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
오늘날 막스는 마르크스, 프로이트와 나란히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사상가로 손꼽힌다. 그는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연구했었다. 그는 '제2의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별칭도 따라온다. 그가 연구한 학문의 다양성만큼이나 깊이와 성찰이 옅보인다. 그리고 현대사회에 관료제,합리화, 카리스마,경제윤리와 같은 개념의 시초는 대부분 그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증명사례를 꺼내지 않더라도 그가 현대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자들의 사상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 지 실감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생애와 철학은 내가 본받고 싶은 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몇몇 환경적인 특성이 내가 생각하는 유년시절과 비슷하다는 점이다.그는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법률가이자 시의 참의원으로 부르주아 계층이었다. 그리고 베를린 교외의 샤르를로텐부르크에서 살았는데, 그곳은 지역 학자들과 기업가, 예술과 등 자유로운 토론 장소가 되었다. 그 결과 어린 시절부터 베버는 자연히 정치적 토론뿐만 아니라 교양 있고 수준 높은 대화와 독서에 익숙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지적인 가정 분위기에서 자랐고 가족들과 함께 많은 여행을 통해 조숙해진 소년 시절의 베버는 틀에 박힌 학교 수업에 불많이 많았다. 그는 운동보다 독서를 좋아했으며 사춘기에 들어서면서부터 폭넓은 독서를 했다.
그러나 사춘기부터 비판적 사고를 가졌던 베버는 학교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지 않았고, 학교의 형식적인 학습방식에 반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동급생의 경박한 행동과 권태로운 학교생활에 염증을 느낀 베버는 더욱 자신의 지적 세계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나의 사견이지만 그의 폭넓은 학문과 합리적 사고는 그의 유년시절부터 생겨난거 같다. 그는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던 어릴 적 삶을 살았지만 가부장적인 아버지 인도적인 어머니 사이의 불화를 눈치 챘던것 같다. 그는 사춘기 시절에 아버지의 전근대적인 속물근성과 어머니의 프로테스탄트 신앙심 모두를 비판하면서 부모님과 멀어진다.
그리고 그는 대학을 입학하면서 법률을 전공하게 되지만 역사학,경제학,철학 과 같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그는 아버지가 대학시절 들었던 결투클럽의 임시회원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짐작했을 때 그는 독서에만 빠졌던 것이 아니라, 사교 활동을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베버는 일찍 일어나 논리학 강의에 참석하는 열의도 보이기도 했지만 결투장에서 빈둥빈둥 지내기도 했다. 어떤 때는 교수의 집에 초청받아 다른 사람들의 특징을 흉내 내는 등의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베버는 결투 클럽에서는 물론 술자리에도 빠지지 않는 사교적인 인물로 변해 갔다. 그래서 베버의 얼굴에는 결투를 하면 으레 생기기 마련인 흉터도 생겼고 심지어는 유흥에 쓴 돈 때문에 빚도 지게 되었다. "결투 클럽에서 행했던 과감한 공격 훈련은 나에게 강한 모습을 심어 주었으며 그 덕택으로 소년 시절의 수줍음과 불안이 사라졌다."라고 쓴 것을 보면 베버의 일생에서 이 시절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이델 베르크에서 세 학기를 지낸 후 1993년 베버는 스트라스부르로 가서 군 복무를 했다. 하지만 형식적이고 가혹하며 육체훈련에만 집착하는 군 복무는 베버에게 몹시 고통스러웠다. "생각하는 인간을 자동적이며 정확하게 명령에 응하는 기계로 길들인 어이없는 시간 낭비였다"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베버는 군 복무에 환멸을 느꼈다. 나 또한 이렇게 생각한다. 단순한 기계가 되어버린 자들과는 어떠한 생산적인 대화를 할 수 없는 것을 느낀다. 물론 군대라는 힘든 상황 아래에서도 주체적인 정신과 군대 속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어 오는 자들도 있지만 말이다.
병역은 1년만인 1884년에 끝났다. 다시 복학한 베버는 처음에는 베를린에서 그뒤에는 괴팅겐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괴팅겐으로 온 뒤 차분하게 학업에 열중했으며 1889년 중세의 무역회사를 다룬 박사 학위 논문을 완성했다. 이 논문을 쓰는 데 이탈리아 스페인의 문헌을 참고하기 위해 베버는 이 두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1890년,제2차 사법 시험에 합격한 베버는 이듬해인 1891년 로마 농업사를 다룬 논문을 써서 학위를 마치고 베를린 대학의 상법,독일법,로마법을 담당하는 교수가 된다.
이하의 그의 생애는 아마도 이 책에 대한 내용으로 대체하는 것이 나을 것 같으므로 생략한다.
-그의 책을 윤리 교과서 이후에 다뤘던 적은 아마도 처음이다. 분명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항상 약간의 마음의 정적이 생겼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항상 질문이 떠올랏다. 어떻게 그가 나의 머리 속 생각 까지도 그의 논거로 펴내는 지 너무나 놀라웠다. 아마도 이러한 연유로 이 책이 고전이 되고 지금 까지 전해져오고 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오랜 시간 걸쳐 베버 이후에 지나간 사람에 의해 읽어지고 그의 생각이 펴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생각과 고찰이 현대사회의 페러다임까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나도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교육과 생활,문화를 통해 무의식적인 학습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다만 이러한 사상을 무의식적으로 생각하지만 그의 저서는 읽어보지 않은 자들이 대부분이다. 즉,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명명을 들어보진 못해도 이로 기인한 행동은 하지만 이것의 근원은 모른다는 것이다. 근원을 모른 채 행동하는 것은 삶에 있어서 주체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미네르바의 추천에 의해 읽게 되었지만 분명 스스로 읽어 볼 필요가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 맴돌았던 질문은 "종교도 하나의 사상이고 철학이다.그러나 종교를 믿는 자들은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고 종교에 있어서는 합리적인 사고가 아닌 광기,감각적으로 믿어버린다.왜 이성적인 질문을 한번이라도 해보지 않는 거지?"였다. 아마 이 책에 주제에 비해 많이 빗나간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의 저서 속에는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왜 자본주의 정신에 포함되어있고 이것이 기인한 철학이 소개되어있다. 16세기 마틴 루터와 장 칼뱅등이 주도한 종교개혁의 결과로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분리해 성립된 기독교 분파가 프로테스탄트이다. 일명 신교 혹은 개신교로 불린다.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은 'protest'라는 어원에서 왔다.그리고 자본주의라는 것은 16세기 무렵부터 봉건 제도 속에서 점차 싹트기 시작했다. 영주에게 일정 노동력을 제공해야되는 농노의 시대부터 약간의 균열로 인해 생기게 되었다. 자본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주의자들이 쓰기 시작했는데, 그 뒤로 널리 보급되어 일반적인 명칭이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한마디로 대체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객체가 정의 하기에 따라 자본주의의 범위는 협소적일 수도 포괄적 일 수 도 있다. 다만 막스 베버가 정의한 자본주의는 근대 자본주의이다. 직업을 통해 이윤을 조직적이고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근대 자본주의를 베버는 '합리적 자본주의'라고 불렀다. 합리적 자본주의는 정규적인 시장과 연관되어 이루어지는 경제 행위의 한 형태로서, 정확한 계산을 통한 장부 정리와 합법적 수단에 의한 체계적인 이윤 추구를 특징으로 한다. 베버는 합리적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정신이라는 규범적인 조건과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라는 제도적 요소가 필요하다고 구분했다. 이러한 두가지 요소가 없다면 자본주의는 성립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근대 자본주의를 이루는 원동력이 된 합리적 정신의 뿌리인 프로테스탄트의 직업 윤리를 찾아가는 추론 과정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분류하지 않는다.그러나 중세,근대,현대 자본주의에 차이점은 존재하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본주의 속 발전과정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 것일까? 패러다임 속의 작은 발전은 아마도 큰 룰이 정해주는 범위 아래서 이루어질 것이다. 우선 자본주의에 대한 개념적 정의를 내려본다. 물론 비약과 오류가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것은 현대에는 '돈,금융'이다. 그렇다면 돈,금융은 무엇인가? 회계장부상 처리되는 위치는 자본(Capital)로 분류된다.말 그대로 자본이 자본주의에 가장 필요한 가치이며 룰이다. 16세기 중세시대에 시작한 자본주의의 성장은 대부분 장인과 상인 계층에서 이루어 졌다. 물론 농업인에 대한 시각에서도 일정한 발달이 이뤄져왔음은 인정해야 되지만 말이다. 중세 자본주의에서 성공한 장인과 상인,그리고 농업인은 이윤추구적이고 대량생산적 체제로 발전 하면서 비용절감으로 인한 자본획득이 가장 큰 성공요인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엄청나게 벌여놓은 돈은 자신의 믿음,혹은 사회적 도덕적 가치로 기인한 점보다 경제적,상업적 비용절감으로 인해 생겼다는 점이다. -일부는 도덕적 가치로 성공했을 수도 있지만 환경에서 분석해본다면- 그래서, 그들의 돈은 복권에 당첨되거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느껴졌을 것이고 , 과시적이고 유흥적인 소비가 이어졌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생활에 잘못된 점을 느낀자들은 자신의 종교적인 성찰의 필요성이 생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과정이 진행 되고 있는 동시에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이라는 종교가 분화한다. 분명 중세 자본주의 시대에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과 다양한 가치평가기준을 가진사람이 존재 했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받아들인 자들은 자연 조건이나 교통 여건이 좋아서 경제적으로 발전한 여러 지역들, 그중에서도 특히 부유한 대다수의 도시들은 16세기때부터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했다. '왜?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된 지역이 종교 개혁을 받아들였던 것은 어떤 이유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수반해야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이유는 그들이 기존에 믿었던 종교에서는 이러한 부의 축적은 신성모독 혹은 악행의 반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악행과 신을 욕한 사람들은 사후세계에 있어서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그러나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금욕적인 삶과 청렴한 행동의 결과가 부와 직업이라는 결과물이 뒤따른다는 것이었다. 물론 프로테스탄트 윤리에서도 부 자체를 욕망으로 생각하고 모은다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욕망은 새로운 욕망으로 발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 개혁으로 개종한 자들은 오히려 더 압박적인 구속을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적 전통주의에서 벗어난 자들은 부와 직업적 소명을 가지기 위해서는 좀 더 금욕적이고 성실한 행동을 요구했을 것이다. 기존의 교회에서는 편안함을 얻었다면 프로테스탄트 윤리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의 결과물은 구속의 강화였을 것이다.
또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차이점은 개인의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믿음 속에서는 한쪽은 노동이라는 가치를 소명이란 단어보다 위에 뒀고, 다른 한쪽은 소명이란 가치를 노동이란 단어보다 위에 두었다. 그래서 가톨릭 교도들은 수공업에 머물러 수공업 장인이 되었고, 그에 반해 프로테스탄트인 수공업 도제들은 공장에 들어가 숙련 노동자가 되거나 공장을 관리하게 되었을 것이다.
현대 작가 중 한사람인 오펜바하는 두 신앙의 차이를 설명하는 말을 했다.
"가톨릭은 영리 충동이 적기 때문에 평온하다. 위험하고 자극적인 생활을 통해 명예와 부를 추구하기보다는 수입이 적더라도 안정된 삶을 추구한다. 익살맞은 속담의 하나로 '잘 먹을 것인가 아니면 발 뻗고 잘 것인가."라는 표현이 있다. 두 신앙의 차이를 비유하자면 프로테스탄트는 잘 먹으려고 노력하는 쪽이고, 가톨릭은 발 뻗고 자려는 쪽이라 할 수 있다. "
실제로 잘 먹는다는 표현은 교회에 무관심한 오늘날 독일의 프로테스탄트를 부분적으로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근대자본주의는 미국으로 들어와 자본주의 정신과 함께 발전했다. 미국의 자본주의 정신의 근원인 프랭클린 정신을 본다면 이러한 점이 맞을 것이다.
"시간은 돈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매일 일을 해서 10실링을 벌 수 있는는 사람이 반나절을 빈둥거리거나 산책을 했다고 하면, 비록 그 사람이 오락을 위해서 6펜스만 썻다 하더라도 그 돈만 쓴 것이 안아니다. 실제로 그 사람은 6펜스 외에 5실링을 덜 쓴 것이 되며, 더 적절하게 말한다면 5실링을 내다 버린 셈이다.
신용을 곧 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나에게 자신의 돈을 빌려주고 샆을 기간이 지났음에도 찾아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이자를 준 것이거나 혹은 그 기간 동안 그 돈으로 잘 이용한다면 많은 액수의 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돈은 번식력을 가지며 결실을 맺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돈이 돈을 낳고 그 새끼는 도 새끼를 친다. 5실링을 잘 이용하면 6실링이 되고 다시 이를 잘 이용하면 7실링 3펜스로 늘어나서 나중에는 100파운드에 이르게 된다. 한 마리의 암퇘지를 죽이는 사람은 이 돼지가 뒤에 낳을 천 마리의 돼지를 같이 죽이는 셈이다. 1실링의 화폐를 없애는 사람이 돈이 벌어들였을 것,수천 파운드를 없애드는 셈이 된다.
돈을 잘 갚는 사람은 모든 돈주머니의 주인이라는 속담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약속한 날짜에 정확하게 지불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은 친구들의 여윳돈을 언제 어떤 경우에나 빌릴 수 있다. 때로 이는 매우 유용하다. 근면,검소와 더불어 모든 거래에세 정직과 시간을 지키는 것만큼 청년의 출세에 필요한 것은 없다. 따라서 당신이 빌린 돈은 약속한 시간보다 한 시간이라도 늦추지 말고 갚아라. 그러지 않을 경우 당신 친구의 지갑은 당신에게 영원히 닫혀 버리는 수가 있다.
신용에 영향을 주는 문제라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조심해야 한다. 당신의 채권자가 새벽 다섯시나 저녁 여덟 시에 당신의 망치소리를 듣는다면 그 사람은 기꺼이 당신에게 지불 기간을 6개월 더 연장해 줄 것이다. 그러나 일해야 할 시간에 당구장에 있는 당신을 보게 되거나 술집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당신의 채권자는 다음날 당장 모든 빚을 갚으라고 독촉할 것이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내는 망치 소리는 당신의 자신의 채무를 잊지 않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며, 이는 당신을 성실하고 주의 깊은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따라서 당신의 신용도를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지니고 있는 재산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 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점은 바로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착각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당신의 수입과 지출을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 항상 주의를 기울인다면 당신은 작은 지출이 모여서 얼마나 많은 돈이 되며 무엇이 절약되었고 또 앞으로 무엇을 절약할 수 있을지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영리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면, 당신은 1년에 6파운드를 가지고 100파운드의 가치로 쓸 수 있다. 날마다 10펜스를 낭비하는 사람은 1년에 6파운드를 낭비하는 것이며 이는 100파운드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는 것이다. 게으름을 피우며 5실링에 해당하는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은 5실링을 바다에 던져 넣은 것과 같다. 5실링을 잃는 사람은 단지 5실링만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이익 즉, 젊은이가 노인이 될 때까지 계산한다면 엄청난 금액까지 잃는 것이다."
벤저민프랭클린
물론 프랭클린이 말하는 설교에 자본주의 정신이 모두 들어 있다고 할 수 는 없다. 다만<<미국 문화의 모습>>을 쓴 페르디난트 퀴른베르거가 말하는 것처럼"소에게서는 지방을 짜내고, 사람에게서는 돈을 짜낸다."라는 말로 프랭클랜의 처세 철학을 요약된다. 프랭클린의 처세 철학을 좀 더 살펴보면, 신용이 있는 신사는 무엇보다 자본을 늘려야 할 의무를 자신의 삶의 목적으로 전제해야 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미래
금욕이란 단어를 통해 실천한 삶은 역설적으로 부에 대한 유혹을 증식 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부는 합
리적이고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부합하고 소명과 천직이 일치된 삶이이다.
일찍이 백스터는 "외적인 재화에 대한 염려는 마치'언제든지 벗어 던질 수 있는 얇은 망토처럼' 신도의 어깨 위에 놓여 있어야만 한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운명은 이 망토를 강철 같은 우리로 만들었다. 이것은 현실에서 메트릭스로 작용한다. 금욕주의가 세상을 새롭게 형성하고 세속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자 이 세상의 외적인 재화들은 역사상 그 어느 때도 볼 수 없었을 정도로 인간에 대한 지배력을 키워 나갔고 급기야 인간은 결코 이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 종교적인 금욕주의 정신은 이 우리에서 사라져 버렸다.영원히 사라진 것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제 승리를 거둔 자본주의는 기계라는 기초 위에 서 있으므로 더 이상 정신의 지지를 필요를 하지 않는다. 이 정신의 유쾌한 후계자인 계몽주의의 장밋빛 분위기도 완전히 빛이 바랜 듯하고, '직업 의무'사상은 지나간 종교 신앙의 유령이 되어 우리 삶의 주변을 떠돌고 있다.예를 들자면 당신이 출근부에 기록을 하는 시점 부터 종교 신앙의 유령에 환상에 휩싸여 버리는 것과 같다.
현대의 종교나 교회로 귀결되는 단체는 위의 종교 신앙의 유령에 홀린 사이비 단체인 경우가 많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영혼이 없는 전문가, 가슴이 없는 향락주의자, 이 공허한 인간들은 일찍이 인류가 도달하지 못했던 단계에 도달했다고 자부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글귀가 나에게도 성찰과 겸손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점은 나 또한 반추하고 Feedback 해야 될 점이다. 다만 미래를 어리석게 나마 짐작한다면 미래에는 계속에서 우리는 황금 구속복이라고 생각하는 종교를 가지고 유령에 홀린 채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어떠한 선각자가 나타나 콘크리트 처럼 굳어버린 메트릭스를 인식시키고 다함께 번영에 길로 나아갈지로 나눠 질 것이다. 아니면 몇몇 소수만이 메트릭스를 인지하고 종교에 유령에 홀린 사람들은 그 소수만을 위해 근면 성실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단지 '열심히','착하게' 일 할지도 모른다.
ps : 다이나믹 시스템적인 차원에서 세상을 보기 위해선 이 세상을 구성한 룰을 이해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그의 삶과 나의 삶이 비교되고 내 삶의 기준을 이 전에 살았던 사람보단 더 긍정적으로 살아야 할 욕구도 느꼈다. 나는 교회를 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힘을..