다. 그러나 펀드라는 공통 금융 자본이라는 약점 때문에 그들의 돈과 가치로 정할 수 없는 여러가지를 함께 잃어버리곤 한다. 헤지 펀드를 골드만 삭스 출신의 아주 유능한 사람이 맡았다고 할 지라도 분명 그들도 실패할 수 있다. 실패로 인해 잠을 잘때도 이를 갈며 잠을 잘수도 있다. 살인 미소를 가진 사람도 헤지 펀드 세계에 들어오는 순간 미소가 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어떤 이는 아무 능력과 아무 철학 없이 엄청난 돈을 손에 거머쥘 수도 있는 곳이 헤지펀드의 세계다.
-3.Buy or Sell
당신에게 10만 달러가 주어졌다. 그리고 이 돈은 투자 용도로 1년간 묶여 있다. 당신은 석유에 투자를 해야된다. 그리고, 지금 중동 지역에는 전쟁으로 인해 혼란에 빠져있다. 당신은 석유를 살것인가? 아니면 팔 것인가? 기본적으로 석유를 산다는 것은 미래에 석유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면, 석유를 판다는 것은 미래에 석유의 가격이 떨어진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신은 깊이 있는 분석을 할 것이다. 논리적 결과는 전쟁으로 인해서 석유를 생산하는 공장이 파괴 될 것이고, 아니면 석유의 생산력이 떨어 질 것이다. 그렇다면 유가는 당연히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상승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역사적으로 전쟁이 발발했다는 사실에 기정 사실화 되었을 때는 유가는 아이러니하게 폭락한 경우가 많다. 이렇듯 깊이 있는 분석은 더 깊은 수렁으로 유도할 수 있다. 시장은 항상 당신의 행동에 가르침을 준다. 즉 이러한 행동에 있어서 시장은 역시나 시장이라는 것을 배운다.
-4.펀드 먹이사슬
펀드의 큰 지도를 보면, 마치 우주를 보는 것과 같다. 우주에서 지구를 찾는 것은 단계적인 세부 항목에 대한 접근이다. 우주에서 소우주,소우주에서 은하단,은하단에서 우리은하를 찾고,우리 은하에서 3번째 날개를 찾는다.3번째 날개에서 태양계를 찾고,거기서 태양중심으로 3번째 돌고 있는 행성이 지구이다. 펀드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운용하려는 펀드 조차 자립적으로 운용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펀드에 투자하는 펀드(Fund of Fund,이하 FOF)가 있기 때문이다. 펀드에 투자하는 펀드의 규모는 당연히 펀드보다 크고 상위적인 관계에 놓여있다. 그러나 펀드라는 것은 자산을 운용해주는 댓가로 받는 보수와 수수료가 있다. 그렇다면 FOF펀드는 펀드에 투자함에 따라 기본적인 비용은 1차 펀드에 투자하는 비용보다 많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그들의 말은 펀드에 대한 분산 투자로 인한 좀더 나은 수익률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FOF 펀드를 운용하는 자들이 좀더 현명해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다고 하자. 그러나 그들이 투자고객으로 부터 받는 보수는 엄청나기 때문에 수익률이 시장을 상회하더라도 투자에 있어서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닌 것이다.
-5.진정하세요. 이 불은 우리가 제어 할 수 있습니다.->불의 시련과 얼어 죽은 개구리의 교훈
파티에 간다.파티가 이뤄지고 있다. 다들 정신 없이 취하고 떠들고 춤춘다. 그리고 구석에서 연기가 피어 오른다. 연기가 불로 커진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말한다 이 불은 행사에 일부 입니다. 진정하세요. 우리가 소화기로 끌수 있는 충분한 불입니다. 그들을 믿고 즐긴다. 그러나 파티는 죽음의 파티였다. 대부분의 투자자(법전을 다외우고, 컴퓨터 같은 사람들을 포함해)들은 시장에서는 개구리가 되어버린다. 프랑스의 개구리 탕은 많이 인용되는 이야기다. 개구리를 끓는 물에 넣으면 그들은 비상구로 도망쳐 나와버린다. 그러나 개구리를 넣고 천천히 가열하면 그들은 따뜻함에 취해 마지막 목욕을 한다. 그러나 헤지 펀드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적 예화를 쉽게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이러한 죽음의 목욕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정신적,신체적으로 영향을 받기도한다. 그래서 이러한 불로 부터 멀리 떨어지려고 하고 그로 인해 싸늘한 곳에 있는다. 결국 그들은 얼어버려 죽는 경우도 있다.
-6. 헤지펀드 업계의 다양한 인간 군상.
지은이는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러한 인간 군상을 잘 관찰했다. 현명한 사람들이 말한다. 수익과 돈에 목숨 거는 돼지가 될 바야 배고픈 인간이 되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과 수익을 쫒는 숫자 중독자들한테 이러한 인용구를 빗대어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안타깝게도 겉으로 비판하지만 돈에 대한 히스테리를 가진 배고픈 가난뱅이 밖에 되지 않는다. 돼지가 되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지은이는 말한다.
신의 계시를 밝히는 예언자들도 있다. 그들은 투자 의사 결정을 할 때 별의 움직임,날씨, 구름 모양으로 한다. 전혀 연관성 없는 곳에 그들의 자산을 맡겨 버린다. 이러한 행위를 할바야 벼락에 맞을 확률을 계산하는 것이 더 생산 적이었을 것 같다.
소음과 쓸데 없는 소리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라. 이것이 지은이가 말하는 핵심이다. WSJ,FT,정부,방송국에서는 하나같이 정신나간 사람처럼 걱정,행복,탐욕을 자극한다. 그들이 나타내는 반응을 유심히 관찰한다.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전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이 책에서 뽑아 낼 수 있는 정수라고 생각된다. 내가 기존에 생각하는 기정사실화, 인지이론을 다루는 실용적인 예를 알 수 있었다.
-그의 책 마지막 부분에는 놀랍고도 신기한 이야기가 나온다. 내일의 WSJ 라는 제목의 이야기다. 그의 옛날 출퇴근 동료의 이야기였다. 그는 아주 늙고 비참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그가 무심코 집어든 WSJ 에서는 내일 주식종목 변동치가 나온다. 그리고 처음에는 믿지도 않았고 그의 동료들도 의아해 한다. 그러나 날이 지날 수록 자신의 WSJ는 내일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커다란 성공을 이룩한다. 그러나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진다. 의사의 소견은 커다란 흥분으로 인해 심장이 멈췄다고 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뇌손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은이를 필사적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를 만나 제안을 했다. "내가 만약 살아가는 날에 주식 전략 부서에 일하게 해달라. 시장을상회하는 수익을 당신에게만 제공하겠다" 그러나 그의 하고 픈 말은 그것이 아니였다. 그는 쓰러질 당시 자신의 WSJ는 2주뒤를 말했다고 한다. 그가 보는 주식 등락 섹션 옆에 그가 일하는 회사의 부고 기사를 봤다고 한다. 그곳에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사실에 놀라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그러나 지은이는 그의 말을 지금 까지도 사실로 받아 들이고 있다. 왜냐하면 정확히 그가 말한 날짜에 그는 세상과 호흡을 멈췄다. 만약 그가 죽는 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내일 종목을 맞췄다면 지은이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고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투자를 하든 안하든 인간은 장기적으로 죽는 다는 명제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죽는다는 시점 또한 알기 힘들다. 데카르트의 말처럼 과연 지금 생각 하는 것이 살아있다는 반증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고 인정한다. 끓임없는 상상과 계획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세계,현실이라는 곳에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길이 아닐지 의문을 던져본다.
ps : 투자전략서라고 보기엔 너무 현실적이고 실전서라고 하기엔 통찰력이 있는 책. 양장의 압박이 있지만 충분히 일반인에게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책이라고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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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탠스
내 서재속에는2018. 3. 1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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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젝 슈웨이거
기술과 예술의 중점에 있는 사람이다.다만, 그는 매매에 열중하는 트레이더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특성을 가진 자를 찾는다. 그리고 그들과 진솔한 대화를 하고 생각을 교류한다.그는 매체적 특성을 지닌 사람이다.
-내가 믿고 있는 절대 진리는 "세상은 당신,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해준다." 절대로 어렵지 않은 것이다. 당신이 부를 얻고자 하면 철학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고, 자의적이고 Risk Taking 을 한다면 당신의 끝은 파산 혹은 경제적 자유의 박탈이다. 이것은 돈,권력이 지배하는 금융시장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당신이 쾌락과 향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당신은 계속해서 직업도 없이 쾌락과 향락을 누려야하는 것이다.
-거래에 있어서 당신이 필요한것은 테마,정보 이러한 것들이 아니다. 가장 따끈한 정보는 당신이 무지하고 솔깃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고 그것은 스스로 제어해내지 못한다. 들어갈때도 상대에 의해서 입문하게 되었다면 99%는 다시 그에게 도움을 받아야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빠져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큰 특징은 어느새 손실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아이러니 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한 목표의식, 철학적 성찰이 없다면 커다란 손실을 얻고 만다. 물론, 다른 측면에서 볼 필요도 있다. 뛰어난 목표의식과 재무적 성찰이 있었지만 커다란 시대적 흐름에 휩쓸려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거래에 성공하거나 비개방 펀드에 엄청난 장기수익률을 이름을 올린 사람들은 운에대한 믿음보다 믿음에 대한 운이 빼어난 사람이다. 책은 다분히 바이블적이고 기본적인 내용을 논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믿고 그렇게 빼어난 수익을 창출했다. 그러나 책을 읽고있으면 어떤이들은 이런 반응을 한다."세계 제일의 트레이더의 도서를 잃으면 당신의 거래 수익이 올라가겠네?","아니 내 삶과 수익에는 변화가 없는데;, 그럴려고 읽는게 아닌데" 이렇게 대답한다. 그럼 당신은 의학책을 읽는 다고 해서 당신의 건강이 좋아진다는 보장이 있는가? 물어본 사람도 의아하고 대답하는 나조차 그런 인사치례를 싫어한다. 그냥 책읽는 것은 책읽는 것이지, 그것을 수익으로 생각하는 심보가 괴심하지만 그저 웃어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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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거래를 따라함으로써 손실을 만회하려는 손쉬운 방법을 찾고자 하는 욕심은 위험하다고 위험하다고 필자는 말한다. 최근들어 나의 포지션을 묻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스스로 주체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같다.하루 하루 마주칠 때 인사를 하지 않고 나의 보유 포지션 그리고 내일의 전략을 물어본다. 치가 떨린다. 그들한테 나는 웃으며 모른다고 대답한다. 생각을 해보라 내가 내일의 전략을 알고 그것이 정확하다면 지금 대화하고있는 당신은 내 앞에 없을 것이고 나를 만날 수도 없을 것이다. 물론 만나는 그들은 시장을 읽는 반대지표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에드 세이코타는 말한다. 표지만 읽고 안의 내용을 잊어라고 말한다. 예를 들자면, "바닥 없는 한국 시장" 이러한 제목을 본다면 어떤 상황이 떠오르는가? 기자들조차 공포에 질려 있고 이제 바닥이라고 생각해도 좋은 역발상사례지 않는가? 물론 모든 사례를 참이 될 수 없지만 규모와 공포의 측면이 클수록 그것은 제목과 반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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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머신은 돈 버는 기계로 의역된다. 그렇다면 머니 머신이라는 것은 동화속에만 존재하는 것인가? 그러나 대부분의 트레이더와 헤지펀드 메니저들은 수익에 있어서 필요한 것이 머니머신이다. 머니머신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포지션을 매매하여 큰 추세적 변동을 따라가는 머니 머신이있다. 추세에 대한 반추세가 시장조정을 만든다. 그 차익을 이용한 머니머신이있다.CRT(Chicago Research&Trading)사는 두번째에 해당하는 머니머신을 가진 회사다. 그들이 투자하는 곳은 100개국이 넘는다. 또한 그들의 시장상황 분석에는 그림과 3차원 화면이 사용된다. 마치 영화같은 이야기지만 그들은 제로 델타 전략을 통한 수익 창출을 한다. -시장에 참여하지만 시장에 대한 노출을 0만드는 전략.이것은 한쪽에서 매수 포지션을 가져간다면 사내에 다른 곳에서 같은 시장에 대한 매도 포지션을 해야지만 거래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마크리치는 과도한 거래나 손실에 정직하라고 말한다.그렇다 상급 트레이더라도 위험관리와 손절매에 대한 반감이 강한 사람이 많다.과도한 거래규모에 대한 인지능력이나 손실을 그 즉시 인정하는 민감성이 스스로를 뛰어난 트레이더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시장 유동성을 공급하는 자는 항상 수익을 가진다고 말한다. 일리가 있는 것이다.이렇듯 18명이나 되는 다양한 시장 다양한 성격의 사람을 만남을 책으로 엮은 한권의 책이다.
-세계의 트레이딩의 실전과 고전을 아우르는 셀러드 같은 저서다. 다만 안타까운것은 마지막에 역자의 자의적인 한국트레이더 인터뷰는 다분히 상업적이고 단편적이었다
-ps: 난이도는 없지만 다소 트레이딩의 포지션이 크고 그들중 상당수는 믿음이 뛰어난 사람입니다.그러나 중간중간마다 철학과 성찰없이 성공한 사람들도 일부 보입니다. 다만 이책을 전체적으로 평한다면 이탈리안 샴폐인을 연상케하는 향수의 느낌입니다. 고전과 곁들여 읽을 수도 있고 실전서로 역할모델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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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탠스
내 서재속에는2018. 3. 1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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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코스톨라니
80년이라는 금융시장의 경험이 있는 백전노장이다. 1999년 버블 직전 유명을 달리했지만, 유럽과 월가에선 그의 냉철한 말씀이 살아있다. 안타깝지만 책의 제목 [돈,뜨겝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는 잘못 되었다. 분명 역자의 짐작이 들어가 있다. 이 책의 내용은 투자에 필요한 심리적 무장이다. 또한 시장을 장기적으로 움직이는 것들이다. 그는 이전 저서인 [투자는 심리게임이다]에서 주장을 강조한다. 투자는 분명 패닉과 포탄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집중하고 무서움을 참고 견디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18세...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선 분명 공부만 할 수 밖에 없는 나이이다. 그러나 그는 편하게 쉴 곳 조차 없는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그로 인해 커다란 생각의 전환이 생겼다. 투자시장에 뛰어들어서 남들과 다른 것을 보고 대중과 반대로 행동한 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많은 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중년에 돈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는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노년의 투자는 그의 박학다식한 내용을 지지해주는 경험의 보증서이고 지적 도전 행위의 도화지다. 나는 그의 이런 치환적 사고가 마음에 든다. 또한, 다소 냉혹하지만 객관적인 정보 소스에 대한 분석과 그와 어울리지 않는 직관 또한 존경한다.


-돈의 매력
'돈에 대한 욕구를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화할수 있을 것인가?'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사고지만 돈은 도덕이다. 안타깝게도, 금융자본주의에서 돈이라는 것은 지금 숨쉬고 있는 세상의 모든 행동의 원동력이다. 그것은 사실이고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도덕이라는 미명하에 돈과 사욕을 챙기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본능적 선행에 대한 측면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치로 여기는 것들을 예로 들어보자. 당신이 여기는 신념,이념,주의,사랑,애국심 따위가 있다. 이것들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이해하는 공리적 도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애국심을 예로 들어보자. 분명 나라를 지키므로서의 애국적 행동을 했다는 효용이 있고 나라를 버리므로서 오는 물질적 이득이 있다. 사람은 이러한 두개의 조건을 놓고 비교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라를 지키므로서 얻어지게 될 죽음,부상 그 후에 따르는 국가적 보상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매국 행위에 따른 물질적 이득이 더 크다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을 것이다.


 이렇듯 그는 기존에 생각하고 인지해 놓은 관념들을 생각하게 만든다.태초에 투기가 있었다는 비유적 설명에서도 그의 논리는 독창적이다. 이러한 투기적 행위가 있기 때문에 가격은 왜곡 된다고 말한다. 모든 거래에 있어서 거래의 이유와 분석하지 말라고 한다. 위의 말과 이유를 같이 한다. 예를 들어보자 한 자본가가 있다. 그는 남과 다른 정보 체널을 가졌으므로 유용한 정보에 접근하기 쉽다. 그래서 그는 어느날 유용한 정보를 획득했고 그것은 어떠한 주식을 사므로 이윤을 남길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최대한 돈을 모아서 거래를 했다. 이로 인해 주가는 단기적으로 폭등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격의 폭등의 이유를 찾을 것이다. 찾는 동안 시장이 너무 불안정해서 좋지 않는 내용이 만연해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시적 기술적 반등으로 치부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절대 그 가격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다가 오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행동을 하면서 시간적으로 그와 함께 탈 수 있는 천국으로 가는 티켓을 놓친 것이다.
 

 그의 책에서는 시장 참여자들의 대한 분류가 나와있다. 이것은 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상을 만들어 주었다. 금융자본가,머니 매니져,차익 거래자, 단기 투자자, 장기 투자자, 순종 투자자 ,그리고 호구 등이다.

 그리고 그는 조언한다. 시장이 장조 인지 단조인지 에 대한 분위기 파악을 잘하라고 말한다. 지금이 단조라면 슬프지만 슬픈 감정을 잘 다스리고 우울해지지 않게 스스로를 보호해야한다. 그리고 장조라면 흥겨운 리듬에 맞춰 비트를 타며 심적 감정을 즐겁게 해야된다. 이것은 논리적으로나 직관적으로나 가치 없는 이야기 일 수 도 있다. 그러나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장 참여자는 오만하다. 그들이 내새운 포지션 '내일은 오를 꺼야. 왜냐 내가 샀으니깐'이러한 호구적 마인드에 심취하게 된다. 그러나 분위기는 단조라면 그가 내일 정말 기분이 좋을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그리고 경제학자의 분석을 너무 믿지 않는것이 좋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 분석적이고 모든 전제를 고려하지 않는다. 또한 실증적이고 실질적인 것을 그들의 학문적 모델링에 가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단순히 직관적인 사실도 수식화하고 도식화 하려한다.

 단순히 말해 책에는 왕도나 비책이 없다. -특히나 투자나 주식분석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그러나 확실한건 남들과 반대로 가라는 것이다. "유가 어디 까지 떨어질 것인가?!" 이러한 뉴스를 본다. 대부분의 사람은 넘겨 짚는다. "유가가 더떨어질꺼야","유가에 투자하면 큰일 나겠는 걸" 그러나 2주후엔 그 기사가 나왔을 때의 시세가 최저점이었다는 것을! 너무나 사람은 어리석다. 나는 책으로 하여금 다시 인지적 투자철학을 공고히 했다는 점에서 효용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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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탠스
내 서재속에는2018. 3. 1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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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위기에 정점에서 쓴 하나의 작품이다. 저자 크리스토퍼 마이어는 월 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중 한사람이다. 귀족 경제의 상징인 월스트리트에서 정말 몇몇 사람들은 고전적인 글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들은 투자의 고전의 정수인 책을 지어 내기도 한다.

 이 책은 마크파버 등 투자전략가 혹은 M&A 전략가에 추천사를 받았다. 일반적인 투자서적은 애널리스트 혹은 중개인,혹은 JP모건,메릴린치의 중요인사에 의해 추천사가 쓰여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대상으로 하는 사람은 주식,선물로 대응되는 Trader가 아니다.

 분명, 말그대로 Dealmaker이다. 기업의 특정 가치 조사해 시장에 현존해 있는 비슷한 기업을 비교하고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는 기업을 싸게 사들인다. 이것이 Dealmaker,M&A 전략의 핵심이다. 저자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이 분명하다. 어떤이는 가치투자의 연장선상으로 보기도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가치투자라 함은 일정한 패러다임을 말하는 것이고, 이책이 다루고자 하는 바는 어떻게 해야 가치투자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까? 라는 것이다. 현재 대다수 시장 참여자들은 가치를 우선으로 하고 그것을 수치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또한 투자여건, 프로그램의 개선에 의해 충분히 제도적으로 가치투자를 할 수 있게 되어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라는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통계,수치가 최악이라고 만연 할때 투자하는 역발상 투자를 기계적 매커니즘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나는 높은 가치를 부여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책의 구성은 1부는 크리스토퍼 마이어가 생각하는 Dealmaker 식의 투자 스타일 소개이다. 2부는 자신이 경험 하거나 책을 통한 투자의 대가가 말하는 가치투자의 철학을 말한다. 1부에 그가 제시하는 가치투자의 툴은 시장에서 고평가된 기업을 가려내는데 효과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는 분명 애널리스트이다. 애널리스트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너무나 커다란 괴리가 있다.(분명 나또한 그럴 것이다). 대중들은 그러한 차이를 좀처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투자의 중대한 시점이라는 뉴스레터를 쓴다. 대부분은 그의 시장 예측은 맞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은 나로선 그가 논거로 제시하는 예시는 대부분 그가 쓴 뉴스레터에 출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그는 단지 문자에 국한된 뉴스레터를 논거로 삼는가? 왜냐하면 그는 실제로 투자한 것이 없기 떄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엄청난 부를 획득하지 못했기 떄문이다. 이것에 대한 반증은 그가 아직도 월스트리트의 직장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선 분노가 치민다.

 신경경제학에 따르면 대부분의 시장 예측자들은 그들의 논거,그들의 반증을 그가 쓴 칼럼에서 찾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기억은 잘못되거나 비슷한 문맥을 편용해서 쓰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논거 또한 그가 보낸 많은 뉴스레터를 검증해봐야 된다는 필요성이 제기한다. 그가 단순히 말하는 것은 EV/EBITA[(기업시가총액/실질가치(현금흐름중심),즉 현금흐름에 중심을 둔 PER과 비슷한 개념] 로 규정되는 M&A식의 가치투자의 툴이다. 분명 효용성이 있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툴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검증을 제대로 받지 못한 툴이라는 것이 조금 안타까웠다.

 
 2부에선 그가 만나거나 겪은 투자철학에 대한 기술이다. 이점에선 그가 분명 귀족 거리에 있지만 꾸준한 성찰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꼇다. 그의 책에선 과거 현재 미래의 투자대가의 논지가 묻어있다. 또한 그럴 것이 그가 읽은 책의 정확한 출처를 밝히고 있다. 그리고 현존하는 대가의 투자 전력(이전의 내역)을 써놓고, 이유까지 매우 실증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투자격언의 오류 부분에서 커다란 영감을 얻었다.-장기투자가 시장에서 유리한 이유를 설명할때, 대부분의 시장참여자들의 보유기간은 1년 미만이고, 그것을 시간적 차익거래 원리를 이용해 장기적으로 보유할 경우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논거가 상당히 좋았다. 결과적으로 그는 비록 메인 스트리트(실물 시장,실제 거래)로 평가한다면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월 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로서의 그가 제시한 투자철학은 매우 사용하기 편한 툴이다. 총평을 매우 애매하게 썻지만 확실히 그가 제시한 투자 철학은 유용하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은 후기에서 대부분의 감상은 투자철학으로 미비하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논거는 그저 귀찮고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시장에서의 투자 전략으로는 효용성이 있다고 사료된다.


-ps: M&A 과정에 필요한 절차적 설명이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혁신 도서 중에서 고전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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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